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3-04-19 15: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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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쿠팡이 최고기술책임자(CTO) 자리를 8개월 가까이 비워놓고 있다.
IT(정보기술) 기반의 이커머스 기업이 핵심 보직을 오랜 기간 공석으로 두는 것은 이례적으로 여겨진다.
▲ 쿠팡이 최고기술책임자(CTO) 자리를 8개월 가까이 비워놓고 있다. IT(정보기술) 기반의 이커머스 기업이 핵심 보직을 오랜 기간 공석으로 두는 것은 이례적으로 여겨진다.
쿠팡은 현재 CTO를 채워야 할 만한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쿠팡의 기술개발을 믿고 맡길 만한 적임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19일 쿠팡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초부터 현재까지 쿠팡의 CTO 자리는 비어 있다.
애초 지난해 9월 초까지만 해도 쿠팡에서 CTO로 일하던 인물은 투안 팸이었다. 투안 팸은 우버에서 7년 동안 CTO로 일했던 인물로 2020년 9월 쿠팡에 합류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갑작스럽게 회사에 은퇴한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그가 맡던 자리는 공석이 됐다.
당시 해롤드 로저스 쿠팡 경영관리총괄 수석부사장은 사내메일을 돌려 “투안 팸 CTO가 2022년 9월 은퇴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한다”며 “투안 팸은 고객들이 쿠팡을 가장 필요로 하던 펜데믹 초기의 중대한 시점에 합류했으며 혁신 기술을 적극 활용해 이커머스 수요 급증에 잘 대응했고 고객과 배송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투안 팸은 지난해 9월 초 쿠팡 CTO에서 물러났는데 이후 쿠팡은 새 CTO 영입과 관련해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쿠팡은 이와 관련해 투안 팸이 CTO로 머물던 시절 내부 기술개발 조직의 역량을 고도화시켰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로저스 수석부사장도 투안 팸의 은퇴 소식을 전할 때 “투안 팸의 CTO 임기 동안 테크팀은 분산 모델로 재정비됐다”며 “테크 조직 분권화로 각 전담 테크팀들은 쿠팡의 고객 및 비즈니스 고유 니즈에 더욱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IT 관련 개발 수요가 끊이지 않는 이커머스 기업이라는 특성상 조직 분권화가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CTO를 공석으로 두지는 않는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각 조직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됐다 하더라도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대로 프로젝트를 이끌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은 어느 조직에나 필요하며 이런 역할을 수행할 인물로 CTO를 선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측면에서 쿠팡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커머스 기업들은 모두 CTO를 핵심 인력으로 채용해놓고 있다.
쿠팡이 오랫동안 CTO를 선임하지 않는 것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이다.
우선 투안 팸을 대체할 만한 인물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적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투안 팸의 쿠팡 합류는 스타트업계에서 큰 화제였다. 베트남 난민 출신으로 미국 스타트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개발자로 꼽힌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투안 팸은 1966년생으로 베트남 사이공에서 태어났지만 베트남 전쟁 탓에 1979년 배로 베트남을 탈출했다. 인도네시아 난민수용소에서 10달을 지낸 뒤 미국에 정치적 난민 자격으로 망명했다.
투안 팸의 어머니는 베트남에서 회계사로 일했지만 영어를 하지 못했던 탓에 미국에서는 힘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주유소, 밤에는 식료품점에서 일하며 가족을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투안 팸은 이런 환경을 딛고 1986년 미국 MIT에 입학해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HP연구소와 실리콘그래픽스, 넷그래비티, 더블클릭, VM웨어 등 실리콘밸리의 여러 스타트업을 거쳤다.
투안 팸이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것은 2013년 우버 CTO로 합류한 이후다. 당시 우버를 이끌던 트래비스 캘러닉 최고경영자(CEO)는 투안 팸을 2주에 걸쳐 30시간 넘게 인터뷰한 끝에 그의 기술에 감탄했다고 한다.
▲ 2020년 9월부터 지난해 9월 초까지 쿠팡의 최고기술책임자를 역임했던 투안 팸(사진). 투안 팸은 미국에서도 성공한 이민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쿠팡이 새 CTO를 쉽게 선임하지 못하는 것은 기술력 측면에서 투안 팸과 같은 인물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투안 팸은 우버의 성장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뉴욕 카네기재단이 선정한 최고의 이민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쿠팡 역시 투안 팸을 CTO로 영입할 당시 그의 이력과 관련해 “우버에 합류했을 당시 연간 승차공유 횟수가 1천만 건 수준이던 우버를 세계 800개 도시에서 해마다 70억 건 이상의 승차공유를 연결하는 서비스로 성장시켰다”며 “세계 각국 도시의 교통 상황과 기사 및 승객의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연결하는 최첨단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스타트업계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 쿠팡의 CTO를 맡았었던 만큼 전임자의 역량과 비슷한 수준의 인재를 영입하려다 보니 후보군을 찾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쿠팡의 기술개발을 오래 맡길 만한 인물 찾기가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투안 팸의 CTO 사임 소식은 쿠팡에게도 갑작스러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투안 팸의 계약기간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2년 만의 퇴장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역량이 검증된 C레벨 임원(각 분야의 최고책임자)이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오랜 기간 함께 해주는 것을 원하는 것은 어느 기업에게나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보면 투안 팸의 갑작스러운 사임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새 CTO 영입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 아니겠냐는 말도 일각에서 나온다.
물론 쿠팡이 CTO를 외부 영입하기보다 내부 인사 가운데 한 명을 뽑아 승진해 선임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열려 있다.
여태껏 외부에서 사람을 찾는 데 충분한 시간을 썼지만 여전히 적임자를 찾지 못한 만큼 차라리 내부에서 역량을 다져온 인물을 CTO로 선임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여태껏 CTO 선임을 고심해온 만큼 지금처럼 별다른 잡음이 없다면 현재 기조를 유지하다가 쿠팡의 눈높이에 맞는 인물이 나타날 때를 기다릴 공산도 크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