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궈타이밍 홍하이그룹 창업주가 10월18일 전기차 출시 행사에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AP >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에서 손꼽히는 부호이자 총통선거 경선에 도전했던 경험이 있는 ‘대만의 트럼프’ 궈타이밍 홍하이그룹 창업주가 폭스콘 전기차사업 진출과 관련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궈타이밍은 폭스콘이 애플 아이폰 위탁생산을 통해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제조업체로 거듭난 성과를 전기차 위탁생산 분야에서 재현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앞세우고 있다.
대만 경제일보는 19일 “폭스콘이 테슬라 전기차 위탁생산을 수주한다면 성장에 중요한 동력을 확보할 것”이라며 “전기차사업에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폭스콘이 3종의 새 자체 생산 전기차를 공개하는 행사를 열고 테슬라 전기차 위탁생산을 목표로 사업 규모를 키우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데 따른 것이다.
18일 열린 행사에서 폭스콘은 SUV 전기차인 모델C와 모델B, 픽업트럭 형태의 모델V를 새로 선보였다. 전기차사업 진출을 선언한 뒤 2년 만에 모두 5종의 신차를 선보인 것이다.
폭스콘은 2025년까지 전기차사업에서 1조 대만달러(약 45조 원)의 연매출을 거두고 글로벌 전기차시장 점유율을 5%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날 행사에서 폭스콘이 제시한 사업 목표는 상당히 무리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테슬라가 폭스콘과 같은 외부 업체에 전기차 위탁생산을 맡길 가능성은 낮고 폭스콘이 전기차사업 경험도 거의 없기 때문에 단기간에 매출을 늘리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스콘은 그동안 계열사를 통해 자동차 부품사업을 운영했고 애플 아이폰 등 전자제품을 위탁생산하며 쌓은 경험을 전기차 분야에서 성과로 이어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폭스콘이 이처럼 공격적 사업 목표를 제시하며 강력한 추진력을 보이는 데는 궈타이밍 창업주의 굳은 의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궈타이밍은 이날 행사에서 직접 모델B 전기차를 운전해 무대 위에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뒤에는 폭스콘의 신차를 소개하며 행사 전면에 등장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최근 미국 텍사스주에서 전기트럭 ‘사이버트럭’ 실물을 처음 공개하며 직접 운전을 해 무대에 올랐던 것과 비슷한 연출 방법을 활용한 것이다.
궈타이밍이 홍하이그룹 및 계열사인 폭스콘의 경영 일선에서 모두 물러난 뒤에도 전기차 출시 행사에 직접 올랐다는 점은 그만큼 전기차사업에 강력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폭스콘은 전기차사업 진출 선언 뒤 단기간에 5종의 신차를 공개할 수 있었다는 점이 폭스콘의 제조 및 기술 역량을 충분히 증명하는 근거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공개된 신차는 실제 출시되는 차량이 아니라 샘플 개념의 ‘레퍼런스 차량’에 해당한다. 자동차기업들이 전기차 위탁생산을 맡길 때 참고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폭스콘이 자체 제품이 아닌 애플 등 고객사 제품 위탁생산으로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제조업체로 성장한 전략을 전기차 분야에서 재현하겠다는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궈타이밍은 1974년 대만에서 직원 수가 10명 남짓한 홍하이정밀을 창업해 주로 TV에 사용되는 부품과 게임기용 부품 등을 위탁생산하며 성장해 왔다.
궈타이밍은 뛰어난 영업 수완으로 미국에서 다수의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생산공장을 중국으로 확장하며 컴퓨터 부품, 휴대폰 위탁생산 등으로 사업 분야를 꾸준히 넓혔다.
애플 컴퓨터에 이어 아이폰 위탁생산을 맡게 된 것은 홍하이그룹의 성장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홍하이그룹 계열 폭스콘은 지금도 애플 제품의 최대 위탁생산업체로 남아 있다.
궈타이밍은 ‘대만의 트럼프’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만에서 손꼽히는 부호이자 기업인 출신으로 2020년 대만 총통 선거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유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상반기 포브스 집계 기준 궈타이밍의 자산은 약 68억 달러(9조7천억 원)으로 대만 6위에 올랐다.
그가 친중 성향의 인물로 대만 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는 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단적 보수주의 정책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다만 궈타이밍은 대만 국민당 경선에서 탈락해 총통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다. 이후 홍하이그룹 경영에 복귀했다가 지금은 경영에서 표면적으로 물러나 있다.
중국이 최근 대만을 상대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궈타이밍이 다음 총통 선거 출마를 준비할 것이라는 관측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결국 궈타이밍이 전면에 나서 추진하고 있는 폭스콘의 전기차사업 성패 여부는 앞으로 그의 정치적 영향력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될 수 있다.
애플이 자체 자율주행 전기차 ‘애플카’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오랜 협력사인 폭스콘에 차량 생산을 맡길 수 있다는 전망도 힘을 얻는다.
이는 궈타이밍이 폭스콘을 전기차시장에서 중요한 기업으로 키워내겠다는 포부를 앞세우고 있는 점이 단순히 무리한 목표에 그칠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폭스콘은 미국 자동차 생산공장을 인수해 현지에서 고객사의 전기차 위탁생산을 시작하는 등 과감한 투자로 실질적 성과도 어느 정도 거두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폭스콘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전기차사업으로 미래를 바꿀 만한 잠재력이 있다”며 “폭스콘은 기존 전기차업체의 경쟁사가 아닌 협력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