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2열연공장 복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 |
[비즈니스포스트] “우리는 우리 기술력을 믿고 오직 현장 복구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포스코 제1호 명장인 손병락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명장(상무보)은 23일 경상북도 포항시 제철소 현장에서 열린 복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손 명장은 올해로 46년째 포항제철소 설비분야에서 일하며 포스코에서는 처음으로 명장에 선정된 인물이다.
명장 제도는 포스코가 2015년 도입했는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인품을 겸비한 직원을 선발해 예우하는 제도다. 포스코 전체 1만7천여 명 직원 가운데 지난해까지 단 21명만 뽑혔다.
손 명장은 포항제철소 정상화 과정에서 최대 난제로 꼽히던 압연공장 내 모터 복구를 앞장서 이끌고 있었다.
올 여름 태풍 '힌남노'로 수천억 원에 이르는 피해를 본 포항제철소는 손 명장뿐 아니라 복구에 여념 없는 직원들의 열정으로 활기가 넘쳤다. 연말까지 생산 정상화를 목표로 포항제철소 직원 모두가 똘똘 뭉친 분위기가 느껴졌다.
포항제철소는 1973년 최초로 고로를 가동한 이래 수백개 태풍이 지나갔음에도 고로를 멈춘 것은 9월에 한반도를 지나간 ‘힌남노’ 때가 처음이다.
물론 힌남노가 포항에 상륙하기 이전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로 가동 중단을 결정한 것을 놓고는 내부에서도 과한 대응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김진보 포항제철소 선강부소장은 "고로 가동이 중단되면 고로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사용한 발전 설비를 포함해 제철소 전체가 중단된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볼멘소리도 많았다”고 말했다.
포항제철소는 일관제철소로 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해야 반제품인 슬래브와 열연강판이 만들어지고, 이들을 압연공장 등에서 최종 제품으로 생산하는 구조다. 다시 말해 고로가 멈추면 다른 모든 공정도 연쇄적으로 멈춰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 결정이 '신의 한수'였던 걸로 나타났다.
김진보 부소장은 “개인적으로 내가 그런 결정을 할 위치였다면 나는 그렇게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이번에 고로를 멈춘 것은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약 침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공장이 가동됐더라면 수중폭발 등 2~3차 피해가 발생해 걷잡을 수 없이 규모가 커졌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 포항제철소 3고로에서는 휴풍작업 이후 쇳물이 생산되고 있다. <포스코> |
현재 피해를 복구해 가동되고 있는 1열연공장도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1열연공장은 연간 350만 톤 규모의 열연강판을 생산하고 있다. 9월6일 침수된 이후 1달여 만에 복구된 뒤 2열연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까지 대체 생산을 진행하면서 생산피해 최소화를 위해 매진하고 있었다.
허춘열 포스코 압연부소장은 “1열연공장은 1972년 10월 준공된 이후 올해 50년이 된 공장”이라며 “열연공장은 지상보다는 지하 설비가 중요한 데 지하 시설이 모두 뻘로 가득차 있었지만 포스코 직원뿐 아니라 정부와 지역사회 도움으로 단 한 달이라는 이례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복구돼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침수로 대규모 손실을 봤지만 이번 침수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MZ세대(1980년 후반부터 2000년대 출생자) 직원뿐 아니라 정년을 앞둔 직원들 등 연령대와 관계없이 내부 결속을 다지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허춘열 부소장은 “세대를 막론하고 심지어 정년퇴직을 한 직원들까지 힘을 모아 제철소 정상화라는 목표 아래 하나로 뭉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포스코가 50여년 동안 쌓아온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 냉연과 열연 등 압연공장이 침수됐을 때 포스코 안팎에서는 복구까지 1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공장에 있던 지하 설비 때문이다.
▲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에서 중간재 슬래브를 이용해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포스코> |
슬래브를 얇게 펴기 위한 롤러 등을 가동해야 하는 모터 등은 특수제작된 것으로 쉽게 구할 수 없다. 이뿐 아니라 이를 위한 전기 설비도 다 지하에 있는데 흙탕물이 들이닥친 상황인 만큼 설비 교체까지 염두에 둔다면 자칫 수년이 걸릴 수 있었다.
실제 포항제철소 선강 및 압연 공장에는 모두 4만4천여 대 모터가 설치돼 있는데 이 가운데 31%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포스코는 침수 당시 해당 설비들을 신규 발주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제작 및 설치에 1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장에서 바로 복구하기로 결정했다. 포스코가 54년 동안 쌓아온 생산현장의 기술력을 믿은 것이다.
2열연 공장에서 기자와 만난 손병락 명장은 빠른 복구를 위해 현장에서 바로 모터 등의 설비를 수리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압연기용 모터는 170톤 규모인 대형 설비로 해당 모터를 교체하기 위해 설비 자체를 뜯어내는 것부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손병락 명장은 “전원이 꺼져있던 것만 확실하다면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도 “하지만 고졸 출신 사원에 불과한 저의 의견을 믿고 수용해준 경영진뿐 아니라 현장 복구라는 결정에 함께한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피해가 컸던 2열연공장은 포항제철소 핵심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2열연공장은 포항제철소가 연간 생산하는 1350만 톤의 제품 가운데 500만 톤을 담당하는 공장으로 자동차용 고탄소강, 구동모터용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Hyper NO), 스테인리스 고급강 등 주요 제품들이 꼭 거쳐야 하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도 포항제철소 복구 현장에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포스코> |
여기에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도 글로벌 협력을 이끌어내면서 빠른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최 회장은 올해 세계철강협회 회장단에 합류했는데 함께 활동하고 있는 인도 철강사 JSW의 사쟌 진달 회장에게 요청해 JSW 열연공장용으로 제작 중이었던 설비를 포스코로 돌려 신규 장비 조달 시간도 대폭 줄였다.
경영진부터 명장, 현장 직원들까지 하나로 뭉치면서 포스코가 목표로 제시한 복구 시점도 맞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포스코는 모두 18개 압연공장 중 올해 2열연공장을 포함해 15곳을 복구해 침수 이전에 생산하던 모든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나머지 도금 CGL, 스테인리스 1냉연 등은 내년 2월까지 복구를 마쳐 포항제철소의 모든 생산라인을 정상 가동하기로 했다.
손병락 명장은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며 “하면 된다. 이제 정상화까지 다 오지 않았나”며 “나는 우리의 능력을 믿는다”고 덧붙였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