[비즈니스포스트] 우리나라 증시의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선진국지수 진입을 위한 관찰대상국 편입이 내년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관찰대상국을 거쳐 선진국지수에 편입되더라도 오히려 득보다 실이 커 증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 한국증시가 MSCI 선진국지수 관찰대상국에 오르는 데 재차 실패했다. < MSCI 홈페이지 > |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 정부와 금융당국이 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고 있어 2024년 6월 발표될 관찰대상국 심사를 한국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MSCI는 22일(현지시각) 한국증시를 MSCI 신흥국지수 목록에 남기면서 이번에도 관찰대상국에는 올리지 않았다. 선진국지수에 편입되려면 관찰대상국 지위를 1년 이상 유지한 뒤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첫 단추부터 매지 못한 것이다.
한국은 2009년 관찰대상국에 올랐다가 해외 투자자의 원화 시장 및 증시의 접근성이 낮다는 이유에서 목록에서 제외됐다. 그 뒤 MSCI 선진국지수 관찰대상국 복귀는 한국 정부의 숙원 사업이 됐다.
영국 언론 이코노미스트는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그리스나 포르투갈도 선진국 지수에 편입됐었다”며 “1997년부터 IMF에 의해 선진국으로 분류돼 왔으며 FTSE와 S&P지수에서도 이미 선진국지수에 포함돼 있는 한국 입장에선 억울할 만한 부분이다”고 짚었다.
다만 내년 6월 발표되는 다음번 관찰대상국 심사에서는 편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 정부와 금융당국은 원화 시장 접근성 개선, 외국인투자자 등록제 폐지, 영문 공시 등 MSCI가 지적했던 사항들을 올해 초부터 차근차근 이행하고 있다. 이들 개선 조치는 다음번 심사가 돌아오는 내년 6월까지는 모두 실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MSCI는 “한국 정부와 당국의 조치들이 계획대로 발표되고 2023년 하반기부터 이행되며 외국인투자자들이 실제로 효능감을 느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관찰대상국 편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존 권 골드만삭스 연구원은 “한국 정부의 조치로 내년 관찰대상국 등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며 “올해 발표된 조치들은 지난해와 달리 구체적이며 MSCI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도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들은 예정대로 순차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 관찰대상국에 등재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증시가 관찰대상국 포함 뒤 MSCI 선진국 지수편입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우선 대규모 글로벌 지수추종 자금의 유입을 들 수 있다.
골드만 삭스에 따르면 MSCI 선진국지수 추종 자금은 약 3조5천억 달러로 신흥국지수 추종 자금(약 1조8천억 달러)의 2배 수준이다.
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통한 국내증시의 위상 제고 효과도 기대된다.
실제로 한국증시의 올해 5월 기준 PER(주가수익비율)은 약 11배 수준으로 홍콩(27배), 인도(24배), 필리핀(20배), 싱가포르(18배), 일본(16배), 인도네시아(14배), 중국(13배), 대만(12배) 등 아시아 주요 국가보다 저평가 돼있다.
하지만 선진국지수 편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자금이 오히려 순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증시가 MSCI 신흥국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이다. 단순 계산으로 보아도 1조8천억 달러의 신흥국지수 추종 자금 가운데 유입될 수 있는 규모는 약 2160억 달러에 이른다.
반면 한국증시가 MSCI 선진국지수로 옮겨가면 비중은 약 1~2% 정도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 계산으로 3조5천억 원 규모의 추종자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입 자금은 350억~700억 달러에 그친다.
골드만삭스 등은 한국증시가 선진국지수 편입에 성공 시 약 460~56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히려 증시에 들어올 해외 투자 자금이 크게 줄어질 여지가 많은 셈이다.
다른 나라의 선진국지수 편입 사례를 봐도 유입되는 글로벌 자금 규모가 되려 줄어든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0년 MSCI 선진국지수에 편입된 이스라엘은 2011년 오히려 25억 달러 규모의 자금 순유출을 겪었다. 이스라엘 증시의 총 시가총액도 선진국지수 편입 뒤 2년 동안 약 40% 하락했다.
▲ 이스라엘 증시는 MSCI 선진국지수에 편입된 뒤 되려 자금 순유출을 겪었다. 사진은 이스라엘 텔 아비브의 증권거래소. <텔 아비브 증권거래소> |
그리스의 경우도 2001년 선진국지수 편입 뒤 2년 동안 증시 지수가 약 45% 빠졌다. 그리스는 결국 2013년 부채위기까지 겪으며 다시 신흥국지수로 강등됐다.
포르투갈도 1997년 선진국지수에 편입됐으나 1998년 중반부터 증시 지수가 갑자기 하락하며 그 뒤 40%가량 급락했다.
이에 ‘선진국지수’라는 타이틀에만 매몰되다 자칫 ‘용의 꼬리’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진국지수에는 한국보다 덩치가 큰 증시들이 이미 여럿 포진해 있어 여기서 ‘용의 꼬리’가 되는 순간 오히려 신흥국지수 내 ‘뱀의 머리’ 때보다 나을 게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선진국지수 편입 수혜의 불균형 우려도 제기된다. 황순우 고려대 교수는 “지수추종 자금 유입의 규모가 한국 증시 규모 대비 작아 주로 대형 종목들만이 대부분의 수혜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영재 픽텟 자산운용 선임 투자매니저도 “한국 증시가 선진국지수에 편입되면 신흥국지수 펀드 내 10개 한국 종목을 모두 팔고 선진국지수 펀드에 삼성전자 하나 정도만 들고갈 것이다”고 바라봤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