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M이 반도체 아키텍쳐 주요 고객사를 대상으로 로열티 인상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ARM 반도체 설계 기반을 활용하는 퀄컴 프로세서 이미지. |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올해 상장을 추진하며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퀄컴 등 주요 고객사에서 거두는 기술 로열티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ARM의 핵심 고객사인 애플은 이번 논의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진 반면 퀄컴 프로세서를 활용하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가격 인상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3일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ARM은 기술 로열티 책정 기준을 반도체 가격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같은 완제품 가격 기준으로 매기는 새 계약 방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ARM은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과 미디어텍 등 대부분의 모바일 프로세서 설계업체가 활용하는 반도체 설계 기반(아키텍쳐)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약 95%의 모바일 프로세서가 ARM 아키텍쳐를 기반으로 설계되는 만큼 ARM은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ARM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고객사들에 거두는 기술 사용료를 높여 실적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르면 올해 안에 ARM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할 계획을 세워둔 만큼 기업가치를 유리하게 인정받으려면 중장기적으로 실적 증가에 기여할 만한 요소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ARM이 현재 논의중인 계획대로 반도체 단가가 아닌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완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로열티를 책정한다면 기술 사용료가 더 오를 공산이 크다.
기술 사용료가 비싼 고성능 모바일 프로세서는 대부분 프리미엄 제품에 탑재되는 만큼 제품 판매가격도 높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정책이 자리잡으면 ARM이 거두는 로열티가 지금의 몇 배 수준으로 늘어나게 될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주요 고객사들은 ARM의 이런 결정에 반발할 공산이 크지만 반도체 설계시장에서 ARM의 막강한 지위를 고려하면 대안을 찾기는 어렵다.
현재 퀄컴과 대만 미디어텍, 유니삭과 샤오미, 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이 ARM의 로열티 산정 방식 재검토 대상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현재 갤럭시S23 및 갤럭시Z폴드, 갤럭시Z플립 등 고사양 스마트폰에 대부분 퀄컴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있다.
퀄컴 반도체를 사용할 때 ARM에 지불하는 기술 사용료가 높아진다면 이는 자연히 갤럭시 스마트폰의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판매가격이 인상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조사기관 테크인사이츠 분석을 인용해 퀄컴 프로세서의 평균 단가는 약 40달러, ARM이 거두는 로열티는 이 가운데 1~2% 수준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반도체 원가가 아닌 스마트폰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로열티는 대폭 늘어날 수 있다.
다만 ARM 핵심 고객사인 애플은 이미 특별한 형태의 계약을 맺고 있어 이번에 로열티 산정 방식을 재검토하지 않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 내용대로라면 애플이 ARM에 지불하는 기술 사용료는 그대로 유지되는 반면 삼성전자와 같이 퀄컴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기업은 다소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ARM과 퀄컴 등 고객사 사이 협상이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만큼 스마트폰 가격에 미칠 영향을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모바일 반도체에 핵심 기술을 보유한 ARM이 수익성 개선을 추진하는 움직임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다수의 모바일 프로세서 및 스마트폰 업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현재 IT기업 투자 펀드 '비전펀드'의 손실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데 자회사인 ARM의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논의된 ARM의 로열티 인상 계획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일 이유가 충분하다.
다만 삼성전자와 소프트뱅크의 오랜 협력 관계를 고려하면 ARM이 삼성전자에 무리한 요구를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사업 논의를 진행할 때 ARM의 반도체 기술 사용료와 관련한 내용이 거론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