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가조작 의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증권 범죄와 관련한 검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를 밝히는 동시에 주식시장 안정화를 촉진하기 위한 행보로 읽힌다.
▲ 이원석 검찰총장(왼쪽)이 6월22일 서울 영등포구 KRX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를 방문해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만났다. <연합뉴스>
이원석 검찰총장은 2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를 방문해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과 관계기관 간담회를 열고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조사 및 수사와 관련한 기관 사이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총장은 간담회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불공정 거래 행위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훼손하고 소액투자자를 비롯한 시장 참여자의 재산을 약탈하는 중대 범죄"라며 “한국거래소와 협력을 더 강화하고 한 번이라도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들도록 범죄행위 동기와 유인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시장규제기관과 협력을 돈독히 하기 위해서 한국거래소를 직접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위와 금감원은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거래소도 꼭 한번 찾아오길 희망했다"며 "자본시장을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방문했다"고 말했다.
유관기관과 구체적인 협력방안도 밝혔다.
그는 "최근 발생한 불공정 거래 행위들을 토대로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검찰이 함께 심리 조사기관 협의회를 만들었다"며 "과거에는 시간을 단축하는 패스트트랙 형태였다면 이번에는 아예 한 자리에 모여서 대응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최근 증권범죄가 심각해짐에 따라 5월23일 열린 유관기관 합동토론회에서 ‘증권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협동대응을 시작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남부지검 등 4개 기관은 1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에서 학계 및 연구기관 전문가와 비상 조사·심리기관협의회를 구성하고 1차 회의를 열었다.
검찰과 금융당국이 증권범죄와 관련한 빠른 대응에 나서면서 주식시장도 빠르게 안정되는 모양새다.
SG증권발 사태가 터졌던 5월 일평균 거래대금은 18조 원으로 4월보다 38.1% 감소했다. 그러나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터진 14일부터 21일까지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21조5359억 원으로 13일까지의 일평균 거래대금 18조6539억 원보다 오히려 늘었다.
투자자예탁금 규모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SG증권발 사태 여파로 투자자예탁금은 48조9377억 원까지 줄었으나 5월17일 기준으로 51조8251억 원까지 올랐다.
이 총장은 이날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이 가벼워 불공정 거래가 재발한다는 지적을 듣자 크게 공감하며 증권범죄 양형 강화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청했다.
그는 "시장에서는 불공정거래를 해도 형량이 낮고 처벌이 가벼워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며 "검찰이 엄정히 수사해 기소해도 부당이득산정 방식과 관련해 논란이 있어 적절한 형이 나오지 못했는데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해 엄중한 처벌이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민법상 손해배상은 통상 차액설을 따른다. ‘차액’이란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했을 재산 상태와 그 위법행위가 가해진 현재의 재산 상태의 차이를 말한다.
다만 차액설로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내거래는 경쟁매매방식으로 주가 또한 한 가지 요소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만큼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범죄로 인한 부당이득액의 규모를 정확하게 계산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는 4월말 발생한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폭락 사태에 이어 14일에도 5개 종목의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터진 바 있다.
‘소시에테제네랄 증권발 폭락 사태’는 4월24일 다우데이타, 하림지주, 다올투자증권, 대성홀딩스, 선광, 삼천리, 서울가스, 세방 등 8개 종목 주가가 갑자기 급락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라덕연 전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 일당이 2019년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매수·매도가격을 미리 정해놓고 주식을 매매하는 통정매매 등의 방식으로 8개 기업의 주가를 조작해 7305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고 고객들을 유치하고 고객 명의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위탁관리해 1944억 원의 부당이득을 본 혐의도 받고 있다.
14일 발생한 ‘무더기 하한가 사태’는 온라인 주식 정보 카페 운영자인 강모씨(52세)가 배후로 지목됐다.
검찰은 강씨가 2020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통정매매 등 라덕연 대표와 유사한 시세 조종 행위로 동일산업, 동일금속, 만호제강, 대한방직, 방림 등 5개 종목의 주가를 조작해 104억 원 규모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검찰총장으로 1969년 광주 출신이다. 서울 중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8년 제27기로 사업연수원을 수료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는 사법연수원 동기다. 1992년 육군 상병으로 복무만료 제대를 했기 때문에 군법무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로 임관했다.
그 뒤로 수원지검 검사,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제주지검 부장검사, 창원지검 밀양지청장을 맡은 뒤 정통 ‘특수통’ 계보로 여겨지는 대검찰청 반부패부 수사지원과장 및 수사지휘과장(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2•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했다.
특수1부장 재임시절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비리의혹과 자원 외교 수사를 맡았다. 2017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위해 만들어진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부장검사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는 2007년 삼성 비자금 특별수사본부, 2011년 대검 중앙수사부 등에서 함께 일해 ‘윤석열 사단’으로 묶인다.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수원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된 뒤 제주지검장으로 전보됐다. 2020년 발생한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건’ 때는 법무부의 검찰총장 직무 정지와 징계 청구를 비판하는 검사들의 성명 발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자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발령돼 검찰총장 직무대리를 맡았다. 같은 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의 지명으로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