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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서울이 위험하다](3) 대심도터널이 만병통치약인가

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 2022-09-16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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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서울이 위험하다](3) 대심도터널이 만병통치약인가
▲ 2022년 8월 서울의 침수피해를 계기로 수해방지 대책의 방향을 둘러싼 10년 전 논란이 다시 되살아났다. 서울시는 대심도 빗물터널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의 효용과 비용 사이 불균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기후위기를 맞아 서울의 새로운 치수정책을 고민할 시기이다.  
[비즈니스포스트] 2022년 8월8일 서울은 집중 호우에 한바탕 물난리를 치렀다.

이후 정부와 서울시에서 서울의 주요 침수지역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짓겠다는 내용의 대책을 내놓으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과연 대심도 터널이 서울을 수해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 서울의 수해 방재 대책이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올해 서울에 수해가 발생하자마자 정부, 지방자치단체는 신속하게 대심도 빗물터널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 침수가 발생한 지 이틀 만인 8월10일 강남, 광화문, 도림천, 동작구 사당동, 강동구, 용산구 등 6곳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8월23일 환경부의 ‘도시침수 및 하천홍수 방지대책’이 나왔고, 9월13일 서울시는 우선 강남역, 광화문, 도림천 등 세 곳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강남역에는 시간당 110mm, 광화문과 도림천 등에는 시간당 100mm의 비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로 2027년까지 국비와 시비를 합쳐 9천억 원 정도 예산이 투입된다.

정부와 서울시의 신속한 대심도 빗물터널 추진 움직임은 ‘신월동 대심도 빗물터널’이 올해 수해 위기를 맞아 제 역할을 해냈다는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23일 신월동 대심도 빗물터널을 방문해 “기후변화로 인해 언제든 기록적인 폭우가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과 같은 근본적인 도시안전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월동 대심도 빗물터널은 2011년 서울 수해 이후 계획돼 2020년 8월 국내 최초로 마련된 대심도 빗물터널이다. 지하 40m 깊이에 지름 10m 규모로 설치됐고 최대 32만 톤의 빗물을 저장해 시간당 100mm로 내리는 비를 처리할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 8월8일 신월동 빗물터널이 17만 톤의 빗물을 처리한 덕분에 인근 지역 600세대의 침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진단을 내놨다. 당시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에 시간당 59mm, 하루 164mm의 비가 내렸다.

대심도 빗물터널은 외국 사례도 많다.

올해 서울 물난리 이후 일본 도쿄의 대심도 빗물터널인 ‘간다천 환상 7호선 지하조절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대심도 터널인 ‘스마트(SMART)’와 같은 해외 사례는 여러 차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국내에도 조명됐다.

하지만 대심도 빗물터널을 놓고는 주민 수용성 문제, 대심도 빗물터널 자체의 효용성과 고밀도로 개발된 서울의 특징 등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수해 방지대책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심도 빗물터널이 수해에 일정 부분 효과가 있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과 수해 방지의 효과 사이에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강남과 같이 고밀도로 개발된 지역에서는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이 쉬운 문제가 결코 아니다. 

당장 대심도 빗물터널의 설계, 부지 선정 등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사가 진행될 지역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빗물 펌프장 건설에도 주민 반발이 강한데 큰 공사가 될 수밖에 없는 대심도 빗물터널은 더 큰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손경철 서울시 치수안정과장은 지난 8월24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시 대심도 빗물터널, 어떻게 가야 하나’ 토론회에서 “대심도 빗물터널에는 우선 빗물이 흘러 들어가는 유입구 부지가 필요한데 유입구 부지선정 과정에서 인근 주민의 민원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로 강남구 일대 주택에서 문 뒤틀림, 담벼락 균열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심도 빗물터널 공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GTX는 지하 40~60m 지하에 대심도 방식을 적용해 건설되고 있다.

주민 수용성 문제를 논외로 치더라도 서울의 핵심 도심지인 강남의 대심도에 새로운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난공사가 될 공산이 크다. 이미 대형 건물의 지하 시설을 비롯해 지하철, 각종 관로 등 지하에 설치된 시설이 많기 때문이다.

빗물터널과 간섭을 피하기 위해 다른 지하시설을 옮겨야 하거나 빗물터널을 더 깊게 설치해야 하기에 추가 비용이 천정부지로 뛸 수도 있다.

이런 숙제를 모두 풀고 마련된 대심도 빗물터널이 과연 막대한 예산과 사회적 비용을 투입한 만큼의 효과를 볼지도 의문이다.

이동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4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수해예방 시민 대토론회’에서 “대심도 빗물터널이 구축되면 수해가 줄어드는 건 명확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대심도 빗물터널이 한 해에 10~15일 정도 사용될 뿐이라 예산 대비 활용성이 떨어지는 만큼 평소에는 도로로 활용하는 ‘도로 겸 배수터널’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심도 빗물터널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에 매달리지 말고 도시 전반의 빗물 수용 능력을 높이는 방식의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수해는 물이 모여 위력이 커져 발생하는 것인데 물을 분산시키기는커녕 대규모 배수 시설을 통해 한 곳으로 모아 처리하려는 접근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섣부르게 대규모 토목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미 서울 시내 곳곳에 설치된 배수시설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설치된 배수시설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올해 8월 서울 곳곳의 침수 피해는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강남 침수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강남역 슈퍼맨’ 등 사례는 기존 배수시설 관리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 누리꾼은 어느 남성이 강남역 근처 배수로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는 사진과 함께 “아저씨 한 분이 폭우로 침수된 강남역 한복판에서 배수로에 쌓인 쓰레기를 맨손으로 건져냈다”며 “덕분에 종아리까지 차올랐던 물이 금방 내려갔다”고 전했다.

배수시설의 철저한 관리와 함께 도심지의 보도에 투수포장을 확대하고 곳곳에 공원, 소규모 저류지 등을 만드는 방법은 도시 전반의 빗물 수용 능력을 높이는 대책이 될 수 있다.

수해 방지의 방향과 관련해 세계적 치수 강국으로 꼽히는 네덜란드가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네덜란드는 ‘낮은 땅’이라는 나라 이름처럼 국토의 3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만큼 오랜 기간 댐과 제방 등을 통해 물과 싸워왔다.

하지만 1990년대에 몇 차례 큰 홍수 피해를 겪으면서 제방을 높이는 등 물길을 막는 기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2000년대부터는 ‘강에게 공간을(Room for the River)’ 프로젝트를 통해 오히려 제방을 낮춰 물길을 트고 인명 피해가 나지 않을 지역으로 소규모 홍수가 유도될 수 있도록 도시 공간을 재구성하는 시도를 이어갔다.

새 프로젝트는 과거와 같이 물과 싸우는 것이 아닌 물과 어울리겠다는 네덜란드 치수 정책의 방향 대전환인 셈이다. 그 결과 2021년 독일, 벨기에 등 라인강 일대 국가에서 100년 만의 홍수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네덜란드에서는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수해 방지와 관련해 이미 땅에 떨어진 빗물의 배수처리 문제를 넘어 떨어지는 빗물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각 건물마다 빗물 저장소를 만들면 빗물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건물 내로 모아서 도심지의 홍수를 예방하는 효과를 봄과 동시에 간단한 정수 작업을 거쳐 건물의 일상용수로 사용하는 등 경제적 이득도 볼 수 있다.

서울 광진구의 스타시티는 3천 톤 규모의 빗물 저장시설이 실제로 설치돼 효과를 보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스타시티는 중랑천과 한강 사이에 위치해 상습 침수지역이었으나 빗물 저장시설이 설치된 2006년 이후에는 침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빗물을 활용해 연간 수억 원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보고 있다.

사실 이런 논쟁은 2011년 서울 홍수 이후에도 이미 한 차례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에도 대심도 빗물터널이냐, 도시의 빗물 수용능력 강화냐,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서울시는 올해 내놓은 계획과 같이 강남, 광화문 등 상습침수지역을 대상으로 대심도 빗물터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었다.

하지만 강남, 광화문 등 고밀도로 개발된 도심에는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이 효용 대비 투입되는 비용이 너무 많다는 비판과 함께 서울시장의 교체 등 정치적 요인이 맞물리며 신월동을 제외한 대심도 빗물터널 사업은 취소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서울시장이 바뀌는 등 정치적 요인이 겹치면서 10년 전과 같은 논쟁이 반복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상호 기자 
 
[편집자주]

올해 여름, 전 세계는 기후위기를 실감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전례 없이 극단적인 폭염과 가뭄·홍수가 닥쳐왔다. 파키스탄은 국토의 3분의 1이 잠길 정도의 홍수로 국가적 위기에 빠졌다. 유럽은 폭염과 가뭄에 라인강 바닥이 드러났다.

우리 서울은 안녕한가.

기후위기는 먼 나라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조짐이 좋지 않다. 지난 8월8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덮쳐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매년 찾아오는 장마가 아니었다. 기후위기가 보낸 '낯선 손님'이었다. 

서울의 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살피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새로운 위기에는 새로운 대처법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서울이 위험하다](1) 245년 강수기록의 경고, '극한 강우'가 찾아왔다
[기후위기, 서울이 위험하다](2) 서울 수해 대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
[기후위기, 서울이 위험하다](3) 대심도터널이 만병통치약인가
[기후위기, 서울이 위험하다](4) 서울 수해 대비, 전문가에게 듣는다 - 한무영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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