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준 포스코 회장이 동부제철 패키지를 인수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권 회장은 아직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간을 끌면서 인수포기를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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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준 포스코 회장 |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당진발전 패키지를 인수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포스코는 현재 두 매물에 대한 실사를 마치고 인수와 관련한 분석보고서를 작성중이다.
포스코는 분석보고서에서 두 매물의 가치를 7천억 원 상당으로 책정했고 ‘인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포스코가 두 매물의 가치를 7천억 원으로 제시한다면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협상은 결렬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포스코가 책정한 가치는 산업은행이 책정한 가치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아직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를 놓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권 회장은 13일 “사안이 복잡한 모양”이라며 “아직 검토결과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결과가 나와 봐야 안다”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포스코가 인수를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이유는 인수포기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포스코는 애초 이번주 중 내부 분석보고서 작성을 완료할 계획이었지만 다음주나 돼서야 보고서 작성읅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이에 앞서 두 매물을 실사하는 과정에서도 몇 차례 일정을 미뤄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썼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사종결을 계속 미루는 건 인수금액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가 많은 시간을 들여 충분히 검토한 뒤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인상을 남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도 인수포기의 명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포스코가 한국기업평가로부터 신용등급 강등을 당한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포스코가 국제신용등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국내 신용등급까지 강등 당하자 포스코의 재무구조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포스코로선 신용등급 강등이 분명 악재이긴 하나 재무적 부담을 이유로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를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분위기가 부정적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며 “만약 결과가 안 좋게 나온다면 가격에 대한 언급없이 인수포기 의향만 전달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를 포기하게 되면 동양파워 인수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에너지는 최근 진행된 동양파워 인수를 위한 본입찰에서 최고가를 제시하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포스코가 동양파워 인수에 나서자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동양파워와 동부당진발전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 두 매물을 모두 인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권 회장은 동양파워와 동부당진발전 인수에 대해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는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 가능성을 시사하기보다 중립적 태도를 취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포스코의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 포기설이 돌자 산업은행은 공든 탑이 무너질까 우려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애초 포스코의 재무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동부제철 인수에서 직접 재무적 투자자로 나서 지분의 70~80% 가량을 매입하기로 하는 등 파격적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이달 안으로 동부제철 패키지 가격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내부방침을 세워 둔 상태다. 산업은행은 지난달 23일 청와대에 동부그룹 등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포스코와 가격협상을 이달 중 마무리 짓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가 결렬될 경우 동부그룹의 빠른 구조조정 이행을 위해 동부그룹이 내놓은 다른 매물 매각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빠르게 매각될 것으로 보이는 매물은 동부특수강이다. 동부특수강이 매물로 나오자 세아그룹이 인수를 긍정적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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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동부그룹 입장에서 포스코의 인수 포기설이 내심 반갑다.
동부그룹은 신주인수권부사채 상환을 위해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동부제철 패키지 매각를 산업은행에 일임했다.
그러나 동부그룹은 패키지 매각방식에 대한 불만을 꾸준히 토로해 왔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패키지 매각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패키지 매각으로 동부제철 인천공장의 자산가치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동부그룹은 포스코의 패키지 인수 포기로 두 매물을 분리해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경쟁입찰을 통해 자산을 매각하면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며 “경쟁입찰을 하면 매각이 1~2개월 늦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동부그룹은 분리매각할 경우 중국 철강기업들이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매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인수의향을 밝힌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동부그룹의 바람처럼 분리 매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