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충돌 격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볼똥'이 튈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중국 사업의 방향을 놓고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사업을 놓고 강하게 충돌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불똥이 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는 만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중국사업을 두고 더욱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공장을 위주로 첨단공정을 도입해 중국 공장 의존도를 점차 줄여나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는 투자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2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치권에서 중국에서 한국 반도체업체(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을 막겠다고 나서면서 한국기업이 미·중 반도체 갈등에 단기적인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잃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출동은 최근 격화하는 양상이다.
중국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21일 보안문제를 이유로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에 대응한 중국 정부 최초의 보복 조치다.
이에 미국 하원에서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이크 갤러거 의원은 23일 중국 D램 업체인 CMXT에 대한 무역 제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맞불을 놓았다. 게다가 중국 기업들이 마이크론 반도체 대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반도체를 채용하는 것도 막으려 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하원의 목소리를 반영한 요청을 한국 기업들에게 해온다면 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장비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한국 반도체기업이 수입한 반도체 장비 가운데 미국산 장비 비중은 41.7%로 일본(28.2%)과 유럽(13.6%)을 크게 앞선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가 2022년 10월에 부여한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제한의 1년 유예가 끝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은 반도체 장비를 조달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분쟁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혜는 커녕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더 디플러맷(THE DIPLOMAT)은 “마이크론은 중국에서 한국의 칩 제조업체들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정치적인 위험 등을 고려하면 레노버, 샤오미, 인스퍼 일렉트로닉스 등 기존 중국 마이크론 고객은 한국기업보다는 자국(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로 이동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바이든 정부는 마이크론의 메모리가 중국에서 금지될 경우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워서는 안 된다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개입하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며 “조만간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4월 미국을 방문해 반도체와 관련한 얽히고설킨 매듭을 풀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 결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는 10월 미국 정부로부터 1년의 반도체장비 수출규제 유예기간을 추가로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해외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 미중 반도체 분쟁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 두 회사의 재무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
하지만 중국이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로 보복에 나선 현재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반도체장비 수출규제 유예기간을 연장해줄 여지가 한층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도 불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자사 낸드의 약 40%를 만들고 SK하이닉스도 자사 D램 가운데 약 40%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 비중에서 중국(홍콩 포함)은 54.6%로 압도적인 1위다.
이에 장기적으로는 한국 공장을 위주로 첨단공정을 도입해 중국 공장 의존도를 점차 낮추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처럼 반도체 생산기반을 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산기반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처럼 반도체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중국 내 설비를 국내로 이전하는 방안을 선택하면 설비 이전에 따른 비경상적인 자금 소요도 발생한다. 또 중국 내 대규모 생산설비를 흡수할 수 있는 클린룸 등의 확보와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초기에 재무부담이 집중된다.
김정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2023년 10월에 유예 조치가 연장되지 않는다고 해도 중국 공장에서 일정 공정을 수행한 설비를 국내 공장으로 이전해 미세화 공정을 수행하는 등의 설비운영은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운송 과정에서 제조 리드타임 증가에 의한 생산량 저하, 이에 따른 고정비 및 운전자본 부담 확대, 운송비 및 검수비 증가 등으로 인해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마이크론은 국내 기업과 달리 중국에 공장이 두지 않고 있고 미국, 대만, 일본을 중심으로 생산설비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중국 내 매출이 타격을 입는다고 해도 생산 측면에서는 리스크가 크지 않은 셈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향후 국내 반도체 기업과 마이크론의 생산량 격차가 줄어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2022년 기준 마이크론의 D램 시장점유율은 23%로 삼성전자(45.1%)와 SK하이닉스(27.7%)에 밀린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중국의 마이크론 반도체 제재 조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딜레마에 직면했다”며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중국에서 마이크론을 대체한다면 미국을, 미국과 협력한다면 중국을 화나게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