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대신증권, 메리츠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현대차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은 일제히 LG생활건강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전날 발표된 LG생활건강 1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은 1분기 연결기준 매출 1조6450억 원, 영업이익 1756억 원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19.2%, 영업이익은 52.6% 줄었다. 특히 화장품사업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9.6%, 72.9% 급감했다.
화장품사업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한 대도시 봉쇄조치였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봉쇄조치는 홍콩-심천-상하이로 이어졌는데 이 동선에 LG생활건강의 핵심 물류기지가 위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LG생활건강은 상하이에서는 15일부터 물류가 정상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에 낸 복공(조업재개) 신청이 11일 승인돼 상하이 보세구역에 묶여 있던 제품들의 통관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상하이 물류센터에서 중국 전역으로 제품을 배송할 수도 있게 됐다.
다만 증권사들은 1분기 이후에도 LG생활건강의 중국 화장품사업 회복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주력 브랜드인 ‘더히스토리오브후(이하 후)’의 성장 여력을 낮게 평가했다. 후는 LG생활건강 화장품사업에서 6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작년 하반기부터 중국 전자상거래(C2C) 채널에서 후 브랜드의 거래가격이 하향 추세를 나타냈던 것을 미뤄보면 후 브랜드가 역기저 부담이 커지는 구간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1분기 중국에서 후 매출은 전년보다 38% 감소했는데 동일한 사업환경에서 에스티로더 매출은 5% 감소에 그쳤고 설화수는 매출이 8% 증가했다”며 “이번 실적은 후의 중국 브랜드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에서 후를 비롯한 LG생활건강 화장품사업은 대도시 봉쇄조치가 이뤄지기 전부터 이미 성장이 둔화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의 중국 화장품시장 점유율은 2021년 1.6%를 기록해 중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전년보다 하락했다.
이는 중국 화장품시장에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20년 중국 화장품시장 점유율 10위권에 ‘상메이’, ‘바이췌링’, ‘쟈란’ 등 현지기업 3개가 새로 진입했다. 2025년부터는 현지 브랜드들이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화장품 경쟁자가 많아지는 반면 중국 화장품시장의 성장세는 갈수록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10%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한 중국 화장품시장은 2022년부터 한 자릿수대 성장이 예상됐다.
결국 LG생활건강으로선 중국 이외에 다른 지역을 통한 성장을 모색할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 더히스토리오브후 '환유고 스페셜 에디션'. < LG생활건강 >
차 부회장이 최근 북미사업 확대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그는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사업 확장 가능성이 큰 글로벌 뷰티시장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필두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며 “글로벌 최대 시장인 동시에 트렌드를 창출하는 북미시장에서 사업 확장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 부회장은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북미시장 개척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기업 인수합병에 집중하는 중이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미국 화장품기업 뉴에이본(현재 더에이본)을 인수한 데 이어 2020년에는 약국화장품 브랜드 피지오겔의 아시아 및 북미 사업권을 사들였다. 미국 헤어케어 브랜드 알틱폭스를 보유한 기업 보인카를 2021년 인수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미국 화장품기업 크렘샵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향후 후 등 LG생활건강 화장품이 북미에 진출할 경우 기존에 마련된 유통망을 기반으로 소비자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LG생활건강은 “현지 마케팅과 영업 역량을 높여 나가며 북미시장에서 본격적인 성장을 준비하는 등 시장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LG생활건강 북미사업의 규모 자체는 아직 중국사업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LG생활건강 전체 매출에서 북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6% 중반대에 불과하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매출이 83%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차 부회장은 앞으로도 북미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공산이 크다. 북미 등 해외에서 LG생활건강 화장품사업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 기존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입지를 회복하는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종대 연구원은 “글로벌 선진 시장인 미국·유럽에서 브랜드 인지도 정립은 후가 중국 또는 앞으로 전개할 신흥국에서 지속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이다”며 “글로벌 인지도가 없는 럭셔리 브랜드는 중국시장에서 사상누각이다. 중국 소비가 계속 브랜드화할 경우 과연 후에 대한 고평가(로열티)가 계속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화장품사업 신시장 개척은 차 부회장이 CEO로서 LG생활건강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보인다.
차 부회장은 2004년 말부터 약 17년째 LG생활건강 대표를 맡고 있다. 올해 3월 주주총회를 통해 7번째 대표이사 연임에 성공했다. 연간 실적을 기준으로 17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회사의 성장을 주도한 공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차 부회장이 8번째 임기를 이어가게 될 지는 미지수다. 차 부회장은 1953년 태어나 현재 LG그룹 최고령·최장수 CEO로 꼽힌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