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0월16일 베이징에서 열린 공산당 전체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신화통신>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은 우주항공과 슈퍼컴퓨터, 바이오 및 원자력 등 미래 전략산업을 포함한 핵심 기술 영역에서 혁신을 지속하며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불균형한 발전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아직 한계가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2022년 10월 공산당 전체대회에서 2시간에 걸친 연설을 통해 그동안의 경제적 성과와 사회주의 체제 확립에 대해 자평했다. 이날 연임을 확정지으며 ‘시진핑 3기 정권’을 개막한 데 따라 자신이 중국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다.
중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시 주석의 연임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데다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민심이 악화고 있던 만큼 장기 집권에 대한 당위성을 설득하는 일은 꼭 필요한 수순으로 꼽혔다.
시 주석은 3기 정권의 주요 목표로 우수한 기술 인재 육성과 완전한 자급체제 구축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과 벌이고 있는 ‘반도체 전쟁’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미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반도체 굴기는 중국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겠다는 의미로, 시 주석은 이를 앞세워 자국 반도체기업의 시설 투자와 기술 및 인력 확보, 공장 운영 등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중국은 2014년부터 한화로 약 17조 원에 이르는 정부 주도 펀드를 통해 반도체산업에 막대한 자금을 들였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 반도체기업을 규제하기 시작하자 해당 펀드 규모를 2배 수준으로 늘리기도 했다.
시진핑 3기 체제에서는 모두 1조 위안(189조 원) 안팎의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반도체 지원 패키지 도입 방안도 논의되었다. 대만의 영토 주권을 확보하려는 중국 정부의 공세도 결국 TSMC와 같은 반도체기업의 기술을 차지하겠다는 의도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 정부는 2018년부터 D램 전문업체인 푸젠진화, 반도체 파운드리기업 SMIC를 대상으로 수출 규제를 도입했다. 해당 기업들이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일부 장비와 소프트웨어, 소재 등을 사실상 수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로 약점을 안고 있던 상황에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 왔다. 칭화유니그룹 산하 YMTC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기술을 수 년만에 턱끝까지 따라잡았고 SMIC는 10나노 미만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정부의 규제가 시진핑의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 의지를 꺾는 데 완전한 효과를 거두지 못 한 셈이다.
이후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하고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중국 정부는 다소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민주당의 과거 정치적 기조를 고려할 때 대중국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유력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오히려 이전 정권보다 더욱 강경한 태도로 중국을 향한 규제에 고삐를 더욱 죄기 시작했고, 중국 반도체기업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추가 조치가 이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반도체산업을 재건하겠다는 목표 아래 한국과 대만, 일본 등 동맹국과 힘을 합쳐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려는 외교 전략을 앞세웠다. 그리고 수출 규제도 더 많은 반도체 장비와 소프트웨어, 기술 전문인력 등 영역으로 더욱 확대됐다.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 전체회의에서 중국의 기술적 한계를 강조하며 인재 육성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은 것은 이러한 규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던 시점이다. 바이든 정부의 조치가 중국 반도체에 치명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기업에 중장기적으로 가장 큰 리스크였다. 반도체 기술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연구개발 및 생산 투자 비용 측면에서 정부의 직접적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에 맞서는 일은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진핑 정권의 목표는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 양쪽 분야에서 모두 글로벌 상위 기업으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따라잡는 데 있었고, 결국 삼성전자는 중국의 특정 기업이 아닌 중국 정부 자체를 상대로 경쟁을 벌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더구나 중국이 완전한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더 큰 타격이 예상됐다. 중국은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기업의 최대 수출 국가에 해당하는 만큼 중국 고객사 수요를 빼앗기는 일은 실적 기반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정조준한 미국 정부의 규제로 삼성전자는 큰 반사이익을 보게 됐다. 잠재적으로 최대 경쟁자였던 중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자연히 삼성전자가 중국 기업의 거센 기술 추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와 기술 수출 규제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미국의 반도체 장비 판매 제한을 두고 ‘기술 테러리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정도다.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 전체회의에서 강조한 내용과 같이 미국의 규제가 중국의 기술 발전 노력을 더 자극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이 바이든 정부의 압박에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 원인은 공급망에 핵심인 장비와 소재 등 분야를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점이 꼽힌다.
중국은 뒤늦게 이런 약점을 파악하고 반도체 장비를 포함한 원천기술 확보에 집중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며 반도체 굴기를 원점에서 더욱 탄탄하게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삼성전자가 안심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중국에서 약 80여 곳의 반도체 장비업체가 정부 지원을 받아 연구개발 및 생산 투자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진핑 정부가 미국 규제를 위기 극복의 계기로 삼아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성과를 낸다면 이는 삼성전자와 한국 경제 전반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는 중국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마음을 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정부도 이에 대응해 궁극적으로 인텔과 마이크론 등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정책을 앞세우고 있다.
이런 흐름은 결국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으로 촉발된 탈세계화 시대의 도래를 앞당긴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사업 전반에 더욱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4부 - 삼성 vs CHINA
(1) 중국 ‘반도체 굴기’ 정조준한 미국, 삼성전자도 영향권
(2)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 '선택의 시간', 미중 갈등에 고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