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기자 limhs@businesspost.co.kr2022-10-06 16: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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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자·바이오엔텍과 마블이 함께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만화 '에브리데이 히어로즈'를 발간했다. <마블>
[비즈니스포스트] 백신과 만화. 서로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하나요? 그러면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바이오엔텍과 미국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기업 마블의 조합은 어떤가요?
5일 화이자·바이오엔텍과 마블이 손잡고 만화 ‘에브리데이 히어로즈’를 발간했습니다. 마블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됐지요.
만화는 한 가족이 보건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TV에서는 마블 코믹스 세계관의 영웅들 ‘어벤져스’가 악당 ‘울트론’과 싸우는 모습이 나오고 있죠.
인공지능 로봇인 울트론은 패배해도 다시 나타나는가 하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세계 평화를 위협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어벤져스가 이길 거라고 말합니다. 어벤져스 역시 울트론에 대항해 새로운 무기와 전술을 개발해왔다고요.
그의 말처럼 어벤져스는 신무기를 활용해 울트론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어벤져스가 우리 안전을 지켜줬으니 우리도 할 일을 해야겠지”라고 말하며 가족과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맞습니다. 어벤져스와 울트론이 각각 무엇을 비유하는지 알기 쉽게 드러난 구성입니다.
화이자·바이오엔텍은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을 활용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기업입니다. 공익광고 등 정부가 주관하는 홍보에 기대지 않고 백신 알리기에 나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죠.
다만 단순한 광고가 아닌 만화가, 마블이 홍보 매체로 선택된 것은 백신 접종에 대한 개인의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수단으로 ‘문화의 힘’이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마블은 DC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책 회사로 꼽힙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사업 규모를 대폭 확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화시장 전문 사이트 코미크론에 따르면 북미 만화책시장 규모는 2020년 12억8천만 달러에서 2021년 20억7500만 달러로 성장해 역대 최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마블은 전체 시장에서 30% 중후반대 점유율을 차지하며 1위를 지켰죠.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질병 확산으로 재택 활동이 증가한 상황에서 만화책 등에 대한 수집 욕구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마블의 경우 기존 만화책뿐 아니라 인기 있는 영화 시리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통해서도 독자를 끌어모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렇게 잘 팔리는 마블 코믹스의 특징은 ‘슈퍼히어로(영웅)’와 ‘빌런(악당)’의 대립을 가장 큰 주제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영웅과 악당은 제각기 독특한 능력을 뽐내며 화려한 전투를 벌이죠. 싸움이 대개 선한 쪽의 승리로 끝난다는 점에서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방대한 세계관과 매력 있는 등장인물이 ‘권선징악’의 몰입감을 높입니다.
마블이 영웅 대 악당 구도를 코로나19 예방 캠페인에 활용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20년 미국 비영리 병원 알레게니헬스네트워크(AHN)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낸 적이 있죠. 코로나19 현장에서 희생하는 간호사들을 영웅으로 묘사했습니다.
화이자·바이오엔텍이 마블과 함께 기획한 ‘에브리데이 히어로즈’는 보다 더 독자들의 입장에 가까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백신 접종에 나서는 여러분이 바로 영웅’이라는 겁니다.
▲ 만화 '에브리데이 히어로즈'의 한 장면. <마블>
이런 메시지가 필요한 이유는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따르면 9월 말 기준으로 18세 이상 인구 중 기본 접종(2차 접종)을 마친 사람의 비율은 77.6%에 불과하고 이 중 절반만이 추가접종(부스터샷)을 받았습니다. 6일 기준 한국의 18세 이상 2차 접종률이 96.6%에 이른 것과 비교하면 높다고 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미국은 화이자·바이오엔텍, 모더나, 얀센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에 힘입어 가장 먼저 백신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나라입니다. 접종률이 비교적 저조한 것은 백신 공급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는 게 맞겠죠.
실제로 앞서 미국 등 해외 국가들이 백신 접종 의무화를 추진했을 때도 개인의 자유,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 등을 근거로 내세우며 백신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뉴스에 시위 장면이 자주 보도되곤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백신 혐오’가 코로나19 확산과 시너지를 일으켜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았다고 분석합니다. 피터 J. 호테츠 미국 베일러의대 교수가 8월 네이처에 기고한 글을 볼까요.
“‘건강의 자유’를 기치로 내세운 미국의 백신 반대 운동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2021년 5월1일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광범위하게 접종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한 뒤 적어도 2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불필요하게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델타, 오미크론 등 다양한 변종이 나왔고 그럴 때마다 세계의 확진자 수는 우상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변종이 등장해 글로벌 공중보건을 위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각국 정부에서는 더 이상 백신을 강제적으로 접종시키거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단 행사를 막는 등의 조치를 하기 어렵습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비상조치에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졌고 경제적인 피해도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미국 시민들. <연합뉴스>
코로나19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면서도 사람들에게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을 통해 집단방역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게 학계의 지적입니다. 결국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스스로 접종에 나서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죠.
이는 한국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미국보다 기본 접종률이 높지만 추가접종 차수가 거듭될수록 시민들의 피로감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접종률이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50세 이상 인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4차 접종의 경우 6일 기준으로 대상자 대비 접종률이 37.8%에 그쳤습니다. 숫자상으로 접종 이익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접종을 설득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에서는 마블의 영향력이 백신 접종을 유도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미국 못지않게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보유한 한국도 백신에 대한 관심을 키울 새로운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