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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SG 핵심은 이것] 권유에서 의무로, “성숙해야 성장도 있다”

이경숙 기자 ks.lee@businesspost.co.kr 2022-12-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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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최근 높아진 ESG 압박의 90%는 기후에 관한 것이다.” 한 ESG 전문가가 말했다. 전 세계 회계기준을 만드는 국제회계기준 재단은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공시 기준에 기반한 ESG 공시 기준을 2023년 공표한다. ‘기후패권’을 장악한 유럽연합은 'EU택소노미, 공급망 실사 지침, 탄소국경세’ 3종 세트로 전 세계 기업들로부터 탄소중립 전략을 이끌어내고 있다. 2023년 이후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비즈니스포스트는 분야별 ESG 전문가들을 만나 총 4회에 거쳐 ESG공시와 평가, EU택소노미, 공급망 실사지침 등 ESG 핫이슈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들었다. 

 [2023 ESG 핵심은 이것] (1) 권유에서 의무로, “성숙해야 성장도 있다”
 [2023 ESG 핵심은 이것] (2) ESG워싱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2023 ESG 핵심은 이것] (3) EU택소노미가 밀려온다
 [2023 ESG 핵심은 이것] (4) 법제도화되는 ESG, 핵심은 '준법'
 
[2023 ESG 핵심은 이것] 권유에서 의무로, “성숙해야 성장도 있다”
▲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에 따라 유럽연합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 매출을 일으키는 비EU기업 즉 수출기업, 그리고 자금회전이 일정 기준 이상인 금융사 지점들은 회계연도로 2028년부터는 이 지침에 따라 ESG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탄소배출량이 기존 제품의 600분의 1밖에 안 되는 재생가죽실을 만드는 업체가 있다. 친환경 재생소재 전문기업 ㈜아코플레닝이다.
 
이 업체는 한 글로벌 대형고객사로부터 까다로운 요청을 받았다. 전 과정 평가(LCA) 데이터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제품 생산부터,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한 데이터였다.

BMW, 볼보 등 다른 고객사들 요청도 이어졌다. 이들은 에너지 사용량 절감 활동, 재생에너지 사용, 온실가스 감축활동 등 구체적인 데이터를 요구했다.

결국 이 업체는 재생가죽실 1kg 당 탄소배출량이 4kg이라는 국제환경성적표지(INTERNATIONAL EPD)의 인증을 받아 고객들의 정보 공개 니즈를 해소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한 주주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업체에 투자한 한 벤처캐피털(VC)의 투자 담당자였다. 그는 “앞으론 E(환경) 이슈뿐 아니라 G(지배구조) 이슈도 준비해야 한다, 사외이사를 몇 명 두면 어떻겠냐”고 했다.

홍경희 아코플레닝 상무는 이 일화들을 전하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나 LCA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고객사인 글로벌 대기업들은 저마다 자기들이 세운 임팩트(온실가스 감축 등) 목표가 있어 공급망에도 정보 공개를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세종에서 금융·ESG 분야를 담당하는 송수영 변호사는 "유럽연합 수출기업은 공급망 실사를 통해 공급망에서 배제되면 매출이 사라진다”며 “포스코, SK이노베이션이 포함된 철강, 석유화학 업종의 기업은 환경 이슈에 대한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SG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다. 권유에서 의무로, 하면 좋은 것에서 안 하면 죽는 것으로.

2023년부터 더 강력해질 ESG 이슈들을 비즈니스포스트가 분야별 전문가들과 함께 짚어봤다.
 
[2023 ESG 핵심은 이것] 권유에서 의무로, “성숙해야 성장도 있다”

◆ 세 진영에서 만들어지는 ESG 공시 기준들, 공통점은 ‘기후 정보’

2023년 가장 뚜렷한 변화는 ‘공시’ 분야에서 나타난다. 전 세계에서 크게 세 진영이 ESG 정보 공시에 관한 기준을 만들고 있다.

먼저 시작한 곳은 유럽연합(EU)이다. 유럽연합은 2003년 회계현대화지침에서 회사의 사업과 성과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환경, 고용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공시하도록 했다.

2021년에는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제(SFDR)를 시행하고 유럽 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을 ESG 정보 공시 제정기관으로 지정했다.

여기서 만들어진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에 따라 회계연도로 2024년부터 유럽연합의 대기업 5만여 곳은 기업의 비재무 정보 즉 ESG 정보 공시가 의무화 된다.

한국기업도 조만간 직접적 영향권 안으로 들어간다. 유럽연합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 매출을 일으키는 비EU기업 즉 수출기업, 그리고 자금회전이 일정 기준 이상인 금융사 지점들은 회계연도로 2028년부터는 이 지침에 따라 ESG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미국은 기후 관련 정보를 중심으로 공시 의무화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3월 발표한 ‘상장기업 기후공시 의무화 규정’ 초안에 따르면 기업은 자체 공장이나 사용전력의 온실가스 배출량뿐 아니라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스코프3)까지 공시해야 한다.

ESG 전문가들은 미국의 기후 정보 공시제도가 1~2년 안에 의무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진영은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이다. 이 재단의 회계기준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만든 ESG 공시 기준은 기존의 회계 시스템에 적용되기가 쉽다.
 
[2023 ESG 핵심은 이것] 권유에서 의무로, “성숙해야 성장도 있다”
▲ 국제회계기준의 ESG 공시 기준은 2023년 초반 최종 공표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0월26일 서울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국제회계기준 재단 서울 총회 공식 만찬에서 축사를 낭독하는 장면. <연합뉴스>

국제회계기준 재단은 2021년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하고 공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올해 이 재단은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공시 기준에 기반한 ‘IFRS S1(일반 요구사항)’ 및 ‘S2(기후 관련 공시)’ 초안을 발표하고 각국 정부와 금융사들의 의견을 취합했다.

국제회계기준의 ESG 공시 기준은 2023년 초반에야 최종 공표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국제사회는 이 기준을 중심으로 통합되고 있다.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는 11월 자기관의 기준이 기후 관련 공개 표준(S2)에 통합된다고 발표했다.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는 전 세계 1만8700여 개 기업의 환경 경영 정보를 금융기관 등 680개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국제기구다.

이 세 진영이 공시를 요구하는 정보는 다소 다르다. 장윤제 법무법인 세종 ESG연구소장은 “미국은 기업 성과 및 주주가치에 중요한 정보를 중심으로 원하지만 유럽은 환경 등 기업의 외부효과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공통점은 있다. 기후 정보 공시 부분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국장은 “세 진영 모두 스코프3 공시 의무화를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곳은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한국위원회 사무국을 맡고 있다.

이 국장은 “스코프3를 통해 공급망 등 외부 배출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지 않으면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서구 따라 가는 ESG 기준, “한국 기업들에 부담”

한국의 ESG는 유럽연합이나 미국, 국제회계기준에 비해 제도화 속도가 느리다.

금융위원회는 한국회계기준원 내 지속가능성위원회 신설해 2023년부터 운영을 시작한다. 주요활동은 국제 논의 대응, 국내 기업들의 ESG 공시활동을 지원, 국내에 적용될 ESG 공시기준 검토다..
 
[2023 ESG 핵심은 이것] 권유에서 의무로, “성숙해야 성장도 있다”
▲ 6일 열린 ‘대한상의 ESG경영 포럼’에서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한상의>

2025년부터는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에, 2030년부터는 전체 코스피 상장사에 ESG 기반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가 의무화된다.

이러한 준비 상황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6일 열린 ‘대한상의 ESG경영 포럼’에서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대기업 A’의 사례를 공유했다.

이 대기업은 ISSB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계열사 전체를 통합해 탄소배출자료를 측정하려 했다. 그러나 취합된 정보는 오류투성이였다.

이에 앞서 이 대기업은 계열사에 세세한 작성 기준을 알려주었지만 실제 원칙에 맞게 작성한 계열사는 거의 없었다. 탄소배출 정보 취합을 위한 정보자동화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하였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수작업으로 정보를 적어냈다.

정 교수는 “서구 자본시장의 실정에 맞게 표준화된 공시 기준의 의무 적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한국기업의 공시준비 부담과 비용은 지금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ISSB 기준을 포함한 한국형 통합 기준을 마련해 기업이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ESG평가사 류영재 서스틴베트스 대표는 "ESG 중 특히 S와 G는 나라별 지역별 특수성과 맥락이 매우 중요한데 많은 국내 전문가들은 여전히 글로벌 민간기관들의 평가 프레임워크가 한국적 상황에도 적실하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 대표는 "서구적 ESG 기준들을 한국 맥락에 맞게 재해석해 평가하고 이러한 결과를 해외로 알리는(수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성장에서 성숙으로, ESG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길

그럼에도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에 ESG라는 나침반이 필요하다는 점에선 전문가들 모두 이견이 없었다. 

류 대표는 "ESG경제 패러다임이 한국 경제에 성숙의 묘약 내지 묘방이 되리라고 확신한다"며 "거시적으로 보면 이제 한국 경제가 '성장 추구형'에서 '성숙 지향형'의 경제로 그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한국 경제는 생존을 위한 특성(survivability)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우리 즉 현 세대의 필요를 챙기는 관점이다.

ESG 관점은 다르다. 기업활동이 지속가능한 지뿐만 아니라 기업이 인류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훼손하지 않는지를 본다. 국제사회는 이것을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이라고 부른다.

류 대표는 "지속가능성이란 우리의 현재와 함께 후손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 그들의 필요와 우리의 필요를 결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업이 한 예다. 바다의 물고기를 한꺼번에 다 잡아 들이면 성과를 높일 수 있다. 매출은 성장한다. 그러나 물고기의 씨를 말리는 매출은 기업의 지속성을 훼손한다. 미래 세대의 몫도 사라진다. 따라서 미래의 어족 자원을 남기면서 조업해야 한다. 이것이 '성숙'이다.

류 대표는 "성숙하는 것이 ESG 경영"이라며 "성숙해야 다음 성장도 있다"고 말했다. 이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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