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해 추진해온 인적분할 계획이 주주 반대에 부딪히면서 아예 지주사 전환 계획을 접어버렸다.
▲ 현대백화점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 논의를 완전히 중단하기로 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의 현대백화점 지배력 확보 과제도 당분간 미완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을 설득할 만한 뾰족한 수가 남아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정 회장의 ‘현대백화점 지배력 확대’는 당분간 미완의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10일 현대백화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대백화점은 당분간 지주사 체제 전환 논의를 완전히 중단한다.
현대백화점은 이날 입장문에서 "임시 주주총회에서 '분할계획서 승인의 건'이 부결됨에 따라 그동안 추진해왔던 인적분할과 분할을 전제로 시행할 예정이던 계획은 진행하지 못하게 됐다"며 "앞으로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재추진할 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입장문만 보면 인적분할이 아닌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가능하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포스코의 사례처럼 물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설립은 이번에 논란이 된 '자사주의 마법'을 쓰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의 정공법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자사주의 마법은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의결권 없는 자사주가 인적분할 과정에서 의결권이 되살아나 대주주의 지배력 확보에 기여하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는 인적분할은 물론 물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쪼개면 현대백화점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새 법인이 취득하게 되는 모양새가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취득세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다양한 주주환원 정책을 통해 다른 방식의 인적분할을 추진할 가능성도 완전히 닫았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인적분할을 전제로 지주회사를 만드는 것에 대해 주주들의 눈높이가 달라졌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당분간 지주회사 전환은 완전히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정지선 회장이 지난해 9월부터 추진해온 현대백화점의 지주회사 설립은 운을 띄운 지 약 5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현대백화점의 인적분할 안건이 주주들의 승인을 받지 못한 데에는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은 1월17일 기준으로 현대백화점 지분 8.03%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왜 현대백화점의 인적분할을 반대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내용이 없다.
다만 현대백화점이 기존 알짜 종속회사인 한무쇼핑을 현대백화점 아래 놓지 않고 신설법인인 현대백화점홀딩스 산하에 두겠다는 계획에 제동을 건 것으로 파악된다.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과 목동점, 킨텍스점, 충청점, 김포현대프리미엄아울렛 등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다.
현대백화점이 지분 46.3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정몽근 명예회장(10.38%), 현대쇼핑(8.54%), 현대그린푸드(0.36%) 등 현대백화점 측 지분이 모두 65.61%에 달한다.
한무쇼핑은 최근 몇 년 동안 현금배당을 늘리며 현대백화점과 오너일가의 현금 확보에도 톡톡히 기여해왔다.
현대백화점은 이런 알짜 회사인 한무쇼핑을 그대로 자회사로 두지 않고 새로 만들어질 지주회사 밑으로 옮기려고 했다.
지주회사 밑에 현대백화점과 한무쇼핑을 양축으로 두고 각사가 유통업 내에서도 각기 다른 신사업에 특화된 주체가 되도록 관리하고 전략을 수립해 전개하겠다는 것이 현대백화점의 설명이었다.
지주회사 체제가 완성됐다고 가정했을 때 한무쇼핑을 현대백화점홀딩스의 손자회사로 두는 것보다 자회사로 두는 것이 향후 인수합병에 더욱 유리하다는 점도 현대백화점이 든 명분이었다.
하지만 알짜 회사의 소속을 옮기는 것에 대한 회사 설명에 주주들의 공감대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 현대백화점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이번 인적분할 계획 무산에 따라 정 회장이 앞으로 어떻게 현대백화점의 지배력을 끌어올리느냐가 재계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정 회장은 2022년 2분기 말 기준으로 현대백화점 주식 17.09%를 들고 있다. 최대주주이긴 하지만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다. 현대백화점 주주로는 현대그린푸드(12.05%)와 현대A&I(4.31%), 정몽근 명예회장(2.63%) 등도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