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TSMC가 파운드리 고객사 주문 축소에 대응해 EUV 장비 구매 물량을 대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ASML의 EUV 반도체장비.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반도체 파운드리 업황 부진에 대응해 ASML의 반도체장비 주문을 대폭 축소했다. 최대 고객사인 애플의 3나노 미세공정 주문 감소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파운드리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TSMC의 투자 위축을 기회로 삼아 점유율을 높일 기회를 얻으면서 반도체 생산 단가를 낮추는 등 공격적인 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다.
18일 대만 경제일보 보도에 따르면 TSMC와 삼성전자, 인텔 등 주요 고객사에서 네덜란드 ASML의 EUV(극자외선) 반도체장비 주문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EUV장비는 7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노광장비다. 전 세계에서 ASML이 유일하게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까지 파운드리시장에서 시설 투자 경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던 만큼 ASML이 주요 고객사의 수 년 뒤 공급 물량을 미리 수주해 둘 정도로 강력한 수요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일보에 따르면 TSMC는 최근 ASML의 EUV 장비 주문량을 최대 40% 축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업황 부진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만 현지 반도체 장비업체도 2024년까지 주요 고객사의 주문 물량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인력 감축을 비롯한 비용 절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제일보는 “반도체 장비기업들은 거센 ‘한파’에 살아남기 위해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TSMC는 경제일보를 통해 주요 고객사들이 업황 개선을 확인할 때까지 주문을 대폭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재고 물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TSMC의 최대 고객사인 애플마저 3나노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 공정을 활용하는 데 이전보다 보수적 태도를 보이면서 반도체업황에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애플은 당초 올해 출시하는 15인치 맥북에어 신제품에 3나노 공정 기반의 새 자체 개발 프로세서 ‘M3’을 탑재하려는 계획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재검토 하기 시작했고 5나노 공정을 활용한 M2 프로세서를 탑재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M2는 이미 출시된 맥북에어 및 아이패드 프로에 탑재되는 반도체다. 신제품에도 같은 프로세서를 적용하려는 것은 기존에 쌓여 있는 M2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경제일보는 이런 내용을 보도하며 “TSMC의 3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상용화 계획이 늦춰지게 됐다”고 보도했다.
▲ 삼성전자가 EUV 공정을 도입하는 화성 반도체공장 전경. |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시장에서 부동의 1위 업체인 TSMC가 이처럼 고객사 물량 수주에 고전하며 시설 투자마저 대폭 축소하는 상황은 다른 경쟁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TSMC의 시장 점유율을 따라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시설 투자를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대응 전략을 고심하게 됐다.
삼성전자가 TSMC의 투자 위축을 기회로 삼아 생산 증설에 나선다면 유의미한 수준으로 점유율을 추격할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할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공급 과잉에 대응해 출하량을 크게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파운드리를 비롯한 시스템반도체 감산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오히려 용인에 앞으로 20년 동안 300조 원을 들이는 공격적 수준의 시스템반도체 시설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물론 삼성전자 역시 TSMC와 마찬가지로 주요 파운드리 고객사의 재고 조정을 위한 주문 축소에 직격타를 받아 당분간 부진한 실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제일보는 “삼성전자는 TSMC보다 더 심각한 주문 축소 압박을 받고 있다”며 “고객사 기반이 비교적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바라봤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오히려 이런 상황에 대응해 파운드리 공급 단가를 더욱 낮추면서 TSMC의 점유율을 추격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TSMC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적극적으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을 추격 기회로 삼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경제일보는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고객사 주문 확보를 위해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업황 부진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으로 반도체업황에 압박이 더 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업황 악화에도 시설 투자를 늘리고 파운드리 단가를 낮춘다면 수익성을 확보하는 일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TSMC의 점유율을 따라잡는 일이 삼성전자의 중장기 과제에 해당하는 만큼 지금 상황은 삼성전자의 추격에 절호의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