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미국 전기차 판매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였는데 미국 정부가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하는 새로운 규제안을 준비하고 있어 추가적 설비투자 압박까지 더해 2중고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자국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비중을 8년 내 10배로 높이기 위한 공격적 규제안을 곧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미국 전기차 판매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였는데 새로운 규제안이 마련되면 추가적 설비투자 압박까지 더해져 2중고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완성차업체들 중에는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 선두권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데 새로운 규제안은 전기차 판매 1위 테슬라 추격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32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약 3분의2를 전기차로 대체하기 위한 탄소배출 규제안을 12일(현지시각) 발표한다.
NYT는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을 인용해 새로운 규제안은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을 54~6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 수치는 2032년 64~67%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가운데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5.8%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미국 정부는 8년 만에 이를 10배가량 늘리겠다는 공격적 계획을 세운 셈이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2030년 미국 신차 판매량의 절반을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한 기존 목표치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이런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완성차업체에 인센티브를 지급할지 과태료를 부과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서 차를 판매하는 완성차업체들은 2032년까지 현지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3분의2가량을 전기차로 채워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기아는 최근 'CEO 인베스터데이'를 열고 2030년 미국(캐나다 포함)에서 47만5천 대의 전기차를 팔아 미국 전체 판매 101만5천 대 가운데 전기차 판매 비중을 47%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아의 올해 미국 시장 전기차 판매 비중 목표치는 6%인데 이를 7년 만에 8배가량 높이겠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2030년 미국에서 전기차 53만 대를 판매해 전체 판매량의 58%를 전기차로 채울 계획을 세워 뒀다. 현대차의 2030년 목표치는 새 규제안의 2030년 기준에는 들어간다.
하지만 기아가 2030년 전기차 비중 60%를 달성하려면 전체 판매량 목표가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추가로 전기차 13만4천 대를 더 팔아야 한다.
기아는 2030년 미국 전기차 목표 판매량을 1년 전 잡았던 목표(31만여 대)와 비교해 최근 50% 이상 높여잡았는데 이를 다시 28% 이상 상향해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2030년부터 2년 안에 기아는 물론 현대차까지 미국의 새 탄소배출 규제에 따라 전기차 판매 비중을 전체 판매량의 3분의2 이상 수준까지 가파르게 상승시켜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올 1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 판도가 요동치는 가운데 지난해에 이어 3위 자리를 지켰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모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1분기 미국에서 1만4703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미국 전기차 판매 순위 3위에 올랐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연간 판매 순위에서 0.5% 간발의 점유율 격차로 현대차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던 포드는 1분기 5위로 미끄러졌고, 지난해 연간 전기차 판매 순위권에 들지 못했던 GM이 2위로 치고 올라왔다.
지난해 65% 점유율로 미국 전기차 판매 압도적 1위에 올랐던 테슬라는 올 1분기에도 전기차 16만1630대를 팔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완성차업체 가운데 미국에서 테슬라를 추격하는 위치에 올라 있지만 주로 국내에서 전기차를 만들고 있어 북미 생산을 요건으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만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말 북미 생산 요건을 적용받지 않는 상업용 전기차에 리스회사가 사업용으로 구매한 전기차도 포함하도록 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도 법인이나 렌터카, 리스회사 등에 판매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리스 등 상업용 판매를 크게 늘려 '발등의 불' IRA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전기차 전환 정책에 따른 추가적 설비투자 등의 부담까지 '이중고'를 안게 됐다.
미국 정부의 탄소배출 규제안이 구체화하면 현대차그룹은 연간 30만 대 규모의 조지아주 전용전기차공장 건설뿐 아니라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에서 전기차 추가 생산라인 증설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NYT는 "새로운 규제안은 완성차업체에 상당한 도전"이라며 "대부분의 주요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 생산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미국 정부의 탄소배출 규제 수준에 맞는 규모에 도달한 업체는 거의 없다"고 바라봤다.
전기차 만을 판매하는 테슬라는 생산 혁신을 통해 선제적으로 확보한 압도적 수익성을 바탕으로 올해 들어서만 5번이나 가격 인하를 단행하며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 대당 평균 순수익은 9574달러로 GM 2150달러, 폭스바겐 973달러, 현대차 927달러 를 압도한다. 포드는 전기차를 한 대 팔 때 마다 762달러의 순손실을 보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테슬라 추격의 고삐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급진적 전기차 전환 정책에 발맞춘 과감한 전기차 투자 전략을 추가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미국 전기차 전문매체 일렉트렉은 "테슬라와 리비안, 폴스타, 루시드 등 전기차 업체들은 아직 충분한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새로운 미국 전기차 블루오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이들은 2030년에 맞춰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에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