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인수합병의 저주’를 풀어낼 수 있을까? KB금융이 LIG손보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조건이 붙어 있다. 2주 안에 금융위원회의 자회사 승인에 관한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면 입찰에서 경쟁했던 동양생명 롯데와 다시 협의하게 된다. 금감원이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KB금융은 김앤장의 자문을 구해 기관경고를 받더라도 인수에 문제가 없도록 방패를 준비중이다.
◆ 임영록의 강한 의지에 역전 성공
LIG손해보험 매각주관사 골드만삭스는 KB금융을 조건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1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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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
동양생명-보고펀드는 차순위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골드만삭스는 앞서 본입찰에 참여한 KB금융, 동양생명-보고펀드, 롯데그룹, 푸싱그룹, 자베즈파트너스를 대상으로 경매호가식 재협상을 진행했다.
KB금융은 재협상 과정에서 인수가격을 6400억 원으로 높여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가 예고돼 있을 뿐 아니라 내부갈등이 불거지면서 LIG손보 인수전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의 인수의사가 강해 재협상 과정에서 인수가격을 크게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은 최고 인수가를 제시한 롯데그룹을 제치고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롯데그룹이 재협상 과정에서 제시한 인수가격은 6500억 원 상당이었다. 차순위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동양생명-보고펀드가 제시한 인수가격은 6천억 원대로 KB금융에 다소 못 미친다.
골드만삭스는 여러 인수 후보 중 KB금융의 자금조달 능력이 가장 뛰어나 인수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KB금융은 LIG손보 노조가 반대하지 않는 유일한 인수 후보라는 점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LIG손보 노조는 그간 롯데의 경영능력 부족, 동양생명-보고펀드가 투기자본이라는 점 등을 들며 KB금융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의 LIG손보 인수를 반대해왔다.
LIG손보 노조는 KB금융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환영하고 나섰다. 노조는 오는 26일 전까지 금융위원회 건물 앞에서 KB금융의 LIG손보 인수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은 앞으로 2주 동안 LIG손보, 골드만삭스와 단독으로 매각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KB금융 관계자는 “LIG손보로부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인수를 위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며 “LIG손보 인수를 통해 조직안정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김앤장으로부터 법률자문 받은 KB금융
KB금융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LIG손보 인수에 바짝 다가서게 됐다. 그러나 최종 인수계약을 맺으려면 금융위원회 자회사 승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KB금융이 잇따른 금융사고 내부갈등과 관련해 이달 중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기관경고를 받게 될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KB금융이 기관경고를 받게 되더라도 LIG손보를 인수하는 데 법률상의 문제는 없다. KB금융이 앞서 법무법인 김앤장에 자문을 구해 기관경고를 받더라도 금융위원회로부터 자회사 편입승인을 받아낼 수 있는 법률적 검토를 거쳤다.
현행 보험업법상 최근 3년 이내 기관경고 이상 조치를 받은 경우 보험회사의 대주주가 될 수 없다. 그러나 KB금융은 금융지주회사 특례조항이 적용돼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생략되고 사업계획의 타당성, 재무 및 경영상태의 건전성 등의 승인심사만 받으면 된다.
KB금융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의 인수승인 과정에서 제재결정이 정성적 판단의 사유가 될 수 있겠지만 승인 불허의 명분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지주의 경영실태평가등급이 2등급 이상이 돼야 한다”며 “현재 KB금융의 등급이 2등급인데 기관경고를 받게 돼 2등급 이하로 떨어지면 인수자격에 제한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KB금융이 난관을 뚫고 LIG손보 최종 인수에 성공하게 된다면 국내 최초 은행계 손해보험사가 탄생하게 된다. KB금융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공격적 영업을 펼칠 수 있으며 기존 계열사인 KB생명보험과 시너지를 꾀할 수도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KB금융은 증권사, 생보사, 은행 등 모든 금융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면서 “보험업이 브랜드 산업이란 측면에서 LIG손보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어긋난 신동빈의 금융업 확대 계획
롯데그룹은 재협상 과정에서 최고가를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차순위 우선협상대상자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롯데손해보험 관계자는 “LIG손보를 인수하지 못한다고 해서 회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대형 손보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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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더욱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LIG손보 인수를 통해 금융업 확대를 꾀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LIG손보 인수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이러한 계획도 어그러지게 됐다. 신동빈 회장은 “LIG손보를 어떤 수를 써서든 인수하라”를 특명을 내릴 정도로 이번 인수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신 회장에게 LIG손보 인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롯데손보 회생의 위한 회심을 카드였다. 롯데손보는 2008년 롯데그룹에 인수된 이후 수년째 적자를 냈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56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겨우 흑자전환했다.
그러나 매출액은 1조5천억 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23% 감소했다. LIG손보를 인수하게 되면 롯데손보는 업계 4위에서 단숨에 2위로 뛰어올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한편 구자원 회장이 정말 LIG손보를 매각할 뜻이 있는지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LIG그룹은 그간 LIG그룹은 LIG손보 매각가격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매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에 LIG손보 인수전에서 가격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최고가를 제시한 롯데그룹은 차순위 협상대상자에도 들지 못했다. 차순위 대상자로 선정된 동양생명-보고펀드로 노조가 반대해 온 인수 후보였기 때문에 롯데그룹이 노조의 반발 때문에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는 설명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구자원 LIG 회장이 애초 LIG손보 매각을 결정한 이유는 피해자들에게 보상액을 지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피해액을 상당 부분 보상했기 때문에 구 회장으로서 LIG손보 경영권에 다시 욕심을 낼 상황이기도 하다.
LIG손보 인수전 초반에 구 회장이 매각가격으로 1조 원을 기대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구 회장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것은 진정으로 매각할 의사가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