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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CEO' 없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용인술 때문인가

조은아 기자 euna@businesspost.co.kr 2016-07-21 1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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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 CEO' 없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용인술 때문인가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6년 1월4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에서 열린 2016년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현대자동차그룹에 '장수 CEO'가 없다. 현대차그룹에서 최장수 CEO가 자리를 지킨 시간은 7년에 그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인사방식이 '특별'하다. 정 회장은 수시로 사장급 인사를 한다. 현대차그룹 임원들은 1년 내내 긴장해야 한다.

◆ 현대글로비스 7년째 지키는 김경배

21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가운데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를 가장 오래 지키고 있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만 7년째 대표이사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대표이사들은 최근 대표에 올랐거나 겨우 2~3년차에 머물고 있다. 삼성그룹이나 LG그룹 등 다른 그룹에 10년 이상의 장수 CEO가 한두 명씩은 있는 점과 대조적이다.

김경배 사장은 2009년 7월 45세의 나이로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김 사장이 취임하기 전 현대글로비스는 잦은 CEO 교체로 어수선했다.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5명이나 바뀌었다.

  '장수 CEO' 없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용인술 때문인가  
▲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
김 사장의 장수비결은 우선 실적이다.

김 사장 취임 첫 해였던 2009년 현대글로비스는 매출 3조2천억 원, 영업이익 1500억 원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은 14조7천억 원, 영업이익은 7천억 원으로 불어났다. 7년 동안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4배가량 급증했다.

정몽구 회장의 신임이 두텁다는 점도 김 사장이 장수 CEO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사장은 1990년부터 10년 동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수행비서로 일했다. 2007년부터 현대차그룹 총무팀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정몽구 회장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 우유철, 현대제철 고로 가동 일등공신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이 김경배 사장 다음으로 대표이사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다.

우 부회장은 2010년 3월 현대제철 대표이사에 올라 6년4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우 부회장의 장수비결 역시 정몽구 회장의 강한 신임이다. 우 부회장은 특히 정몽구 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현대제철의 고로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현대제철의 첫 고로인 당진 1고로는 2009년 12월 완공됐다. 당시 현대제철이 고로를 짓는 데 대해 과다 경쟁을 걱정하는 철강업계의 목소리가 높았다.

  '장수 CEO' 없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용인술 때문인가  
▲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정몽구 회장은 안팎으로 시끄럽던 이 시기에 그룹에서 몇 안 되는 철강전문가인 우 부회장을 내세웠다. 우 부회장은 고로 가동 직후인 2010년 3월 현대제철 대표이사 겸 사장에 취임했다.

우 부회장은 일관제철소 건설도 진두지휘했다. 우 부회장은 당시 매일 아침 6시 당진사무소 회의실에서 임원회의를 진행하고 하루종일 현장을 돌며 건설작업 하나하나를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우 부회장의 지휘 아래 현대제철은 사업규모를 늘렸다. 포스코가 독점하던 자동차강판시장에 뛰어들었고 현대하이스코와 합병도 무사히 마쳤다.

◆ 임기 못 채우고 떠나는 대표이사들

김경배 사장 이전까지 현대차그룹에서 대표적 장수 CEO로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이 꼽혔다. 박 전 부회장은 2007년 3월 대표이사에 올라 7년 반이나 자리를 지켰다.

박 전 부회장이 2014년 10월 돌연 사의를 표명하자 업계에서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현대제철은 박 전 부회장이 “경영 안정화에 따른 후진 양성”을 위해 사임했다고 밝혔으나 정의선 부회장체제를 준비하기 위해 정 회장이 사전정지 작업에 나섰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은 2011년 3월 대표이사에 선임돼 5년 이상 자리를 지켰다. 이원희 현대차 사장은 올해 3월, 윤갑한 사장은 2012년 3월 선임됐다. 윤갑한 사장과 함께 대표이사에 올랐던 김충호 사장은 지난해 말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한우 사장은 2014년 11월 대표이사에 올랐다. 당시 전임사장이던 이삼웅 사장이 기아차 파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강학서 현대제철 사장은 2014년 10월 선임됐다. 임영득 현대모비스 사장은 올해 5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임 사장의 전임이던 정명철 사장은 2년5개월 만에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장수 CEO' 없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용인술 때문인가  
▲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
대표이사에 선임된 지 두 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도 있다. 김태영 현대제철 사장은 2008년 1월 대표이사에 올랐으나 같은해 3월 돌연 자리에서 내려왔다.

정몽구 회장은 때를 가리지 않는 수시인사와 한 번 퇴임시킨 인사를 다시 요직에 중용하는 패자부활 인사로도 유명하다.

이를 놓고 긴장감을 불어넣어 조직을 유지하는 정 회장 특유의 용병술이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불확실성에 따라 안정적 경영을 막는다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현대차그룹에 외부 출신 CEO가 거의 없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대부분 대표이사들은 현대차그룹이나 과거 현대그룹 출신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조직문화가 보수적인 만큼 외부인사를 CEO급으로 영입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 들어 전무나 상무급에서 외부인사 영입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 재무통의 약진

최근 현대차그룹에서 재무통 인사들이 약진하고 있다.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재무전문가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로 사내이사로 선임한 5명의 임원이 모두 재무통이다.

이원희 현대차 사장과 한용빈 현대모비스 전무, 김순복 현대글로비스 전무, 유종현 현대로템 상무, 김택규 HMC투자증권 상무 등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처음으로 이사 자리에 오른 임원들이다.

  '장수 CEO' 없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용인술 때문인가  
▲ 이원희 현대차 사장.
이원희 사장은 현대차에 입사해 줄곧 재무분야에서만 일했다. 재정팀장과 국제금융팀장, 미국법인 재경담당 상무 등을 거쳐 현대차 재경본부장에 올랐다.

현대차의 수익성 악화가 심각한 만큼 경영전반에서 낭비요인을 잡아내고 내실을 다지는 관리형 재무통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노조가 강해 인적 구조조정에 한계가 있다”며 “재무통을 통해 경영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이 과정에서 줄일 수 있는 건 줄이자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현대차그룹 안에서 재무통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공대 출신으로 기술을 중시했다면 정의선 부회장은 경영학으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재무에 밝은 인사들을 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무통 임원들이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서도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경영권을 물려받는 데 핵심역할을 할 것으로 꼽히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말 인사에서 재경 실무책임자인 한용빈 전무와 김순복 전무를 자리만 맞바꿔 발령한 데 이어 이번 주총에서 등기임원으로 선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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