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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지난 1월 경기도 광주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신년 임원 워크숍에서 "믿음과 용기, 열정을 가지고 일에 집중해서 신화를 만들자"고 주문했다. <뉴시스>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왜 '구조조정 낙제생’이 됐을까?
김 회장이 동부제철에 대해 채권단 공동관리체제(자율협약)를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동부그룹의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
동부제철은 25일 채권은행 등의 관리절차 개시와 관련해 "주채권은행에서 제시한 자율협약 체결건과 관련해 협의중에 있으며 구체적 사항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답변했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날 "채권단의 일관된 입장은 동부가 최대한 빠른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동부그룹을 압박했다.
동부그룹은 산업은행에 의해 구조조정 낙제생으로 낙인이 찍혀 있다. 현대그룹이나 한진그룹의 경우 순조롭게 자구책을 진행하고 있는 반면 동부그룹은 구조조정 의지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경우 지난해 12월 3조3400억 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발표한 뒤 목표액의 63.3%에 이르는 2조1131억원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한진그룹도 2조 원 이상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뒤 자구안대로 이행하고 있다.
반면 동부그룹은 지난해 3조 원의 자구안을 내놓은 뒤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자금난에 처해 부도위기까지 몰리고 있다.
◆ "김준기의 경영권 집착이 동부를 위기에 내몬다"
동부그룹이 이런 위기에 몰린 까닭은 김준기 회장이 경영권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채권단들은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대표적 사례가 김 회장 일가가 동부화재의 지분을 내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목이다.
채권단은 오는 27일 차환발행심사위원회를 열어 내달 7일 만기가 돌아오는 700억 원 규모의 동부제철 회사채 차환 발행 승인을 결정한다. 차환발행은 이미 발행한 채권의 원금을 상환하기 위해 새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뜻한다.
채권단들이 동부의 자구계획안을 심의해 만장일치로 차환발행을 승인하면 동부제철은 만기 회사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 채권의 표면금리는 8.40%다.
산업은행은 700억 원 중 200억 원은 자체적으로 차환발행하고, 400억 원의 회사채는 신용보증기금(60%), 채권은행(30%), 금융투자업계(10%)가 나눠서 인수하기로 했다. 동부제철은 100억 원만 준비하면 된다.
하지만 동부화재 지분 후순위 담보 설정을 놓고 채권단과 동부그룹의 입장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채권단은 차환발행 승인을 위해 김준기 회장 장남인 김남호 현대체철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 14.06% 중 13.9%를 후순위 담보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 회장은 동부제철이 자율협약을 체결하는 상황에서 동부화재 지분을 후순위 담보로 제공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고집하고 있다.
채권단은 "회사채 차환발행을 승인하려면 동부화재 지분 후순위담보 설정 등 동부그룹의 책임과 의지가 동반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채권단에서 전부 손해를 떠안고 차환발행을 승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동부그룹의 경영 정상화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김 회장 일가가 동부화재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부그룹은 "동부제철의 만기 회사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율협약 체결을 신청하는데, 동부화재 지분 담보를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거부하고 있다.
김 회장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김 부장이 보유한 14. 06%의 지분과 김 회장이 소유한 7.87%을 유지해 동부화재의 경영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동부화재는 동부 금융계열사의 지주회사나 마찬가지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 일가가 동부그룹의 제조부문은 포기하더라도 알짜인 금융부문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 회장의 경영권에 대한 욕심이 실기를 거듭해 동부그룹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자구안으로 사재출연을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는 것 또한 경영권에 대한 집착이라는 분석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 1300억 원 규모의 사재출연을 채권단에게 약속했다. 30억 상당의 한남동 자택까지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김 회장은 이달 초 이 돈을 김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의 개인금융회사인 동부인베스트먼트(DBI)에 내놓겠다고 했다. 이 회사는 동부메탈의 대주주이자 동부하이텍의 지분 31.28%, 동부팜한농 지분 6.84%를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이 당장 돈줄이 마른 동부제철 등에 사재를 출연하지 않고 동부인베스트먼트에 넣겠다는 것은 이 회사를 살려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의지로 분석된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의 경영권 욕심이 일을 그릇치고 있다”며 “내놓을 것은 내놓고 회사를 살려야 하는데 경영권만 집착하다 보니 기사회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 창업주로 독불장군식 경영 스타일이 집착 불러
재계는 김 회장이 경영권에 집착하는 것은 그가 동부그룹의 창업주라는 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동부그룹은 국내 주요 그룹들 가운데 창업 1세대가 오너이자 경영인으로 남아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김 회장은 1969년 미륭건설에서 시작해 동부그룹을 일궜다. 김 회장은 애지중지 키워온 그룹의 경영권을 어떻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심정이 강하다.
김 회장이 보이는 경영권에 대한 강한 집착은 그동안 동부를 성장시킨 저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오히려 김 회장의 목을 죄는 칼이 되고 있다.
동부그룹이 위기에 몰리고 있지만 김 회장의 독단적 경영 스타일 탓에 주변에서 아무도 정확한 조언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회장에 대해 그룹 안팎의 부정적 평가 중 독불장군식 경영스타일이 자주 거론된다. 그가 오판을 하거나 과욕을 부려도 주위에서 말리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대표적 사례가 반도체 사업에 대한 칩착이다. 김 회장은 1997년 시스템 반도체 위탁제조업체인 동부하이텍을 인수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제대로 흑자를 내지 못하고 차입금이 한때 2조4천억 원까지 불어났다. 이 오판이 동부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