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총괄사장으로선 최대한 많은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배터리사업 분사와 상장 추진 전에 먼저 SK종합화학 지분매각 문제부터 깔끔하게 매듭지어 놓아야 할 필요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30일 SK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SK종합화학이 회사이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한 ‘딥체인지(근본적 혁신)’ 실행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SK종합화학의 새 이름으로는 지구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은 ’SK지오센트릭(SK geocentric)’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축으로 한 그룹 전반의 혁신을 내걸고 한 가지 사업에 국한된 이름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친환경 이미지를 보일 수 있는 회사이름을 강조해오고 있다.
SK종합화학은 자원 선순환체계 구축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데 이 또한 최 회장의 뜻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폐플라스틱 재활용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여러 기업과 협력을 강화해 성장동력 마련에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SK종합화학은 올해 들어 다수의 협약, 지분투자 등을 통해 폐플라스틱 재활용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1월 미국 열분해유 전문 생산기업 브라이트마크와 국내 첫 대규모 열분해유 상용화 설비투자 양해각서 체결, 6월 북미 해중합기술 특허 보유기업 루프인더스트리 지분 10%에 630억 원 투자, 8월 미국 폴리프로필렌(PP) 재활용기술 보유기업 퓨어사이클테크놀로지와 합작법인 설립 양해각서 체결 등이 있다.
이를 놓고 SK종합화학은 폐비닐에 열을 가해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나프타 등의 원료를 얻어내는 ‘열분해유’ 기술, 오염이 심한 폐페트(PET)와 폐의류를 분해해 재활용하는 ‘해중합’ 기술, 폴리프로필렌 기반 플라스틱 재활용기술 등 화학적 폐플라스틱 재활용의 3대 역량을 모두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SK종합화학은 루프인더스트리에 지분투자를 하며 “앞으로도 루프인더스트리와 협력을 비롯해 글로벌 플라스틱 재활용 전문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해 범지구적 폐플라스틱문제 해결을 선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준 총괄사장으로선 이런 SK종합화학의 친환경사업 전환에 더욱 탄력을 붙일 뿐 아니라 SK이노베이션 전체 투자재원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서도 SK종합화학 지분매각에 더욱 적극적 자세로 나설지 주목된다.
김준 총괄사장은 7월 중장기 경영전략을 발표한 ‘스토리데이(Story Day)’를 통해 "2021~2025년 5년 동안 3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전 5년(2016~2020년) 동안 투자금 13조 원의 2.3배에 이르는 규모다.
30조 원의 투자계획을 보면 배터리와 배터리 핵심소재인 분리막 투자가 23조 원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외의 투자계획도 7조 원에 이른다.
특히 SK종합화학은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에 조성하는 폐플라스틱 재활용공장 ‘도시유전’ 단일 프로젝트에만 6천억 원가량을 넣기로 했다.
폐플라스틱 재활용뿐 아니라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생분해성 수지 등을 통해 친환경사업 전환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SK종합화학 신사업과 관련한 투자규모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SK이노베이션은 투자재원 마련이 시급한데 자금조달의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로 SK종합화학 경영권을 놓지 않는 선에서 지분 50% 미만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은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SK종합화학 지분매각 문제를 놓고 “다양한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구체적 매각규모나 일정 등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서두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SK종합화학 지분을 매각하면서 최대한 높은 값을 받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은 앞서 4월 자회사 SK루브리컨츠 지분 40%를 팔면서 1조1천억 원을 받았는데 회사 규모가 더 큰 SK종합화학 지분 매각에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SK종합화학 지분 49%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지분가치는 작게는 1조 원에서 많게는 1조5천억 원 사이로 평가된다.
경영권이 걸리지 않은 만큼 SK종합화학 지분매각에 주로 국내외 복수의 재무적투자자(FI)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이 3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재원을 순탄하게 마련하기 위해서는 SK종합화학 지분매각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시선이 만만치 않다.
SK이노베이션의 주요 투자재원 조달방안 가운데 배터리사업 상장이 가장 규모가 크다.
자칫 SK종합화학 지분매각이 지지부진해 뒤로 밀려 배터리사업 상장시점과 엇비슷해진다면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수요가 분산돼 시장에서 평가받는 배터리사업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제약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10월 배터리사업을 분사한 뒤 이르면 내년 하반기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기업가치는 최대 2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에서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상장은 구주매출이나 신주 발행 등 방식에 관계없이 수 조원의 자금이 움직일 수 있는 대형 이벤트로 여겨진다.
기관투자가의 관심과 투자수요가 크게 몰려 기업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그 이전에 투자수요를 분산할 만한 다른 지분매각이슈를 서둘러 처리해두는 것이 전체 투자재원 확대에는 좀 더 유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석유화학업황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만큼 SK종합화학 지분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시선도 있다.
SK종합화학은 2018년 13조 원이 넘던 매출이 지난해 8조5천억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업황 회복을 확인한 뒤 SK종합화학 지분매각을 진행하면 더 높은 값을 받는데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SK종합화학 지분매각과 관련해서는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언급한 바처럼 아직 구체적으로 알릴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여러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