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 기자 ks.lee@businesspost.co.kr2023-01-06 11: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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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가격, 전기요금이 오르자 정부가 취약계층을 위해 겨울철 난방비 특별지원대책을 내놓고 새해 에너지복지 예산도 늘렸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자조모임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 장면.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전기장판을 준대요? 우린 전기장판 못 켜요. 층마다 계량기 달아서 8가구가 같이 전기료를 내는데, 전기장판이나 온풍기 쓰면 다른 가구 부담도 늘어나서.”
동자동 쪽방촌 자조모임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의 김정호 이사장은 “빵모자 쓰고 털 잠바 하나 더 입고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끼면 기초생활수급권자 혜택으로 전기료를 거의 안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주거환경이 열악한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다들 10가구 이상이 한 화장실에서 쌀 씻어 밥 하며 살고 있는데 서로 온수는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스보일러는 방에 약간의 온기를 주는 데에만 써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가격, 전기요금이 오르자 정부가 취약계층을 위해 겨울철 난방비 특별지원대책을 내놓고 새해 에너지복지 예산도 늘렸다.
그러나 예산의 77%는 에너지바우처 지원으로 단기적 구제책이다. 게다가 에너지바우처는 전기, 가스, 연탄, 등유 등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를 지원하고 있어 기후위기에 대비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 새해 에너지복지 예산 35.2% 증가한 2460억 원
연말부터 정부는 ‘겨울철 난방비 특별지원대책’으로 쪽방에는 4억여 원 상당의 전기장판과 등유를, 사회복지시설에는 난방비 52억9천만 원을 지원했다.
연탄쿠폰과 등유바우처 예산은 54억9천만 원이 추가 배정됐다. 지원금 규모는 기존 예산 포함 총 307억6400만 원이었다.
새해 에너지 복지 예산 역시 늘어났다. 6일 비즈니스포스트 취재를 종합하면 연말에 국회를 통과한 2023년 에너지복지 예산은 지난해보다 641억 원(35.2%) 늘어난 2460억 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에너지바우처 예산의 증가 규모가 가장 크다. 1909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520억 원(37.4%)이 증액됐다. 에너지바우처란 일종의 에너지 이용권으로, 저소득층 등 에너지빈곤층이 에너지공급자에게 제시하면 기재된 금액만큼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증가율은 노후변압기 교체 지원이 가장 높다. 지난해 15억 원에서 33억 원으로 두 배 이상(120%) 늘었다.
전력 효율화를 지원하는 전력 효율 향상 예산도 518억 원으로 103억 원(24.8%) 증가했다. 사회복지시설의 LED 교체, 취약계층 가구 고효율 가전 구매, 건물냉난방 원격관리 등 전력 효율을 높이는 데에 지원된다.
아울러 ‘예외지급’ 제도도 지속된다. 쪽방촌·고시원 등 개별가구로 에너지요금이 청구되지 않아 에너지바우처를 쓸 수 없는 환경에 사는 저소득층을 위해 현금으로 에너지비용을 주는 제도다.
◆ 세계경제포럼 "열 손실 줄여 에너지 요금 줄이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에너지위기 속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에너지효율을 고려하지 않은 에너지요금 중심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단열이 안 되어 에너지가 새는 주택을 적정온도로 높이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은 11월23일 홈페이지를 통해 영국 정부와 런던시의 지원 정책을 소개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런던시의 '더 따뜻한 집들(Warmer homes)' 제도는 저소득 런던 주택 소유자와 개인 세입자들이 단열재나 히트펌프,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는 데에 5000~2만5000파운드(755만~3775만 원)의 보조금을 제공한다.
▲ 삼성전자는 자사의 친환경 냉난방 시스템인 히트펌프 'EHS(Eco Heating System)'가 유럽 시장에서 지난해보다 118% 성장을 기록 중이라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히트펌프는 기존 연료를 쓰는 보일러 대비 효율이 높고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적어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제품 라이프스타일 히트펌프 'EHS'. <삼성전자>
또 영국 정부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더 저렴하게 난방할 수 있도록 자금을 제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우리의 집에서 나오는 열 손실을 줄이는 것은 우리의 에너지 요금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와의 싸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난방이 더 잘 되는 집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두고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처럼 영국,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은 에너지복지 정책에 환경과 기후 이슈를 연결해 지원 정책을 짠다. 소득뿐 아니라 에너지효율, 주택 환경, 지역 조건 등 다양한 요인으로 에너지 빈곤을 분석한다.
‘기후변화 위기에 따른 에너지 취약계층 현황 및 제도 개선방안’을 연구하고 있는 여형범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에너지 빈곤은 일반 빈곤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에너지원 접근성, 에너지 가격, 주택의 에너지 효율, 가구소득, 기후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 위원은 “따라서 가구소득으로만 에너지 빈곤문제에 접근하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며 에너지빈곤지표를 바꾼 영국 사례를 소개했다.
영국은 2021년 ‘저소득 저에너지효율’로 에너지빈곤지표를 수정했다. 이 지표는 잔여소득 즉 주택비용과 필수에너지비용을 뺀 나머지 소득과 함께 주택의 에너지 효율 등급을 본다.
미국은 화석연료 의존도, 에너지 부담, 환경 및 기후 위해성, 사회경제적 취약성 등 36개 지표로 취약지역을 선정한다. 취약지역에는 정의40이니셔티브(justice40 initiatives) 사업을 통해 청정에너지, 에너지효율, 지속가능주택 등 연방정부 투자 40%가 배정된다.
'정의40 이니셔티브'는 기후 변화, 오염 및 환경 위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그동안 투자에선 소외된 지역사회에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 화석연료에 대한 지원은 지속성 없어, G20국가 보조금 폐지 노력에 합의
여 연구위원은 “연탄, 등유 등 화석연료에 대한 지원은 세계 추세를 고려하면 지속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적으로 화석연료 보조금 금지가 제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20일 폐막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당사국들은 석탄 발전의 단계적 감축,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대표단이 박수를 치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이에 앞서 11월16일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여 위원은 “에너지 빈곤은 기후위기로 인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며 “에너지 빈곤 당사자가 에너지 빈곤의 경험, 에너지 복지정책의 한계, 원하는 대책을 이야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