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선 기자 insun@businesspost.co.kr2023-06-23 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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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연 BGF리테일 스낵식품팀 MD는 학생 때 부터 도서관에 앉아 빵을 먹고,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다. 빵을 좋아했던 김 MD는 유통업계 히트상품인 ‘연세우유빵’을 개발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연세우유빵 먹어봤어?”
지난해부터 MZ세대들 사이에서 인사말처럼 된 질문이다.
이제 ‘연세우유빵’을 못 먹어본 사람도 연세우유빵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상품이 됐다. 그럴만하다. 올해 5월 기준으로 3천만 개가 팔린 초대박 상품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수가 5200만 명 정도니까 누적 판매량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60% 정도가 연세우유빵을 먹어봤다는 얘기다.
편의점 CU 자체브랜드(PB) 상품인 연세우유빵을 개발한 사람은 누굴까. 제빵업계에서 수십년 동안 한 우물을 판 장인? 아니면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팀장? 둘 다 아니다.
연세우유빵을 개발한 주인공은 입사한지 이제 만 5년이 된 BGF리테일 스낵식품팀의 김소연 MD다. 김소연 MD는 1996년생으로 ‘MZ 직장인’이다.
22일 BGF리테일 사옥에서 김소연 MD를 만나 연세우유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김소연 MD는 학생 때도 독서실에서 매일 빵만 먹고 앉아있는, 밥보다는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식품 쪽 일이 하고 싶어서 요리, 제과, 제빵 등을 배우러 다녔고 대학교에서도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김 MD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학문적인 것보다는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일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여러 채널 가운데 편의점을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
“여러 분야를 알아봤어요. 식품 R&D쪽도 있었고 유통채널에서 식품을 개발하는 일도 찾아봤거든요. 그 중에서도 편의점은 사람들과 접점도 많고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편이라 좋았어요. 트렌드를 많이 캐치할 수 있으니까 첫 직장으로는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대박 상품을 개발한 MD 입에서 ‘첫 직장’이라는 말이 나와서 혹시 요즘 이직 제안은 있는지 물었다.
김 MD는 크림빵을 협업하자는 제안은 정말 많이 들어오는데 이직 제안은 생각만큼 없다며 웃었다.
김소연 MD가 MD일을 시작한지는 이제 1년반 정도다. 김 MD가 입사했을 때 처음에는 상품개발팀으로 배정됐다. 그 중에서도 빵 카테고리를 맡게 됐다.
김 MD는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제과제빵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신입사원의 열정을 보여줬다. 하지만 사무실에만 앉아 인터넷으로 많은 빵을 검색해보면서 아쉬움도 느꼈다.
“어떤 빵을 사람들이 실제로 사 먹고 어떤 빵이 어떻게 진열돼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사실 신입사원이라 사무실에서 할 일이 별로 없기도 했고요. 그래서 보고서를 작성해서 팀장님께 올렸습니다. ‘팀장님, 저 그냥 나가서 많이 보고, 많이 먹고 오겠습니다’.”
신입사원의 패기 때문인지 당시 김정훈 BGF리테일 식품개발팀 팀장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 날부터 김 MD는 3개월 정도를 직접 운전해서 전국 유명한 빵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제주도에 있는 빵집들은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교통비가 부담됐기 때문이다.
전국 유명 빵집을 돌아다녀 본 김소연 MD가 인정하는 진짜 맛집은 어딜까.
“천안에 가시면 ‘몽상가인’이라는 빵집이 있어요. 그 집 바게트가 정말 맛있어요. 제가 갔을 때 마침 막 나온 바게트를 먹어볼 수 있었거든요. 바게트에 참깨를 넣었는데 맛이 굉장히 고소하고 생크림을 찍어먹었을 때 정말 맛있었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김 MD가 직접 경험하고 얻은 아이디어들은 상품을 개발할 때 큰 자산이 됐다. 단순하게 바게트를 먹어봤으니까 바게트를 만들어야겠다가 아니다. 김 MD가 맛있다고 느낀 바삭함, 따뜻함 등의 포인트를 어떻게 잡아낼까를 연구하고 고민한다.
연세우유빵이 이만큼 큰 인기를 얻을 것을 김 MD는 예상했는지 궁금했다.
지난해 1월 연세우유빵을 출시하면서 2022년 사랑받을 수 있는 상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김 MD도 이렇게 오래 인기있을 줄은 솔직히 몰랐다고 했다.
▲ 연세우유빵이 이만큼 큰 인기를 얻을지 김 MD도 예상하지 못했다.
밖에서 볼 때는 3천만 개나 팔린 빵을 개발한 MD지만 연세우유빵 시리즈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김 MD가 느끼는 부담감도 있다.
“신제품이 나올 때 마다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면 뿌듯하지만 소비자들은 다음에는 어떤 빵이 나올지를 곧바로 기대해요. 신제품에 대한 반응을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이 다음 빵을 준비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김 MD가 ‘미다스의 손’처럼 보이지만 김 MD가 준비했던 빵이 전부 다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다. 출시하려고 생각했던 맛을 경쟁사에서 먼저 출시하는 바람에 계획을 접은 적도 있다.
김 MD는 인절미맛 크림이 들어간 빵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최종 단계에서 출시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원료의 텁텁한 맛을 잡아줄만한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해서 출시를 보류했다고 한다. 언젠가는 CU에서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연세우유빵 시리즈 가운데 김 MD가 특별히 아끼는 빵이 있는지 궁금했다.
“사실 다 고생해서 만든 빵들이라 모든 제품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하나만 꼽으라면 황치즈맛 빵을 조금 더 아끼는 것 같아요. 연세우유빵 시리즈로 나온 다른 맛들은 이미 시중에도 많이 있었는데 황치즈맛을 이렇게 대량으로 만든건 처음이었거든요. 황치즈가 약간 마이너한 맛이다 보니까 개발 당시에 사람들이 과연 황치즈의 단맛을 좋아하는건지, 짠맛을 좋아하는건지, 풍미는 어느 정도여야 할지 그 기준을 잡는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큰 사랑을 받으니까 더 애정이 가는 것 같기는 해요.”
연세우유빵에 대한 이런 애정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MD는 연세우유빵 시리즈를 몇 탄까지 내놓을지 정해놓은 것은 없다고 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매달 신제품을 내놓을 계획을 세웠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맛이 있다면 연구해서 내놓을 생각이다.
이것과 관련해 김 MD가 기획 중인 것이 있다고 귀띔했다.
연세우유빵 시리즈로 새로운 빵이 출시되면 기존 연세우유빵 가운데 생산이 중단되는 제품들이 있다.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이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들 가운데는 생산이 중단된 빵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 MD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DM을 보내기도 한다.
김 MD는 아직 기획 단계긴 하지만 다시 출시해줬으면 좋겠는 빵을 CU의 커머스애플리케이션(앱)인 ‘포켓CU’를 통해 투표로 알아볼 생각이라고 한다. 투표결과 압도적 지지를 받는 빵이 있다면 생산량을 조절해 재출시할 계획이다.
김 MD는 지난해 ‘BGF인’으로도 선정됐다. BGF그룹 모든 사원 가운데 7명을 뽑는 사내 시상 개념인데 입사 6년차인 1996년생 MD가 뽑힌 것이다.
입사 6년차에 이미 큰 성과를 거둔 김 MD는 앞으로도 노력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요즘도 매주 금요일이면 시장조사를 위해 외근을 나간다. 백화점 식품관, 성수동 팝업스토어, 더현대서울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곳들을 돌아보며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까지 성공이 부담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과거의 저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에요. 이 업무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일을 재밌어하는 MD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지금 MD라는 업무에 만족하고 있거든요.”
연세우유빵의 성공으로 편의점업계에서는 디저트 카테고리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경쟁사에서도 연세우유빵과 비슷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김 MD는 연세우유빵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품질이나 맛에 있어서는 자신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품질에 대한 부분은 타협하지 않고 현재 수준을 유지해갈 생각입니다. 대량 생산되는 빵들 가운데 연세우유빵은 크림을 더 많이 넣기 위한 수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연세우유빵만이 가진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BGF리테일 스낵식품팀 MD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크림빵 위주에만 갇혀있지 않고 케이크나 마카롱 등 새로운 상품 카테고리를 편의점에 도입해 연세우유빵만큼 키워볼 생각이에요. 현재 여러 브랜드와 얘기 중인 것들도 있고 하반기에는 좀 더 집중해서 시도해 볼 계획이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