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D램 가격이 4분기부터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 시선이 많다.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 D램 평균 가격이 3~8% 내려갈 것으로 바라봤다. 용도에 따라서는 PC용 D램 5~10%, 서버용 D램 최대 5% 등으로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코로나19 이후 늘었던 전자기기 수요가 차츰 둔화해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약해지면서 주요 D램 고객사들이 정상 수준보다 많은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D램 공급과잉이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D램 가격에 관해 부정적 전망이 제기되면서 D램 선두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최근 부진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 기준 삼성전자 주가는 7만4200원으로 6개월 전과 비교해 9%가량 낮아졌다. D램 의존도가 더 큰 SK하이닉스 주가는 6개월 만에 24%가량 하락해 10만 원대를 겨우 지키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D램 가격 하락세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내년부터 DDR5 양산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DDR5는 DDR4를 잇는 D램의 새로운 규격을 말한다. DDR5 규격에서 생산되는 D램은 기존 DDR4 제품과 비교해 데이터 전송속도가 2배가량 빠르면서도 전력소모는 오히려 더 적다.
다만 DDR5의 생산성은 DDR4보다 나아지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된다. DDR5는 DDR4에 없던 오류정정회로(ECC) 등이 새로 내장되는 방식이라 칩 크기가 DDR4보다 커지게 된다. 웨이퍼 한 장에서 만들어지는 메모리반도체 칩 개수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른 D램 생산도 DDR5 양산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반도체기업들이 기존 D램 생산시설을 전환해 DDR5 비중을 키우는 과정에서 DDR4를 비롯한 나머지 D램제품 생산이 정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DDR5는 동일한 공정에서 생산되는 DDR4 제품보다 크기가 15%에서 20%까지 커질 것이다”며 “칩 크기 증가로 D램 생산효율은 중장기적으로 낮아질 것이다”고 바라봤다.
일반적으로 제품 생산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제조업체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이미 D램시장을 과점한 기업들 쪽에서 보면 DDR5 도입으로 고객사와 메모리반도체 가격 협상에서 오히려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는 상황이 조성된다고 볼 수 있다.
2분기 기준 D램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43.6%, SK하이닉스 27.9%, 마이크론 22.6% 등으로 상위 3개 기업이 전체 시장의 94.1%를 차지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도 DDR5 도입에 따른 D램 생산성 저하가 메모리반도체기업에 긍정적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DDR5가 시장에 도입되는 내년부터 D램 공급이 전체적으로 감소하며 D램 가격이 다시 상승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DDR5 양산이 이뤄지면서 동시에 전체 D램 공급의 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D램산업은 제한된 공급여건 속에서 서버와 모바일용 D램의 수요가 늘며 다시 한 번 제품가격 상승의 탄력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DDR5 D램의 수요 자체도 내년부터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처리장치(CPU)시장을 과점한 인텔이 DDR5를 지원하는 제품을 곧 시장에 선보일 것으로 예정됐다.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기업이나 서버 제조사 등이 데이터 처리성능을 높이기 위해 DDR5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포스는 DDR5가 내년 비트(데이터 단위)기준 D램 공급의 10~1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른 시장 조사업체 옴디아는 DDR5 비중이 2022년 10%에서 2024년 43%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DDR5로 전환은 교체수요 발생, 공급제약, 가격 프리미엄 등으로 D램 산업에 매우 긍정적이다”며 “DDR4도 초기 시장에서 DDR3 대비 50% 이상 가격 프리미엄이 형성됐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