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Who
KoreaWho
인사이트  외부칼럼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이강운 holoce@hecri.re.kr 2023-06-23 08:59:38
확대 축소
공유하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X 공유하기 네이버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유튜브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 인쇄하기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 등검은말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비즈니스포스트] 갑자기 발끝이 찌릿했다. 깜짝 놀라 발을 들어보니 집안에 들어온 말벌이 내 발에 밟히자 발가락을 쐈다. 얼굴도 아니고 발가락인 데다 벌에 쏘이는 일은 매년 반복되는 일상사라 무심히 된장을 바르고 일어서려는데 머리가 핑 돌고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푹 고꾸라졌다.

숨쉬기가 어렵고 토할 것 같더니 가려워지면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았다. 말로만 듣던 치명적인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내게 왔다. 자주 쏘이다 보니 말벌의 독에 방어하는 생체반응이 과잉으로 작용해 나를 방어해 준 것이 아니라 실신하게 만든 것. 

땀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혈압이 80까지 떨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119에 연락을 하고 하염없이 앰뷸런스를 기다렸다. 구급차를 기다리는데 20분, 싣고 병원까지 가는데 20분.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내 곁에서 아내는 계속 경련을 일으키는 나를 진정시키느라 온 힘을 다했다.

내가 멀미에 토까지 하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아내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다. 119가 늦게 출동하고 늦게 후송한 것이 아니라 연구소가 산속 깊숙이 있으니 할 수 없는 일!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하여 주사를 맞고 정신을 좀 차리자 아내는 울면서 “이제 그만하자” 한다. 누가 산속에 살라 부탁한 적도 없고 강요한 적도 없다. 멸종위기종 살려보겠다고, 환경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보겠다고 산속으로 들어온 내 잘못. 자칫 죽을 뻔했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 앰뷸런스에 실린 필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산중 생활은 맑은 공기에 깨끗한 물, 그리고 꽃 같은 마냥 즐거운 자연생활이 아니라 목숨 걸고 살아내야 하는 일이다. 10여 년 전 아들을 유행성출혈열로 잃을 뻔했고 난방비 아낀다고 밤나무 땔감으로 불을 때다가 아내와 딸도 가스 중독으로 사경을 헤맸었다. 이제 남편까지 쇼크사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으니 빨리 탈출하고 싶겠지!

30년 산속 생활을 정리하고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그나마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으니 도시로 이사하자며 아내에게 설득을 당하면서도 정신이 좀 들자 붉은점모시나비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번식을 마치고 생을 마감하고 있는 그들의 시신도 거두어 줘야 하고 붉은점모시나비의 자손인 알도 살뜰히 챙겨야 할 때인데 이렇게 병원에 누워있으니. 

1997년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연구소를 차리려 할 때 주변 지인들은 미친 짓이라며 걱정을 했다. ‘자연이나 생태’ 같은 단어들이 아주 생소했고 생물을 소재로 무엇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던 시대에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특별한 일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고생을 했다. 

그러나 2005년 붉은점모시나비를 만나면서부터 차고 넘치는 큰 복을 받았다. 거의 20여 년 동안 고귀한 붉은점모시나비를 연구하면서 얼마나 신비롭고 행복했는지! 붉은점모시나비는 내 은인이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 짝짓기 중인 붉은점모시나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속살이 살짝 비치는 모시 같은 반투명한 날개에 태양처럼 붉은 원형 무늬가 화려한 붉은점모시나비! 이름을 참 잘 지었다. ‘나비’라는 이름이 나풀나풀 날아가는 모습을 말함인데 바람에 휘날리듯 나풀나풀 날아가는 붉은점모시나비야말로 가장 ‘나비’다운 나비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절멸 위협 종이며 대한민국에서도 멸종 위기종Ⅰ급으로 지정된 귀한 몸이기도 하다.

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연구 활동을 통해 새로운 이론이나 자료를 만들고 저술로 다른 연구자들에게 알려 연구 활동의 잠재적인 가치를 확인시키는 작업이다. 붉은점모시나비를 연구하게 된 첫 단추는 영하 48도에 견딜 수 있는 내한성 메카니즘을 규명하는 일이었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 supercooling point graph.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추운 겨울에만 발육하는 이 신비한 생물을 연구하면서 분명 차별화된 생리적 특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유전체 분석 연구로 확장했다. 내동결물질 대사 관련 유전체를 분석해보니 역시 기대한 대로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에서 특별한 물질이 나왔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2021년도에는 치주염에 대한 항균 활성 물질을 확인했고 2022년도에는 붉은점모시나비의 발달 단계별 유전자 발현 패턴을 연구하여 붉은점모시나비의 분자 메커니즘의 기초연구 결과를 도출했다. 올해 5월에는 동물 실험을 통해 부작용 없이 아토피 피부염에 치료 효능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여 펩타이드 신약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 2021년 치주염에 대한 항균 활성을 나타내는 것을 확인한 논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 2022년 붉은점모시나비의 발달 단계별 유전자 발현 패턴 논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 2023년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아토피 피부염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논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보전 연구를 기초로 응용 가능성을 확인하여 국제 학술지에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고 특허를 받으며 향후 붉은점모시나비 기능성 바이오 소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 재료로 온몸을 바쳐 나에게 희생해준 붉은점모시나비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고 곤충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심층적, 실질적 연구가 추가로 진행돼 붉은점모시나비가 치주염이나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제 후보 물질이 탁월한 치료제로 상용화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먹이 식물인 기린초와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의 체내 물질이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이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연구 설계를 하고 있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의 먹이 식물인 기린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곤충학자로서 ‘곤충’ 예뻐해 달라고 오랫동안 참 많이도 설명하고 설득도 했지만 오히려 골칫덩어리 ‘벌레’에 집착한다고 핀잔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3년에 걸쳐 발표한 연구 결과로 붉은점모시나비가, 더 나아가 곤충이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생물 산업의 첨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 너무 다행이다. 

멸종의 위기에 놓인 ‘붉은점모시나비’ 그리고 여러 곤충들에 대한 연민을 가져달라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나 미래를 책임질 발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곤충을 알면 정말 경제가 보인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최신기사

국수본 특별수사단 대통령실 압수수색 불발, 일부 자료만 임의제출로 확보
국수본·공수처·국방부 공조수사본부 출범, "중복수사 혼선과 비효율 해소"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인수 마무리, 2026년까지 자회사로 운영 뒤 통합
삼성전자 노조 윤석열 탄핵 집회에 동참, "민주주의 위해 끝까지 맞설 것"
태영건설 137억 규모 유상증자 추진, 출자전환 통한 재무구조 개선 목적
국내 3대 신용평가사, LGCNS 신용등급 전망 'AA- 긍정적' 상향 조정
현대차그룹 유럽 4위 '위태', 토요타 하이브리드 약진에 소형 전기차로 맞불
윤석열 내란 혐의로 대통령실 7년 만에 압수수색, 경호처 거부로 차질 빚어
[오늘의 주목주] '경영권 다툼 소강국면' 고려아연 8%대 내려, 신성델타테크 18% 급등
한덕수 "12·3 계엄 선포 전 정상적 국무회의 운영되지는 않았다"
koreawho

댓글 (0)

  •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 저작권 등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은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등 비하하는 단어가 내용에 포함되거나 인신공격성 글은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삭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