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록강은 흐른다' 독일어 초판(왼쪽)과 이미륵(본명 이의경). 이미륵은 일제 관헌에 잡혀가지 전에 유학길에 올라 멀고 먼 이국 땅 독일에서 조선 민초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국내에서 사실상 잊혀졌던 그의 행적을 나중에 걸출한 '후배 작가' 전혜린이 밝혀낸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1919년 가을,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이의경은 고향 해주로 내려왔다. 지난 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신변의 위험을 느껴 고향으로 몸을 숨긴 터였다. 낙향해 집에 돌아온 아들의 서울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일단 한숨은 돌렸지만, 결국 아들의 행적이 일제 관헌들에 발각돼 신변위험으로 닥칠 것을 예감했다. 대단한 지주까지는 아니었지만 해주에서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양반 집안이어서 세간의 눈을 계속 피하긴 어려웠다.
결국 결심을 털어 놓았다. "지금까지 부모 자식 관계로 이어 온 세월만으로도 족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얘야, 외국으로 떠나라.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슬퍼하지 마라."
몰래 마련해 준 돈을 들고 그는 조국을 떠났다. 일제 관헌의 눈을 피해 열차로 도착한 의주. 달이 밝아 오히려 경계가 덜하다는 어느 날 밤, 작은 나룻배에 몸을 실어 압록강 건너 중국 땅을 밟았다. 요즘 탈북민들이 거친다는 바로 그 과정이다.
열차는 심양 산해관 등 만주를 지나 대륙을 횡단해 상해에 닿았다. 여권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초조하게 기다린 지 거의 1년. 드디어 유럽행 배에 올랐다.
길은 멀었다. 요즘에도 2주일 넘게 걸릴 길이다. 배는 사이공을 거쳐 싱가포르항에 기항한 후 다시 스리랑카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프랑스 마르세유 항에 도착했다.
유럽행을 도운 사람은 안중근의 동생 안봉근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독일 땅. 마르세이유에서 철도로 다시 이동해 드디어 중부 독일의 작은 도시 뷔르츠부르크에 짐을 풀었다.
1946년, 조선 땅 해주에서 어린 시절 추억과 식민지 청년으로서 겪어 내린 시간들, 멀고 먼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게 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글 '압록강은 흐른다'를 발표, 그 해 '최우수 독일어 문학'으로 선정돼 유명해진 이미륵(이의경의 아명)이 바로 그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성립된 바이마르공화국의 진보적 사회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던 독일, 대공황 후 수많은 이념의 소용돌이가 물결치던 그 곳에서 이미륵은 공부하고 고민했다. 생물학 석사를 거쳐 1928년 뮌헨대학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뮌헨은 2차대전 후 동독 연고 기업들이 대거 이주해 온 탓에 전후 산업육성 정책의 수혜를 집중적으로 받아 오늘날 부유한 독일 3대 도시가 되었지만, 당시만해도 조용한 독일 남부의 소도시였다. 이미륵은 그곳에서 틈틈이 글을 썼다. 단아한 태도와 진지한 존재 성찰이 묻어나는 글.
이미륵은 독일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반나치 운동으로 처형된 쿠르트 후퍼 교수, 잉게숄의 논픽션 소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등장한 사람, 그가 이미륵의 은사다. 이미륵은 체포될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가족을 돌봤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했다.
결연했던 어머니의 말대로 1950년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독일 땅에 묻혔다. 위암이었다. 뮌헨 그래펠핑묘에 있는 이미륵의 묘소는 집단 권위주의의 광풍을 이기고 민주주의와 번영을 이룩한 양국의 역사를 기리는 사람들이 꼭 찾는 곳이 되었다.
◆ 망명 독립운동가를 발굴한 친일 관료의 딸
독일에서만 유명했던 잊혀진 청년 독립운동가 이미륵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일본 경찰 출신의 아버지를 두었던 한 여성 독일 유학생이었다.
1937년 고등문관시험 행정, 사법 양과를 합격하고 경찰에 몸 담았던 속칭 '천재'로 일컬어진 사람이 아버지였다. 부친은 해방 후에도 헌병대사령관을 거치는 등 관운을 이어가다 1950년 법학계로 옮겨 오랫동안 한국 법학계에 몸을 담았다.
천재 아버지의 딸도 천재였다. 1952년 열여덟 나이에 한국전쟁 중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으며, 1955년 독일 뮌헨로 유학했다.
전혜린이었다.
사후 출간된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루이제 린저 '생의 한 가운데서'과 '데미안'의 번역자로, '불꽃처럼 살다 간 여자'로 기억되는 바로 그 사람. 이미륵 사후 5년. 독일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아름다운 글로 칭송받았던 '압록강은 흐른다'를 접한 그는 책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했다.
대한제국 말 지방 유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유럽으로 몸을 피한 식민지 청년. 그리고 그 식민지에서 또 다른 삶을 추구했던 아버지를 두었으며 한국전쟁 후 철저히 파괴된 조국을 뒤로 하고 유학길에 올랐던 천재 여성의 만남은 극적이다.
전혜린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왜 번역을 결심했을까?
몇 년 차이로 스쳐 지나간 한 세대 전 선배의 삶이 주는 감동은 아마 강렬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만큼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서울로 돌아온 그는 우울해 했다. 1964년 나이 서른에 성균관대 교수가 되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동숭동 학림다방 한 구석 의자에서 줄담배를 피웠고 술집 '은성'이 밤의 휴식처였다. 결국 1965년 31살 되던 해 그는 생을 마감했다.
◆ 사람은 시간, 공간의 영향을 피할 수 없어
싫든 좋든 사람은 공간과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공간은 시간과 그 속 인간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며, 시간은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아 인간 행동의 저변에 길고도 긴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겪은 시간은 역사로 기억되고, 사람들은 역사를 저마다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상상하며 다시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든다.
한양 땅이 마주 보이는 해주 땅에서 양반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식민 서울의 공간으로 유학해 제국주의와 마주 해야 했던 이미륵의 20대도, 30여 년 후 제국주의 몰락과 전쟁을 거쳐 독일 어느 공간에서 그를 발견한 전혜린의 20대도 그랬을 것이다.
공간과 시간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축이다. 표준적 산업교육의 영향을 받아 언뜻 인간 행동은 규범대로 사회화되고 균질화돼 보이기도 하지만, 내면을 살펴 보면 사람은 외양만 비슷할 뿐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존재인 경우가 허다하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압력이 각각의 내면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시공간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과 그 중요성은 기업에게도 큰 깨달음을 준다.
사람으로 이뤄진 기업의 고민은 언제나 사람을 이해하는 것. 어떤 사람을 뽑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기준에 합당한 사람일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정확히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시공간적 이해에 기초한 사람 이해론은 이런 고민에 한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리더급을 선발한다면 이 원칙은 특히 중요하다. 리더는 실무책임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무 책임자는 이미 규정돼 있는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면 되지만, 리더는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리더는 수행자가 아니라 해결자다.
이전에 이미 겪었던 해결책을 더 잘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상황 앞에 서야 한다. 상황은 자신도 조직도 겪어 보지 않았던 상황, 위기일 가능성이 많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상황은 어떻게 귀결되어야 옳은가? 나는 이 상황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책을 찾기도 하고, 주변의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결국 책이든 조언이든 해석하고 받아 들이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절대적인 사실은 없다. 다만 나의 해석이 존재할 뿐이다. 밤잠을 설치고, 리더의 고민은 결국 존재론적 차원에 이르러서야 결론이 난다.
◆ 외로운 리더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
규범의 힘을 넘어서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 그 사람이 겪어왔던 공간과 시간의 힘이 치고 올라 온다. 업무 성과는 역량이 좌우하며 역량은 성향이 좌우하지만, 성향은 다시 마음이 지배한다.
실제 기업에서 임원급을 대상으로 성과창출 요인을 측정해 보면 실무 책임자의 그것과 다른 점이 포착된다.
그들은 행동요인보다는 내재적 요인에서 공통적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열정적이며, 책임감이 강하며, 물러서지 않고 솔직하며, 희생적이다.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들에서 비슷한 응답특성이 나오는 실무책임자급과 다르다.
실무책임자 단계에서는 교육 훈련의 힘이 제 각각인 성향의 힘을 누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을 본질적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을 평가하는 주요 도구로 인터뷰가 흔히 쓰이지만, 인터뷰는 잘못할 경우 피해가 커진다는 점에서 필요조건이기는 해도 좋은 인재를 뽑는 충분조건은 절대 못 된다.
행동사건 인터뷰 같은 면접 스킬이 있긴 하지만, 증거를 내밀고 심문하는 검사가 아닌 다음에는 피평가자의 자기고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그 공간과 시간 속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 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행동을 규정하는 내면이 일순간에 드러나는 일은 없으니, 알려면 시간이 아니라 시간들을 길게 살펴 봐야 한다.
다양하게 밀려오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조사해 보는 심층 평판조회가 현재로선 그래도 유의미한 수단일 수 있는 이유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불가피하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환경의 영향없이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아 갈 수 있는 생물은 없다.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기도 하다.
통시적 공간 어디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겸허함이 있을 때 한 사람의 실체 파악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가능해진다. 평가자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진국영 커리어케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