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영배 큐텐 대표이사(사진)가 한국 이커머스시장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큐텐은 현재 티몬과 인터파크 쇼핑사업부의 인수 주체로 유력히 거명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픈마켓 이베이를 두 손 들게 만들었던 남자가 있다.
아예 10년 동안 한국 이커머스시장에서 손을 떼 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그만큼 이 남자의 능력을 두려워했다는 얘기다.
구영배 큐텐 대표이사가 이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구 대표가 최근 다시 움직이고 있다. 구 대표가 이끄는 큐텐은 티몬과 인터파크 쇼핑사업부 인수 주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G마켓 신화로 유명한 구 대표의 움직임에 이커머스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6일 이커머스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 이커머스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발 빠르게 뛰어들고 있는 구영배 대표는 2000년대 G마켓의 성공 신화를 쓴 입지전적 인물로 유명하다.
구 대표는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85학번) 출신으로 이커머스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1991년 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계 석유개발 기술 서비스기업인 슐럼버거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 8월까지 호주와 이집트, 영국, 인도, 인도네시아, 오만 등에서 엔지니어와 기술매니저로 일했다.
그가 이커머스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2000년이다. 구 대표는 당시 G마켓의 전신인 인터파크구스닥에서 상무 직급으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에 불과했다.
구 대표가 인터파크구스닥에서 받았던 연봉은 슐럼버거에서 일할 때의 3분의 1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대표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서 매력을 느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 있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구 대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구 대표는 2001년 인터파크구스닥의 대표이사에 선임되며 본격적으로 이커머스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기만 해도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을 주도하던 업체는 옥션이었다. ‘옥션 천하’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구 대표는 옥션 천하 체제에 제일 먼저 도전장을 던졌다. G마켓을 누구나 자유롭게 제품을 사고파는 플랫폼, 지금은 익숙한 ‘오픈마켓’ 모델로 만들면서 빠른 속도로 옥션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구 대표는 2003년 인터파크구스닥의 이름을 G마켓으로 바꾸고 경쟁력을 빠르게 강화했다. 2004년에는 매월 매출 성장률이 200%를 기록할 정도였다.
당시 구 대표는 출퇴근 개념이 없을 정도로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하루 7~8차례 회의는 기본이고 새벽 3~4시까지 일하는 날이 다반사였을 정도였다.
구 대표의 별명이 ‘구 대리’였다는 점에서 그의 일에 대한 집념을 엿볼 수 있다. 평사원처럼 격식을 차리지 않으면서도 대리처럼 일에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다.
A부터 Z까지 전부 꼼꼼히 챙기는 성실한 스타일이라는 것이 구 대표를 아는 사람들의 평가다. 하나라도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는 다른 회사의 서비스와 마케팅을 따라가기보다 G마켓만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안하는 데 집중했다.
2005년 구 대표의 인터뷰를 보면 “다른 업체를 따라해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며 “G마켓만의 문제점이 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문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아이디어 맨’이라는 별명도 구 대표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쇼핑하면서 클릭했던 제품을 왼편에 보여주는 ‘내가 본 물건’이라는 코너는 구 대표의 머리에서 나온 '대박' 아이디어였다. 이는 현재 대부분의 이커머스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구 대표가 G마켓을 이끌면서 보유하게 된 특허만 '온라인 확률경매시스템'을 포함해 모두 5개나 됐다.
구 대표의 진두지휘 아래 G마켓은 2005년 거래액 1조 원을 넘기며 국내 최대 온라인 오픈마켓 강자로 거듭날 수 있었고 2006년에는 나스닥 상장이라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옥션을 이끌며 국내 이커머스업계를 주도했던 이베이도 결정을 해야만 했다. 방문자 수와 거래액 규모가 뒤처진 상황에서 경쟁을 계속 지속하느냐 손을 잡느냐의 기로에서 이베이가 선택한 길은 G마켓 인수였다.
당시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베이코리아가 옥션에 더 투자하는 게 좋을지, G마켓을 사는 게 나을지를 놓고 저울질을 하다가 G마켓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구 대표의 G마켓과 경쟁을 지속하는 것이 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놓고 구 대표의 G마켓에 이베이가 '항복 선언'을 한 것이라고도 본다.
이베이는 2008년 하반기부터 G마켓의 대주주인 인터파크와 조건을 협의하기 시작해 2009년 4월 G마켓 지분 약 34.2%를 4억13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베이가 얼마나 구 대표를 견제했는지는 그 다음해에 잘 드러난다.
구 대표는 G마켓 매각 이후 1년 뒤인 2010년에 이베이와 51대 49의 비율로 자본금을 보태 큐텐을 만든다. 동남아시아를 겨냥한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 구 대표의 목표였다.
이베이가 큐텐에 자본금을 대면서 내건 조건은 “한국 시장에서 10년 동안 이커머스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수합병업계에서 통상적으로 내거는 조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구 대표의 역량을 높게 샀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조건에 따라 글로벌 사업에 주력하던 구 대표가 '족쇄'가 풀린 뒤 다시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큐텐은 현재 티몬의 대주주와 지분교환과 관련해 합의를 마치고 다음주에 정식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 교환 규모와 거래 금액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구 대표는 티몬뿐 아니라 인터파크의 쇼핑사업부 인수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0년 동안 한국을 떠나 있던 구 대표가 한국 이커머스판에 다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G마켓 성공신화를 쓴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이커머스업계의 관심도 상당하다.
이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영배라는 이름이 업계에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며 "이커머스업계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10여 년 전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구영배 대표의 역량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 대표가 한국 이커머스업계를 떠난 지 10년이 지나면서 강산도 바뀐 것이 사실이고 쿠팡과 네이버의 등장 등은 그가 활동하던 때와 다르다"면서도 "하지만 구영배 대표가 등판한다면 한국 이커머스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현재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고 덧붙였다.
구 대표는 큐텐 설립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 등의 물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펼쳤으나 초기 성과는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커머스 4위 사업자로 안착하는 데 성공하며 2018년 이베이에 큐텐재팬을 매각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현재 큐텐은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뿌리를 잘 내린 이커머스기업으로 성장했다.
구 대표에게 밝은 과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큐텐을 이끌면서 회사 직원 A씨에게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게 한 혐의로 기소돼 2021년 9월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1심과 같이 벌금 400만 원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A씨는 2014년 큐텐 입사 2년차 직원으로 일하며 한 주에만 64시간20분을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과중한 업무로 괴로움을 호소하다가 2014년 12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회사에서는 구 대표나 관리자들이 직원들에게 연장근로를 지시하거나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중한 업무량을 부과하고 이를 수행토록 하는 방식으로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근로가 이뤄졌다”며 “구 대표는 이 사건 발생 당시에도 수시로 전사 사업회의를 개최해 관리자들을 상대로 각 부서별 업무를 배분하거나 보고를 받아 전체적인 의사결정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구 대표는 항소심에서 “A씨에게 직접적으로 업무지시를 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6개 나라에 현지법인을 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대부분의 기간을 해외에 체류해 A씨의 업무량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거나 관여할 수 없었다”며 “원심이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미필적 고의 및 근로기준법 위반의 죄책을 인정한 것은 법에서 정한 한계를 벗어나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