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콘텐츠사업의 판을 키운다. 외부 전문가를 수혈하고 전문법인을 세웠다.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시장에서 넷플릭스에 이어 글로벌 콘텐츠 왕국을 세운 디즈니를 경쟁자로 두게 된 만큼 웨이브 자체 콘텐츠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 더 시급해졌다.
웨이브는 SK텔레콤이 지상파3사와 연합해 내놓은 온라인 동영상서비스다. SK텔레콤 계열사 콘텐츠웨이브가 운영한다.
3일 콘텐츠웨이브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이르면 올해 상반기 안에 콘텐츠 기획과 제작, 투자를 위한 별도의 스튜디오를 세우고 집중 투자를 통해 텐트폴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을 세워뒀다.
텐트폴 작품이란 대규모 자본과 유명 감독, 배우 등을 투입해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말한다.
박 사장은 웨이브 자체제작 콘텐츠사업을 총괄할 전문가도 외부에서 영입하며 만전을 기하고 있다.
콘텐츠웨이브는 한 달 전부터 사내에 콘텐츠전략본부를 새롭게 만들어 전문 프로듀서들을 채용했고 전략본부 본부장에는 이찬호 전 스튜디오드래곤 책임프로듀서를 앉혔다.
이 본부장은 1973년 태어나 드라마, 영화 예능 등 다양한 장르에서 콘텐츠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CJ그룹 미디어부문에서 15년 넘게 일하며 잔뼈가 굵은 콘텐츠 전문가다.
특히 CJENM의 드라마사업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 책임프로듀서로 도깨비, 미생, 시그널 등 많은 인기 드라마를 기획, 제작했다.
박 사장은 앞서 2019년 웨이브 출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CJENM과 협력에 공을 들였었지만 CJENM이 JTBC와 손잡고 자체 온라인 동영상서비스를 만들면서 실제 제휴에는 실패했다.
SK텔레콤은 이 본부장의 영입으로 콘텐츠사업에서 CJENM의 성공비결을 SK 쪽에 이식하는 효과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웨이브 관계자는 “기획스튜디오는 웨이브 자회사 형태의 콘텐츠 전문법인으로 설립될 것”이라며 “콘텐츠전략본부 본부장이 합류했으니 이제부터 경영진 안에서 구체적 논의가 있을 것을 본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이 이처럼 콘텐츠 제작에 본격 뛰어든 것은 넷플릭스에 자극받은 바가 크다.
넷플릭스는 한국 온라인 동영상서비스시장에서 가입자 1천만 명을 확보하며 독주하고 있다. 더구나 해마다 한국 콘텐츠 투자규모를 늘리고 있다.
2021년에는 한국 콘텐츠 제작에만 5억 달러(약 5600억 원)을 투자한다. 한국 콘텐츠 외 넷플릭스의 다양한 자체제작 콘텐츠까지 생각하면 웨이브도 밀려나지 않기 위해 체급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세계적 콘텐츠 강자 디즈니도 새로 경쟁자로 가세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온라인 동영상서비스 디즈니플러스는 디즈니, 마블, 픽사, 21세기폭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을 통해 보유한 콘텐츠 8천여 편을 제공한다. 또 한국시장에 진출하면서 한국의 지식재산(IP)에 바탕한 한국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박 사장은 이미 디즈니플러스와 제휴가 없다는 점을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밝혔다.
박 사장은 4월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IT쇼 2021’ 개막식에서도 “디즈니플러스가 웨이브를 경쟁자로 보고 있다”며 “그래서 협력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못을 박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는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서비스 출시가 가까워지면서 웨이브와 콘텐츠 계약도 연장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당장 5월부터 웨이브 월정액 영화관에서 영화 ‘어벤저스’, ‘스타워즈’, ‘겨울왕국’ 등 디즈니 영화 100여 편을 볼 수 없게 됐다.
단건구매 영화상품은 그대로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영화관에서 디즈니 작품들이 빠지면서 웨이브는 영화 상품권 구독자 유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막강한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의 진입으로 한국 온라인 동영상서비스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짐에 따라 웨이브로서는 독자적 무기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박 사장은 2017년 SK텔레콤 대표에 오를 때부터 통신을 넘어 뉴ICT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올해 통신사업과 비통신 사업을 분리해 성장사업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도 본격화했다.
미디어사업은 통신, 커머스, 보안, 모빌리티와 함께 SK텔레콤의 5대 핵심사업 가운데 하나다.
미디어시장도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에서 웨이브는 SK텔레콤의 미디어, 콘텐츠사업에 매우 중요한 플랫폼이다.
SK텔레콤은 콘텐츠웨이브의 기업공개(IPO)도 준비하고 있다. 웨이브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으러면 생존을 넘어 시장에서 가입자 규모를 키우고 경쟁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콘텐츠웨이브 관계자는 “기업공개 시기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면서도 “지속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자금을 유입하기 위해 콘텐츠웨이브를 상장해야 한다는 목표에는 흔들림이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