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북미에서 최종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1천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됨에 따라 아직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지 않은 기아 전기차가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기아는 현대차와 함께 애초 2025년으로 예정됐던 현대차그룹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 준공시점을 최대한 앞당기고 미국에서 IRA에 따른 보조금 제외 적용을 받지 않는 리스 등 상업용 판매비중을 기존 한자릿수에서 30% 이상으로 크게 늘리는 단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정성국 기아 IR담당 상무는 최근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기아는 1분기 리스 비중을 9% 정도로 덜 적극적으로 가져갔지만 4월부터는 25% 이상으로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전략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해도 기아 전기차의 60% 이상은 여전히 테슬라와 GM, 포드, 폭스바겐 등의 주력 전기차 모델과 달리 1천만 원 가까운 전기차 보조금 없이 판매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 EV9는 보조금 없이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경쟁을 벌어야 하는 송 사장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는 EV9을 국내에 내놓는 데 이어 하반기에 미국에서도 판매를 시작한다. EV9이 속한 E-SUV(준대형SUV) 세그먼트는 미국에서 연간 130만 대가 판매될 만큼 인기가 많은 차급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현재 EV9와 같은 3열 전기 SUV는 선택지가 넓지 않은데다 그마저도 대부분 IRA가 규정한 보조금 지급 SUV 가격 상한인 8만 달러를 훌쩍 넘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테슬라 대형 SUV 모델 X의 미국 판매가격은 현재 기본모델 9만7490달러(약 1억3천만 원), 고급 트림인 플래이드는 10만7490달러(1억4400만 원)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플래그십 모델인 EQS SUV의 미국 판매가격은 10만5550달러(1억4100만 원)부터 시작된다.
리비안의 대형 전기 SUV R1S 기본모델의 미국 판매가격은 7만8천 달러(1억400만 원)로 일부 모델은 최대 375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고려한 가격도 7만4250달러로 여전히 EV9보다 높은 가격대를 보인다.
최근 미국 정부는 자동차 자체의 북미 조립 요건뿐 아니라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최소 50% 이상 사용했을 경우 3750달러, 미국 또는 FTA(자유무역협정)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광물을 최대 40% 이상 사용 시 3750달러를 지급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세부지침을 발표했다.
R1S는 미국 FTA 체결국인 한국의 삼성SDI 배터리를 탑재해 절반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경쟁차종 가격대를 고려하면 EV9은 최소 1년 이상 미국 연방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을 수 없음에도 미국에서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된 셈이다.
이에 미국 현지 자동차매체들은 출시 전부터 EV9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톱스피드는 테슬라 모델X보다 '기아 EV9을 선택해야하는 10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저렴한 가격과 24분 만에 배터리용량 10~80%까지 충전하는 800V 초고속 충전시스템, 외부 기기에 차량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V2L(양방향충전) 기능, 180도 회전할 수 있는 2열 시트 등을 경쟁 우위 요소로 꼽았다.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카앤드라이버는 "EV9의 출시는 미국에서 연간 수십만 대가 판매되는 인기있는 중형(미국 기준) 3열 SUV 차급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며 "미국에 리비안 R1S나 테슬라 모델X와 같은 몇가지 3열 전기차가 판매되지만 EV9보다 훨씬 비싸다"고 분석했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랜드도 "테슬라나 메르세데스-벤츠, 리비안이 3열 전기차를 보유하고 있지만 EV9은 보통 소득 수준의 고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첫번째 3열 전기 SUV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기아 EV9 정측면. <기아>
송 사장은 4월 열린 기아 CEO 인베스터데이 행사에서 "올해 미국에서 플래그십 신차 EV9을 성공적으로 출시해 전기차 선도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송 사장은 올해 EV9 출시를 계기로 미국 전기차 점유율을 지켜내고 내년 현지 전기차 생산 시점을 최대한 앞당겨 전기차 선도업체로 도약하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는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3 뉴욕 국제 오토쇼'에서 내년부터 기아 미국 조지아 웨스트포인트 공장에서 EV9을 생산할 계획을 밝혔다.
기아는 내년 중반까지 EV9 현지 생산 시점을 앞당기고 추후 미국 공장에서 5개 차종의 전기차를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송 사장은 3월 EV9 월드프리미어(세계최초공개 행사)에서 "EV9은 기아 역사상 가장 혁신적 차량 중 하나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차량이 될 것"이라며 "기아가 전세계 전동화 경쟁구조를 재편하고 전기차 톱 티어 브랜드로 올라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