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서 금융공기업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금융공기업들은 노동이사제 안착과 민간영역 확산에 선도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조들은 노동이사제 시행 이전임에도 벌써부터 신임 이사 선임 과정에서 노동이사를 앉히려 움직이고 있다.
▲ 국회가 2022년 1월11일 본회의를 열어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 내용을 담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의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16일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하반기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이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공기업 노조들이 신임 비상임이사 선임에 참여하려 움직이고 있다.
앞서 국회는 지난 10일 본회의를 열어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의무화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 공운법은 정부 공포 뒤 6개월부터 시행된다.
정부가 이번 달 안에 공포 정차를 마무리하면 올해 7월 중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는 셈이다. 절차에 통상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노동이사제의 도입 시기는 8월 전후가 유력해 보인다.
개정 공운법이 시행되면 공기업 36곳, 준정부기관 95곳 등 131곳 공공기관은 비상임이사 가운데 1명을 반드시 노동자 대표의 추천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소속 노동자로 선임해야 한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금융공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에 일반 금융권은 물론 재계 전반적으로 눈길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은 정부 규제의 영향력이 다른 산업보다 크다는 업권의 특성상 정부, 노조 등의 입김이 다른 업권보다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운법 개정으로 노동이사제가 의무화되는 곳은 공공기관에 국한되지만 정치권이 공공 영역을 시작으로 민간 영역까지 제도 확산을 추진한다면 금융권이 첫 주자가 될 공산이 가장 크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12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공공이사제 도입을 두고 “공공기관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도입되는 노동이사제는 우리 사회의 경영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므로 그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공공기관부터 모범을 보이기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이번 공운법 개정안 통과 이전부터 노동이사제 도입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돼 왔다.
수출입은행에서는 직접 노동자가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노조가 추천한 외부 전문가가 비상임이사를 맡는 형태의 노동자추천이사제가 도입됐다. 예금보험공사나 주택금융공사에는 노동이사제의 전 단계로 평가되는 ‘노동자 이사회 참관제’가 도입돼 있다.
민간 영역에서도 KB금융지주에서 2017년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노동이사제 도입이 시도되는 등 관련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번 개정 공운법을 보면 노동이사제 도입이 의무화되는 금융공기업은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서민금융진흥원 등 5곳이다.
이들 금융공기업의 노조들은 노동이사제 시행 이전부터 노동이사 선임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임기가 끝나는 이사들이 있어 그 자리에 노동이사를 앉히려 하는 것이다.
실제 금융공기업의 비상임이사 임기를 보면 신용보증기금에서 2명의 임기가 1월30일, 주택금융공사에서는 3명의 임기가 6월9일, 예금보험공사에서는 3명의 임기가 8월2일, 서민금융진흥원에서는 2명의 임기가 10월6일 끝난다.
자산관리공사는 4월22일에 2명, 8월30일에 5명의 비상임이사가 임기를 마친다.
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해 주택금융공사, 자산관리공사는 개정 공운법의 시행을 앞두고 새로 비상임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만큼 노동이사를 임명하라는 노조의 요구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융공기업 사측으로서는 노동이사제 도입에 소극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공기업의 특성상 개정 공운법에 따른 새 시행령이나 기획재정부의 가이드라인 등 노동이사제의 세부 내용이 구체화되기 전까지는 섣불리 자체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달에 공석이 생기는 신용보증기금의 비상임이사 인선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앞둔 금융공기업의 분위기를 가늠해 볼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보증기금은 이미 임원추천위원회가 구성돼 있는 만큼 현행 법에 따라 비상임이사 추천 절차를 진행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노조의 노동이사 임명 요구가 거세다면 절차가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수출입은행에서도 지난해 9월 노조의 반발로 비상임이사의 공석이 3개월 이어지는 진통을 겪은 끝에 기획재정부가 노조 추천 인사를 기존 비상임이사 정원에 추가로 임명하면서 노동자 추천 사외이사가 도입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