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백화점이 여러 홍보활동을 일체 중단했다. 9월26일 발생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화재사고를 완전히 수습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한 몸을 숙이고 있는 모양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이 9월27일 화재사고 유가족들을 찾아 사과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백화점이 몸을 한껏 낮추고 있다.
연말 성수기 대목을 앞두고 여러 프로모션과 크리스마스 행사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백화점은 이를 외부에 거의 알리지 않고 있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화재사고를 아직 완전히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칫 눈총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아예 만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현대백화점의 행보를 볼 때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정기 임원인사를 예년보다 늦게 진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8일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27일부터 현대백화점의 크리스마스 관련 장식인 ‘H빌리지’가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점, 서울 압구정동 본점 등 주요 지점 3곳에 설치됐다.
H빌리지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빈하우스(통나무집) 등으로 구성됐다. 사람들이 직접 통나무집 안에 들어가 내부를 구경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예년보다 크기가 더 커졌다.
올해 H빌리지의 콘셉트는 ‘헛간 이야기(Les Contes De La Grange)’다. 할아버지와 아기곰 해리의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현대백화점은 설명했다.
H빌리지는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H빌리지를 방문한 이들이 인스타그램에 ‘10월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너무 이쁘다. 완전 힐링됐다’고 하자 이를 본 누리꾼들은 ‘사람들 더 많아지기 전에 어서 방문해야겠다’ 등의 댓글도 달고 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이 정식으로 H빌리지를 공개한 27일 오후 12시경 무역센터점을 방문해보니 이미 H빌리지 내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했다.
이번 H빌리지는 철저히 소비자들의 ‘입소문’만을 타고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만 해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10월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공개한다며 H빌리지 관련 홍보를 벌였다.
하지만 올해는 H빌리지 공개 소식을 따로 알리지 않았다. 보도자료를 보내지 않고 현대백화점이 고객과 소통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SNS채널에만 소식을 일부 공유했다는 것은 그만큼 ‘조용히’ 알리고 싶었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이런 움직임은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화재사고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9월26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에서 화재가 일어나면서 7명이 사망하고 1명이 크게 다쳤다.
정지선 회장이 화재 당일 직접 현장을 방문해 고개를 숙였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현재 현대백화점은 그룹 차원에서 유가족들과 사고 보상 관련 합의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화재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한 합동감식 결과도 기다리고 있다.
아직 사고 수습이 끝난 것이 아닌 만큼 현대백화점이 ‘축제를 벌인다’는 눈초리를 받지 않도록 최대한 외부 홍보를 자제하고 있는 모양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사고 수습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룹 차원에서 모든 홍보활동은 최대한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 현대백화점이 27일부터 외부에 공개한 크리스마스 장식 'H빌리지'. <비즈니스포스트> |
현대백화점의 조용한 행보는 마케팅에서도 드러난다.
화재 전만 하더라도 유명 브랜드의 팝업스토어(임시매장) 오픈 소식, 유명 F&B(식음료) 매장 입점 등의 소식을 발빠르게 알렸지만 사고 이후에는 이런 소식들을 현대백화점의 보도자료에서 찾을 수 없다.
현대백화점이 올해 초 9천억 원 가까이 베팅해 인수한 침대·매트리스 제조기업 지누스도 마찬가지다.
지누스는 21일부터 30일까지 매트리스를 구매하면 베드 프레임을 최대 50% 할인해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공식 SNS 계정에서만 행사 소식을 찾을 수 있다.
유통업계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홍보가 사실상 모두 중단됐다는 점에서 현대백화점그룹의 정기 임원인사도 연기가 불가피하지 않겠냐는 것이 유통업계의 시각이다.
정지선 회장은 2020년부터 11월 초에 인사를 실시해왔다. 통상 12월 초에 인사 발표를 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를 한 달가량 앞당긴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위기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인사 시기를 앞당겼다는 것이 유통업계 분석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화재사고 여파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신중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정기 임원인사에서 일부 임원의 승진 발표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자칫 외부에서는 사고를 일으켜놓고 내부에서는 잔치를 한다는 이미지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인사와 관련해서는 연기될지 예정대로 진행될지 등과 관련해 확정되거나 내부적으로 공유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