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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인은 어떻게 프랜차이즈 왕이 됐나

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 2014-06-07 00: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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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인은 어떻게 프랜차이즈 왕이 됐나  
▲ 허영인 SPC그룹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프랜차이즈 왕’이다.


파리바게뜨를 비롯해 커피전문점인 파스쿠찌와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베스킨라빈스, 도너츠 브랜드인 던킨도너츠 등 여러 프랜차이즈 가맹점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가맹점 수만 전국에 걸쳐 6천여 개가 넘는다.


그는 ‘제빵왕’이다.


그는 동네빵집이었던 상미당에서 출발한 가업을 물려받아 연매출 4조가 넘는 SPC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허 회장은 고려당과 신라명과, 크라운베이커리 등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제과점 브랜드인 파리바게뜨를 독보적인 1위로 올려놓았다.


허 회장은 어느 재벌 회장 부럽지 않은 부자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4월 ‘올해의 한국 50대 부자’를 공개했다. 허 회장은 자산 10억 달러(약 1조240억 원)를 넘어서며 27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자산은 지난해보다 무려 75%나 증가했다. 프랜차이즈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례해 그의 재산도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 맛있다는 빵을 찾아다닌 허영인


허 회장은 빵에 대한 열정으로 지금의 프랜차이즈 왕국을 이룩했다. 허 회장이 맛있는 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1981년 33세의 나이에 미국에 건너가 제빵학교에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허 회장은 지금도 신제품을 내놓기에 앞서 미리 시식하고 출시를 최종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경영 마인드뿐만 아니라 엔지니어처럼 기술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신념을 품고 있다. 그가 미국 캔자스시티에 있는 AIB(American Institute of Baking)에 가서 1년 6개월 동안 제빵학교를 다닌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허 회장이 스스로 키워온 전문성이 오늘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다. 허 회장은 2010년 방영된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 주인공의 소재가 됐던 인물이다. 빵에 대한 그의 열정은 드라마 주인공 이상이었다.


허 회장은 학창시절에도 밤마다 제빵공장을 직접 찾아가 공정 하나하나를 모두 살펴보곤 했다. 대학 입학 후 아버지 허창성 회장을 졸라 중고 트럭을 구입해 빵이 맛있다는 곳을 찾아다녔다는 일화도 있다. 허영인 회장이 2002년 형으로부터 모태기업인 삼립식품을 인수하자 아버지 허창성 회장으로부터 “너는 어렸을 때부터 빵을 좋아했으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빵에 대한 열정은 일찍이 인정받았다.


허 회장은 일에 관한 한 ‘독종’이다. 그가 샤니를 맡은 후 주력상품인 식빵 생산을 자동화했던 사례에서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는 가혹한 근무환경으로 이직률이 가장 높고 1인당 생산성도 떨어졌던 식빵 2차 발효실의 자동화를 추진했다. 그는 실패할 것이라는 회사 안팎의 우려에도 설비투자를 강행해 6개월 만에 2차 발효실 자동화시스템 가동에 성공했다.

  허영인은 어떻게 프랜차이즈 왕이 됐나  
▲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012년 9월 7일 파리바게뜨 싱가포르 1호점 개점식에 참석해 매장 직원을 격려했다. <사진=SPC그룹>

◆ 일 독종, 품질에 대한 자부심


허 회장은 품질을 중시한다. 허 회장은 미국 유학 후 제빵업계 최초로 정부 공인 식품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품질 고급화에 주력했다.


그는 올해 초 신년사에서도 “시장 트렌드를 선도하는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세계시장에서 치밀한 현지화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품질경영과 글로벌경영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품질에 대한 허 회장의 자신감은 2010년 불거졌던 이른바 ‘쥐식빵 사건’에서 빛을 발했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파리바게뜨 식빵에 쥐 시체가 들어있다는 사진이 퍼졌다. 하지만 파리바게뜨는 제빵 과정에서 절대 이물질이 유입될 수 없다고 자신했다.


사건이 불거진 뒤 12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에 제조과정을 직접 보여줬다. 경찰수사 결과 제보자의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신속한 조처였다.


그는 지금도 현장을 강조한다. SPC그룹의 한 관계자는 “허 회장은 주말마다 브랜드와 지역별 프랜차이즈 매장을 둘러본다”고 말했다. 허 회장이 매장별 주력제품과 매출을 모두 꿰고 있어 임직원들이 실적을 보고할 때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 샤니 물려받아 가맹점 사업 진출


허 회장의 아버지 허창성 회장은 서울 을지로 4가에 있던 상미당이란 작은 빵집에서 출발해 빵사업을 일궜다. 허창성 회장은 1963년 서울 신대방동에 공장을 세워 공장빵 생산에 주력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바로 ‘크림빵’이다. 1964년부터 생산된 크림빵은 2012년까지 16억 개나 팔렸다. 오늘의 SPC그룹을 만들어준 스테디셀러인 셈이다.

상미당은 공장빵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회사 이름을 삼립산업제과(1959년)에서 삼립산업제과공사(1961년)로 바꿨다. 이어 삼립산업제빵공사(1966년)를 거쳐 삼립식품공업(1968)에 이르게 된다. 삼립식품공업은 주한미군에 빵을 납품하는 군납업체로 이름을 올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삼립식품은 1960년대 후반부터 고려당과 태극당, 뉴욕제과 등 새로운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했다. 경쟁회사들은 경제개발로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이 공장빵보다 맛있고 질 좋은 고급빵을 찾는 것을 주목하고 시장을 파고들었다.


이에 따라 허창성 회장도 1972년 케이크 등 고급빵을 생산하는 한국인터내셔날식품(현 샤니)을 세웠다. 또 직영 판매점인 ‘샤니의 집’을 세우는 등 샤니를 통해 고급 베이커리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허창성 회장은 장남 허영선 회장에게 삼립식품을, 차남 허영인 회장에게 샤니를 물려줬다.


허영인 회장은 1983년 물려받은 샤니를 기반으로 제빵왕국을 세우기 시작했다. 허 회장은 소비자 취향이 고급화되자 기존의 공장빵만으로 시장을 넓히기 힘들다고 보고 1984년 ‘후레쉬나’라는 베이커리 점포를 열었다. 후레쉬나는 지금의 파리바게뜨처럼 매장에서 직접 빵을 구워 팔며 신선한 이미지로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허 회장이 사업을 크게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1986년 서울 반포동에 처음 문을 연 파리크라상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파리크라상은 프랑스풍의 정통 고급빵을 즉석에서 구워내 판매한다는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다. 허 회장은 “당시 제과점은 대부분 당자 돌림 일색이었다”며 “경쟁사가 발견하지 못한 소비자의 잠재된 욕구를 끄집어내기 위해 차별화에 몰입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8년 파리크라상의 프랜차이즈 사업인 파리바게뜨 브랜드를 만들어 가맹점사업을 시작했다. 허 회장이 가맹점 사업에 뛰어들 무렵 업계 1위는 크라운 베이커리였다. 허 회장은 크라운 베이커리의 생크림 케이크를 벤치마킹한 뒤 매장에서 빵을 직접 굽는 베이크 오프 방식을 홍보수단으로 삼았다.

  허영인은 어떻게 프랜차이즈 왕이 됐나  
▲ SPC그룹은 지난 3월 12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제4회 SPC 가맹점주 대학생자녀 행복한 장학금 전달식'을 열었다.

◆ 형의 삼립식품도 인수해 제빵 왕국 완성


허 회장은 사업 9년 만인 1997년 업계 1위에 올랐다. 당시 파리바게뜨의 가맹점 수는 600여 개로 프랜차이즈 업계 최다였다.


그는 국내 외식사업이 다변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허 회장은 1985년 미국의 던킨그룹과 손잡고 비알코리아를 세웠다. 허 회장은 1988년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배스킨라빈스를 프랜차이즈사업으로 도입해 성공시켰다. 던킨그룹은 허 회장이 배스킨라빈스를 성공적으로 경영한 것을 보고 1993년 던킨도너츠의 국내 사업을 위탁했다.


그가 본업과 새로운 사업에서 승승장구했지만 형인 허영선 삼립식품 회장은 제과점업계에 밀려 입지가 점점 좁아졌다. 허영선 회장은 본업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콘도와 음료사업, 패스트푸드사업, 유선방송사업 등으로 다각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1997년 5월 어음 3억 원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를 낸 뒤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허영인 회장은 2002년 삼립식품을 901억 원에 인수하며 모기업을 위기에서 구했다. 그가 형과 분리경영을 한지 20년 만의 일이다. 허영인 회장은 늘어난 계열사를 관리하기 위해 2004년 SPC그룹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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