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온과 SSG닷컴은 각각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 내에서도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있는 조직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롯데온이 임직원들을 위해 리프레시 공간으로 마련한 휴게실의 모습. <롯데온 블로그> |
[비즈니스포스트]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은 '유통공룡'으로 불린다. 매출이나 조직 규모 면에서 다른 경쟁기업과 비교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거대한 몸집 탓에 변화에는 상대적으로 둔할 수밖에 없다. 많이 유연해졌다고는 하지만 혁신적 조직문화를 내세우는 다른 기업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 소속 계열사 가운데서도 가벼운 조직문화를 추구하는 곳이 있다. 바로 각 그룹에서 통합 온라인 쇼핑몰을 담당하고 있는 롯데온과 SSG닷컴이다.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은 왜 이 조직에서만큼은 다른 곳에서 허용하지 않는 변화를 용인하고 있을까?
16일 롯데온과 SSG닷컴에 따르면 각각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에 속한 다른 계열사와 달리 롯데온과 SSG닷컴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조직문화가 존재한다.
롯데온이 자랑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휴가다.
롯데온은 만 3년 단위로 근속자들에게 총 10일의 휴가를 준다. 통상적으로 다른 기업이나 롯데그룹 내 계열사들이 5년이나 7년, 혹은 10년 단위로 안식휴가를 주는 것과 대비된다.
2시간 휴가 제도도 있다. 연차는 8시간, 반차는 4시간을 차감하지만 이보다 휴가 시간을 더 잘게 쪼개 쓸 수 있다. 필요한 만큼만 휴가를 잘라 쓰고 싶어 하는 구성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기부휴가라는 제도도 있다. 본인이 쓰지 않고 남은 휴가를 휴가가 필요한 동료에게 기부하는 제도다.
롯데온은 구성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직무와 관련해 더 배우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관련 외부 교육이나 컨퍼런스 등을 신청해 수강할 수 있고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드는 비용은 모두 자기계발 지원금에서 지원한다.
이밖에 유연한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유연근무제, 재택-사무실 하이브리드 근무제 등은 롯데온에서 강조되고 있는 조직문화다.
롯데온에 이런 혁신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나영호 이커머스사업부장(롯데온 대표)이 수장에 오른 뒤부터다.
롯데온 관계자는 "전국에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인력 규모가 큰 백화점과 마트에서는 시행하기 어려운 롯데온만의 조직문화는 디지털화를 위해 조성되고 있다"며 "나 대표 취임 이후부터 시장 상황에 맞춰 편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토론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이커머스업의 특성에 맞춰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온의 이러한 조직문화 개선 노력은 한국인사관리협회(KPI)와 AWS서밋코리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말 열린 종무식도 롯데온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롯데온은 지난해 12월22일 오후 2시 '아듀22 이커머스 종무식'을 온라인 회의 플랫폼 줌으로 열었다. '내 방에서 줌으로'라는 종무식 장소 설명은 롯데온의 분위기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 대표는 종무식에 참석하는 직원들을 위해 롯데칠성음료의 주류인 클라우드 맥주와 새로 소주가 포함된 '홈술세트'를 각 직원들의 집으로 미리 보내 자유롭게 종무식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임직원 900여 명이 참석했을 정도로 반응도 좋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온은 구성원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강연도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롯데이커머스를 바꾸는 시간'의 앞글자를 따 '롯.바.시'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강연이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고 있는데 롯데온 소속 직원뿐만 아니라 외부 전문가들이 업무 노하우와 트렌드를 공유하는 시간으로 마련되고 있다.
이밖에 나 대표가 임직원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지지 않고 보내는 CEO레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구성원을 대상으로 여는 타운홀미팅 등은 모두 롯데온의 유연한 조직문화를 뒷받침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SSG닷컴도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차별화한 분위기를 추구한다.
SSG닷컴은 4월부터 새 인사제도를 도입한다. 새 제도의 핵심은 본사 직원에 한해 직급제를 폐지하고 그레이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기존 직급제는 밴드라는 이름으로 운영돼왔으며 한 단계 승진하려면 최소 연한을 체워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직급이 없어지고 오로지 팀장과 팀원만 존재하는 형태로 바뀐다. 신세계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볼 수 없는 조직 구조다.
대신 1단계부터 5단계로 구분된 그레이드제를 도입한다. 본인의 그레이드가 몇 단계인지는 오로지 회사와 본인만 알 수 있다.
그레이드제의 특징은 기존의 '승진 연한'을 없앤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려면 최소 3년을 일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1년 만에도 그레이드가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직무 전문성과 업무 성과만 입증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MZ세대의 화두인 '공정한 보상' 체계도 마련한다.
그레이드가 낮은 직원이라도 개인의 성과가 좋다면 이에 따른 보상도 확대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보완하겠다는 것이 SSG닷컴의 방침이다. 이 역시 신세계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는 아직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롯데온과 SSG닷컴의 이러한 변화는 사실 다른 이커머스기업들이 보기에는 특이한 것이 아니다. 쿠팡과 네이버, 마켓컬리 등 이커머스 주요 사업자들은 이미 이런 제도를 초기부터 사내 문화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그룹 내로 시야를 좁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의 화두 역시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이긴 하지만 조직 규모가 크다는 한계에서 여러 제약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내부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과 다르게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롯데온과 SSG닷컴에서만큼은 다르다.
'보수적일 줄 알고 걱정하며 입사했지만 조직의 분위기와 문화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게 자유롭다'는 경력 직원들의 이직 후기는 기업평가 사이트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롯데온과 SSG닷컴이 개발자 중심의 조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이 조직에 유독 자연스러운 문화를 폭넓게 인정하는 이유로 꼽힌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이들 조직의 특성상 외부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이직한 경력직원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다른 기업에서 이미 수평적 조직문화를 경험한 이 경력직원들로부터 유연한 문화와 분위기에 대한 요구는 많을 수밖에 없다.
경쟁기업의 존재도 롯데온과 SSG닷컴의 수평적 문화 구축에 한몫을 하고 있다.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과거 오프라인 유통을 두고 각축전을 벌였다면 현재는 쿠팡과 네이버 등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과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에 한정해 보면 이러한 신진 세력들에게 크게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기업들과 맞서 성과를 내려면 그 시작을 유연한 조직문화 구축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두 기업의 판단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조직 분위기가 경직되거나 수직적이라면 보다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갖춘 회사로 얼른 이직하려는 것이 요즘 개발자들의 현실이다"며 "기존 계열사들과 다른 조직문화를 도입하지 않으면 경쟁을 위한 인재 확보부터 힘이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