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간 군사충돌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중국사업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최 회장(오른쪽)이 2022년 7월26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면담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미 3년 전에 지정학적 위기를 언급했다.
최 회장의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 갈등은 대만을 놓고 군사충돌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향해 치닫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서는 중국사업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국내 주요그룹 가운데 미국과 중국 사이 갈등이 심화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2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한국의 ‘칩4’ 참여에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내비치면서 이와 관련한 중국의 압박이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칩4는 미국이 주도하는 일본, 대만, 한국의 반도체 공급망 동맹을 말하는데 중국의 '반도체 굴기(진흥)'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싱하이밍 대사는 지난 7월에 이어 20일 국민의힘 반도체특위위원장인 양향자 의원(무소속)을 면담해 칩4에 가입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SK그룹의 핵심계열사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반도체의 상당 부분을 생산하고 있어 만약 중국이 칩4 가입을 이유로 보복조치에 나선다면 국내 기업 가운데 SK그룹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D램 생산공장, 충칭에 메모리반도체 패키징(후공정)공장을 두고 있다.
우시공장은 SK하이닉스 연간 D램 생산량의 50%를 담당한다. 충칭공장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낸드플래시의 40% 가량을 후공정을 맡고 있다.
SK하이닉스에게 중국은 주력 반도체 수출 시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생산기지로서도 큰 의미를 가지는 셈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은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더구나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인텔로부터 낸드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중국 다롄공장에 낸드플래시 생산시설을 추가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 역시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SK하이닉스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로 우시공장에 반도체 초미세공정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와 같은 첨단 반도체장비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같은 조치로 글로벌시장에서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면 최 회장으로서도 중국사업 축소 등 특단의 결정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선도 많다.
최 회장은 2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솔직히 그런 장비가 (중국에) 못 들어가면 공장이 계속 노후화되고 업그레이드가 어려워진다”며 “노후화돼서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 아래 SK온이 2020년부터 중국 배터리사인 EVE에너지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SK온은 합작법인을 통해 창저우와 후이저우에 배터리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옌청에 배터리 공장을 추가로 짓고 있다.
SK온의 중국 내 배터리 생산규모는 2024년 77GWh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2025년 유럽에서 생산할 것으로 추산되는 배터리규모 77.5~92.6GWh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중국 배터리 생산시설의 비중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미국이 반도체 뿐만 아니라 배터리에 관해서도 중국을 향한 견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SK온의 중국내 배터리사업 역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 회장은 이미 3년 전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우려를 밝힌 바 있다.
그는 2019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SK의 밤' 행사에서 "제가 SK 회장을 한 지도 한 20년 되는데 20년 동안에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라는 건 처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지정학이 비즈니스를 흔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최 회장은 현재 중국시장 포기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 회장은 “중국은 우리 수출의 25%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 시장을 갑자기 버리기는 쉽지 않다”며 “기업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정부의) 지원,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7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을 앞두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최 회장은 “중국시장을 포기한다고 하면 상당히 큰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어서 선택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정치사회적으로 어려웠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가능한 경제적으로 계속 협력하고, 발전과 진전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최 회장이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단단히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던 점과도 관련이 있다.
최 회장은 2006년 중국에서 번 돈을 중국에 재투자하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발표한 이후 중국에서 돈을 벌고 나가는 외부투자자가 아닌 공존 파트너로 현지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최 회장은 2020년 6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SK그룹은 한국과 중국 수교 초기 중국과 투자 협력 30년 계획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탰다”며 “현재도 중국은 SK그룹의 최대 해외투자 대상국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놓고 군사충돌까지 벌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최 회장으로서는 중국 사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최 회장은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어떤 시나리오가 발생하더라도 생존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한 문제다”고 말했다. 최영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