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2-05-19 16:07:07
확대축소
공유하기
▲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관 옥상에 마련된 ‘K-Bee’ 도시 양봉장 모습. < KB금융지주>
[비즈니스포스트] 서울 한복판 건물 옥상에서 꿀벌을 기르는 회사가 있습니다. KB금융지주 이야기입니다.
KB금융지주는 4월부터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사 옥상에 양봉장을 만들고 꿀벌 12만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사라져가는 꿀벌을 지키기 위한 ‘K-Bee’ 프로젝트의 일환인데요. 이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과 관련이 깊습니다.
19일 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대형기업들이 꿀벌을 기르는 일이 낯설지 않습니다.
특히 대기오염과 연관 깊은 완성차브랜드들이 그런 경향을 보이는데요.
유럽 유명 완성차브랜드인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쉐 등이 ESG경영 차원에서 적게는 25만 마리, 많게는 300만 마리의 꿀벌을 기르고 있습니다.
특히 포르쉐는 이들 중 가장 큰 규모로 독일 라이프치히 오프로드 주행시험장 안에 4만㎡ 규모의 서식장을 꾸리고 300만 마리의 꿀벌을 관리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꿀을 팔아 수익을 내고 이를 다시 꿀벌을 기르는 데 쓰기도 하고요.
▲ 독일 포르쉐 라이프치히 주행시험장 꿀벌 서식장 모습. <포르쉐>
이들이 꿀벌을 기르는 이유는 꿀벌이 인류 식량 안보를 위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은 전 세계 100대 농작물 가운데 70개가 넘는 품종의 꽃가루를 옮기고 있지만 기후변화에 따라 개체 수가 빠르게 줄고 있습니다.
이에 2017년 국제연합(UN)은 5월20일을 세계 꿀벌의 날로 정했습니다. 유럽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꿀벌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꿀벌을 통해 KB금융이 주목을 받았지만 ESG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힘쓰는 것은 KB금융만이 아닙니다.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국내 4대 금융지주 모두 ESG경영을 핵심과제로 삼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데요.
5월만 봐도 4대 금융지주 모두 세계시장을 상대로 ESG경영 강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6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영국 환경부장관과 만나 기후문제 해결을 위한 금융사의 역할을 논의했고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10일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당사국총회(COP15) 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해 지지선언을 했습니다.
▲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10일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서 열린 유엔사막화협약(UNCCD) 당사국총회(COP15)의 'Business for Land' 출범에 비대면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은행>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11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의장단 리더십단체인 'COP26 비즈니스 리더스 그룹' 첫 회의에 참석해 KB금융지주의 ESG경영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하나금융은 유엔여성기구가 발족한 유엔 이니셔티브인 여성역량강화원칙(WEPs)를 향한 지지 선언을 하고 유엔 산하 글로벌 금융사들의 탄소중립 추진연합체인 ‘넷제로은행연합(NZBA)’에 가입했다고 16일 밝혔습니다.
각 금융지주가 이처럼 회장까지 직접 나서 ESG경영을 강화하는 것은 ESG경영이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는 주요 변수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4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조용병 회장과 손태승 회장은 각각 유럽과 싱가포르에서 아침을 맞으며 해외투자자 유치에 힘쓰고 있는데요.
금융지주 회장들은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진행할 때 각 금융지주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뿐 아니라 ESG경영 성과도 적극 알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유럽, 미국의 주요 투자자들이 기업 투자를 결정할 때 ESG경영 요소를 상당히 까다롭게 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회장이 투자기업 CEO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탄소중립과 양립하는 사업구조 계획을 공개할 것을 주문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유럽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은 ESG요소를 통제하지 못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주요 기관투자자의 본사 앞에서 반대 시위를 열며 투자 철회를 압박하기도 합니다.
4대 금융지주의 ESG 강화 활동은 실제 외국인 자금 유입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오른쪽)이 6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골드스미스 영국 환경부장관 등과 만나 기후문제 해결을 위한 금융사의 역할을 논의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18일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투자자 지분을 지난해 말과 비교해보면 KB금융은 69.38%에서 72.87%, 신한금융은 60.34%에서 62.67%, 하나금융은 67.53%에서 72.42%, 우리금융은 29.99에서 37.82% 등으로 4대 금융지주 모두 크게 늘었습니다.
외국인투자자는 올해 들어 4대 금융지주의 주식을 2조3천억 원어치 순매수했는데요.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글로벌 증시 불확실성에 따라 올해 들어 국내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금이 크게 빠져나간 것과 사뭇 다른 결과입니다.
물론 글로벌 증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보이는 은행주의 성격도 외국인의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각 금융지주가 지속해서 주주가치 강화를 강조하며 배당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책을 확대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고요.
하지만 ESG경영 기조 강화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가운데)이 11일 인천 청라 하나드림타운에서 열린 '청라 상생형 하나금융 공동 직장어린이집' 개원식에서 원아들에게 강아지로봇을 선물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함께 성장하며 행복을 나누는 금융'을 실천하기 위한 ESG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2018년 5월부터 '어린이집 100호 건립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
외국인투자자의 지분 확대는 각 금융지주의 경영 자율성 확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금융업은 그동안 대표적 관치산업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4대 금융지주는 지금도 배당을 얼마 하느냐를 놓고 금융당국의 눈치 보고 있는데요. 외국인투자자 지분 확대는 자율 경영의 큰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4대 금융지주가 모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안에 ESG관련 위원회 설치를 마무리한 것은 지난해 3월입니다.
이제 막 1년이 넘었죠.
ESG관련 위원회가 생긴 뒤 4대 금융지주의 ESG경영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앞으로 계속 힘이 실릴 ESG경영을 놓고 볼 때 4대 금융지주의 ESG 강화 활동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꿀벌 기르기와 같은 아이디어와 실천이 계속해서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금융지주의 외부 투자자 확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지구가 무척 좋아할 겁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