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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43년 신뢰 저버린 푸르밀, 절망한 임실 낙농민은 우유를 던졌다

신재희 기자 JaeheeShin@businesspost.co.kr 2022-10-25 16: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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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43년 신뢰 저버린 푸르밀, 절망한 임실 낙농민은 우유를 던졌다
▲ 푸르밀에 원유을 직접 공급하는 전북 임실지역의 낙농민들이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푸르밀의 일방적인 공급계약 해지 통보를 규탄하고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부모님의 상을 치르는 날에도, 자녀의 결혼식 날에도 착유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푸르밀의 일방적 공급계약 해지통보에 낙농가의 생존권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낙농인의 하루는 대개 동이 트는 새벽에 시작된다. 젖소에서 우유를 착유하고 오전 작업을 마무리한 뒤 우유가 차오르는 해질녘쯤에 다시 착유를 한다.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요 농장에서 먼 지역을 방문하기도 어렵다.

전북 임실군의 낙농인들이 먼 발걸음을 했다. 이들은 25일 오전 11시경 서울 영등포구의 푸르밀 본사 앞에 모여 푸르밀의 일방적 계약종료 통보에 항의하고 보상안 마련을 요구했다.

푸르밀은 원유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서 임실 지역 농가 20여 곳과 1979년 독점 공급계약을 맺었다. 해당 농가들은 푸르밀에 매일 20~30 톤의 원유를 납품해 왔다.

이날 오전 11시30분 버스 1대에서 내린 낙농민들이 시위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영진들을 규탄하고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집회장소로 이동했다.

한순간에 납품할 곳을 잃게 된 낙농민들은 성난 표정으로 본사 입구에 자리잡았다. 으레 있을 법한 사측의 대응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푸르밀은 이미 '넉다운' 상황으로 보였다.

낙농민들은 낙농가가 보유한 원유의 쿼터를 푸르밀이 인수하고 급작스러운 영업종료로 발생한 피해보상으로 약 250억 원을 요구했다. 

궐기대회에 참석한 한 낙농인은 비즈니스포스트 인터뷰에서 “1년 전쯤에 푸르밀에서 1년 단위 계약을 맺자고 제안이 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계약이 사업철수의 조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35년동안 푸르밀에 원유를 납품했다고 했다. 푸르밀이라는 안정적인 거래처에 힘입어 2두로 시작했던 젖소는 어느새 60두까지 늘어났지만 오는 11월25일로 예정된 푸르밀 최종 납품 이후에는 우유를 받아줄 곳이 없다. 
 
[현장] 43년 신뢰 저버린 푸르밀, 절망한 임실 낙농민은 우유를 던졌다
▲ 이상옥 임실낙우회 회장 겸 푸르밀 직송농가 대표. <비즈니스포스트>

이상옥 임실낙우회 회장 겸 푸르밀 직송농가 대표는 비즈니스포스트에 “임실군 낙농가들은 푸르밀 측과 40년 동안 큰 말썽없이 거래를 이어가며 견고한 신뢰관계를 구축했다”며 “11% 감산을 요구했을 때도 손해를 감수하고 군말없이 따랐다”고 말했다.

납품계약의 일방적인 해지와 함께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의 성의없는 태도에 낙농인들은 더욱 분노했다.

이 회장은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에 신 대표와 통화를 짧게 가졌는데 그는 ‘마땅한 대책이 없으니 그런줄 아시라’고 말했다”며 “그 이후로 신 대표는 연락을 받지 않고 휴대폰도 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낙농진흥회에 편입해 원유를 납품하는 계약을 고려해 보고는 있지만 걸림돌이 많은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현장] 43년 신뢰 저버린 푸르밀, 절망한 임실 낙농민은 우유를 던졌다
▲ 낙농민 대표자 3인이 25일 오전 푸르밀에 교섭을 요구하면서 본사에 들어가고 있다. 오태한 푸르밀 사업종료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이들을 맞았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취지의 말만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
궐기대회의 열기가 고조되자 상복 차림의 낙농민 대표자 3인이 회사와의 대면교섭을 위해 회사에 진입했다.

평소라면 한창 업무로 분주해야 할 사무실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풍겼다. 아무도 이들의 진입을 막지 않았다. 대표자 3인은 사측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푸르밀은 그들의 항의를 듣기만 할 뿐이었다.

앞서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는 오태한 사업종료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임해 그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오 위원장은 낙농업과 거리가 먼 건설회사 출신이다.

정승렬 임실낙우회 총무는 “건설사 있던 사람을 최고 임원으로 내세우는 것은 푸르밀 측에서 낙농민을 농락하는 처사”라며 “푸르밀에서는 '해줄 것이 없다. 돈이 있어야 뭐라도 해줄 것이 아니냐'는 태도로 일관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회장은 “오 위원장은 낙농업계를 잘모르는 사람으로 대화자체가 불가능하다. 무능력한 오너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다음 상경투쟁을 위해서 논의를 이어가겠다”며 다음 투쟁을 예고했다.

푸르밀 측과 면담이 별 소득없이 끝나자 분위기는 삽시간에 험악해졌다. 
 
[현장] 43년 신뢰 저버린 푸르밀, 절망한 임실 낙농민은 우유를 던졌다
▲ 성난 낙농민들이 25일 사측 면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 푸르밀 우유 제품을 본사로 던지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낙농민들은 일제히 미리 준비해온 우유를 푸르밀 본사 건물에 던지기 시작했다. 푸르밀 본사의 현판, 담벼락, 주차장 등은 흰 우유로 얼룩졌다.

낙농민들은 약 2시간의 시위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탑승했다. 그들은 다시 내려가 오늘 저녁에도 우유를 짜야했다. 
 
푸르밀의 마지막 제품생산은 11월25일이다. 신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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