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쉬코리아 창립 20주년을 맞아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이사를 4일 서울 강남구 러쉬코리아 본사 대표 집무실에서 만났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됐느냐는 첫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본능이 저를 이끌었어요."
전국 매장 70여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수만 약 800명, 연매출 1천억 원대의 중견기업을 이끌고 있는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의 말이다.
영국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를 한국에 처음 들여온 우 대표는 20년째 직접 러쉬코리아호의 조정간을 잡고 나아가고 있다.
우 대표는 러쉬코리아가 스무살 청년이 되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러쉬코리아의 원동력은 사람이에요. 첫째는 사람이고 둘째도 사람, 열 번째도 바로 사람이죠."
러쉬코리아 창립 20주년을 맞아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이사를 4일 서울 강남구 러쉬코리아 본사에서 만났다.
◆ 러쉬코리아의 살아 있는 에너지 '해피피플'
러쉬코리아는 임직원을 '해피피플'이라고 부른다. 우 대표의 명함에도 '해피피플 대표'라고 쓰여있다.
"월급을 떠나서 러쉬코리아가 하고 있는 캠페인, 같이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관에 힘을 보태고 싶어 오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여서 옳다고 믿는 걸 계속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거죠. 한 쪽에서 동력이 약해지면 다른 쪽에서 온도를 높여주고, 한 쪽에서 흔들리면 다른 쪽에서 잡아주면서 서로 의지하는 거죠.“
행복한 사람들(해피피플)이기 때문일까. 러쉬코리아에는 유독 에너지가 넘치는 직원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온라인에서 러쉬코리아와 관련해 떠도는 얘기도 적지 않다.
'성격유형(MBTI) 가운데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 유형)'만 뽑는다', '러쉬 명동점에 가면 'I유형(내향인)'만 응대해주는 담당 직원이 따로 있다' 등이다.
"온라인에 떠도는 말들은 다 사실이 아니에요. 직원을 뽑을 때 특정 요인을 기준으로 가르거나 나누지 않아요. 직원들의 MBTI를 다 알 수도 없죠.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리크루팅을 할 때 소위 '마피아'들이 방문해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순발력을 발휘하는지, 사람을 대하는 데 거부감은 없는지 등을 봤어요. 초기에는 그랬지만 점점 그런 점들이 기업문화가 되면서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것 같아요."
우 대표는 함께하는 직원들에게 일을 믿고 맡긴다. 이같은 신뢰는 러쉬코리아의 생산성 향상으로 돌아왔다.
"제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실무를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위임을 했죠. 제가 직원들을 믿는 만큼 저에게 말을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저에게는 자산이에요.
매장 매니저들에게도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모두가 주인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주인의식과 로열티가 있으면 생산성과 실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돼요."
'해피피플'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끊이지 않는 내부의 고민이 있기에 가능했다.
"기업이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도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것 같아요. 물건을 사주는 고객들에 맞춰서 매장 동선이 달라지듯이 직원들이 과연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거죠.
회사의 성공이 직원 개인의 성공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니기 좋은 회사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게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해요. 대표 혼자 고민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어서 계속 의견을 주고받고 있어요."
▲ 경기도 안성시 스타필드 안성점에 입점한 러쉬코리아 매장. <러쉬코리아>> |
◆ 본능적으로 익힌 '장사' 마인드, "이제는 대놓고 욕심쟁이 될래요"
스물 아홉살에 러쉬코리아 대표가 되기 전까지 우 대표는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대학에서 건강관리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보석감정원(GIA)에서 보석 감정, 세공, 디자인 등을 공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웨딩사업과 청소용역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었던 우 대표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장사를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늘 궁금했죠. 예쁜 옷을 보면 원단은 어디서 왔나, 동대문에서 팔면 좋을까, 백화점에서 팔면 좋을까를 고민했죠."
우 대표는 '장사 본능'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다.
"부모님이 사업을 하셔서 일찍부터 제가 심부름을 많이 했어요. 부모님이 다 밖에서 일을 하시니까 집안 살림도 해야 했고요. 그러면서 생계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이 많았졌어요. 이걸 얼마를 팔아야 전기세를 낼 수 있고 얼마를 벌어 오셔야 학비나 공과금을 낼 수 있고, 체계적으로 배운 건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장사를 해서 돈이 돌아야 하는구나'를 빠르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우 대표는 29살 때 브랜드 러쉬를 한국에 들여왔다. 들여오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영국 창업자의 집에서 머물며 1년여 동안 심사와 교육을 받았다. 당시 국내 대기업들의 숱한 러브콜이 있었지만 결국 우 대표의 '진심'이 창업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제가 어린 나이에 적극적으로 달라붙었던 것 같아요. 모든 파트너들을 창립자 집에 머물게 하면서 교육을 시키지는 않거든요. 저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늘상 해오던 다른 일들처럼 달려들었어요. 열정 하나밖에 없었죠. 늘상 장사를 해왔지만 러쉬는 '장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능성을 보고 시작했죠.
러쉬 제품의 특성상 사용법도 까다롭고 유통도 쉽지 않아 영국 본사에서는 큰 회사에 맡기기보다 직접 고객도 만나고 운영도 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았던 것 같아요."
그는 러쉬코리아를 키워야 하는 '베이비시터'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러쉬코리아는 경쟁이 치열한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20년 동안 성장세를 이어왔다. 2002년 명동에 문을 연 1호점을 시작으로 이제는 전국에 7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다. 4명이었던 직원수는 약 800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매출은 1천억 원을 넘었다.
우 대표는 러쉬코리아가 2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선한 욕심' 덕분이라고 말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희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기보다 사회에 더 공헌하고 더 착하게 겸손하게,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내부 분위기가 있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선한 욕심, 동료들을 아끼고 같이 발전하고 싶은 긍정적인 욕심, 조직에서 부여된 책임을 다하자는 욕심들이 모여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대놓고 욕심쟁이라고 하자'고 했죠.
부정적으로 남의 것을 취하고 내것이 아닌 걸 가지려고 하는 욕심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도 다 욕심인 거잖아요. 그래서 올해는 러쉬코리아 20주년을 맞아 당당하게 그동안 우리가 욕심을 많이 부렸구나, 그래서 많이 이뤄냈구나, 그걸 축하하자고 해서 ‘욕심쟁이’를 20주년 키워드로 잡게 됐어요."
▲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의 닉네임은 ‘보헤미안’, 레몬 비누 이름을 가져왔다. 보헤미안은 유랑민족, 집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러쉬코리아> |
◆ 보헤미안을 꿈꾸던 20대 청년, 4남1녀의 엄마가 되다
러쉬코리아 임직원들은 모두 닉네임이 있다. 모두 제품명에서 이름을 따온다. 우 대표의 닉네임은 '보헤미안', 레몬 비누 이름을 가져왔다. 보헤미안은 유랑민족, 집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보헤미안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내거다' 싶었어요. 러시는 집시처럼 자유롭고 초자연적인 것들에서 영감을 얻은 제품들이거든요. 어릴 때 한국에서 여성, 여자, 딸이 갖는 어떤 틀에서 벗어나 보헤미안처럼 자유롭고 싶은 열망도 있었어요. 숱이 많은 곱슬머리라 집시 같은 느낌으로 살고 싶기도 했고요.(웃음)"
보헤미안처럼 살고 싶었다는 우 대표는 현재 4남1녀인 5남매의 엄마이기도 하다.
다섯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우 대표는 오히려 아이들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엄마로서 깨달은 것들이 조직을 운영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첫째가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소위 입시생으로서 살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니 회사에서도 학력이 뭐가 중요하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면 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아이들은 제 사고를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굉장히 중요한 스승이에요. 저는 5명의 스승을 둔 셈이죠.(웃음)"
우 대표는 러쉬코리아에서 다양한 삶의 기준들을 정립하는 방법도 아이들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한다.
러쉬코리아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기로도 유명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직원들에게 반려동물 수당을 주거나 독신을 선언하고 비혼식을 여는 직원들에게는 축의금과 함께 유급휴가를 보내준다.
"제가 아이가 5명인데 기준을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나머지 4명은 그 기준에 못 들게 되고 매일 싸우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 기준을 하나, 둘, 셋 자꾸 늘리면서 다양한 기준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회사도 다양한 기준을 가지게 됐죠."
1973년생으로 '지천명'이 된 우 대표는 올해부터 자신이 욕심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고 수줍게 말했다.
"올해는 제가 욕심쟁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어요.(웃음)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보고 욕심이 너무 많다고 하면 너무 부끄럽고 뭔가 잘못한 것 같고 그랬어요. 하지만 이제 그걸 모두 인정하기로 했어요. 저는 대표이사,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서 다 잘하고 싶어요."
욕심쟁이 우 대표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욕심내기는 쉽지 않다.
"혼자만의 시간은 한 7년 뒤쯤 가지려고요.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어요. 취미를 꼽기도 힘들어요.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지만 좋아서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들이 제 취미가 되는 것 같아요. 미술에 관심을 두는 아이가 있으면 저도 미술에 관심을 두고, 피아노에 관심을 두는 아이가 있으면 저도 한번씩 쳐보는 거죠. 그럼 또 제 취미가 되더라고요."
우 대표가 바라는 러쉬코리아의 앞으로 20년은 어떤 모습일까.
"성공한 회사도 돼야겠지만 임직원들에게 좋은 회사에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주고 싶어요. 직원들이 '대표님, 저희 러쉬코리아 다니는 거 안정감을 느껴요'라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설령 그게 부족하더라도 '저희가 다시 한번 같이 만들어봐요'라는 의지 정도는 가지고 있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