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후보군인 이동통신사들이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경쟁을 일단락하고 다른 신사업분야로 눈길을 돌리면서 딜라이브와 CMB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 딜라이브와 CMB 로고.
17일 KT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KT는 딜라이브 예비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해 가격 협상을 진행해왔지만 현재 협상이 멈춰있는 상태인 것으로 파악된다.
KT는 구현모 대표이사 사장이 미디어시장에서 압도적 1등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2020년 현대HCN를 인수한 데 이어 하반기 딜라이브 인수에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구 사장이 올해 들어 미디어부문 투자의 무게중심을 콘텐츠 제작사업 쪽으로 옮기면서 투자의 우선순위가 바뀐 분위기를 보인다.
KT 관계자는 “딜라이브 인수는 기존과 변함없이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현대HCN 인수작업 마무리도 올해 하반기에나 매듭짓게 된다”고 말했다. 인수를 추진하더라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구 사장은 2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KT의 인수합병 계획을 묻는 질문에 “금융·핀테크에 관심이 있다”며 “딜라이브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해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구 사장은 1월 콘텐츠 전문법인 KT스튜디오지니를 설립해 미디어사업에서 제작과 유통을 아우르는 가치사슬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런 경영전략의 방향성에서 보면 KT는 현재 2, 3위 경쟁자들과 격차를 10% 수준으로 벌려둔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을 더 높이는 것보다 제작부분 역량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KT가 올해부터는 온라인에서 유통하는 웹드라마나 웹예능을 벗어나 극장용 영화와 중·장편 드라마 등 규모가 큰 콘텐츠들을 제작하면서 자체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운 만큼 콘텐츠사업 투자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현재 케이블TV 매각시장은 완전한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여겨진다.
KT나 이동통신사가 계약을 서둘러 매듭지을 이유가 없다.
유료방송시장에서 인터넷TV가 이미 주도권을 차지했고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케이블TV기업들은 시간이 갈수록 몸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자도 같은 이동통신사뿐이라고 볼 수 있는데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 모두 이미 케이블TV기업 한 곳씩을 인수하며 1차전은 치렀다.
딜라이브와 CMB 인수는 미디어사업의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소라기보다는 누가 조금 더 유료방송시장에 욕심을 내느냐의 문제가 된 셈이다.
딜라이브는 케이블TV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매각시장에 나왔지만 번번이 상황이 꼬이며 점점 더 어려운 처지로 몰리고 있다.
딜라이브는 앞서 2015년 회사 이름이 씨앤앰이던 시절부터 매각을 추진했지만 당시에도 1조 원 수준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평가를 받으며 최종 합의에 실패하고 있다. 2019년에는 KT가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문제 등에 걸려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0년에는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IHQ를 팔아 몸값을 낮추고 노조까지 매각에 적극 지지를 보내며 힘을 모았지만 해를 넘기면서 다시 상황이 되돌이표된 모습이다.
케이블TV시장 4위 기업 CMB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CMB와 가격 협상을 벌여왔던 SK텔레콤이 16일 이베이코리아 예비입찰에 참여하면서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이베이코리아는 몸값으로 5조 원 수준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이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추진한다면 올해 무리해서 CMB까지 사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CMB는 처음 시장에 나올 때는 가격을 5천억 원 수준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당시에도 SK텔레콤과 가격을 두고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KT에 넘어간 알짜매물 현대HCN도 매각 가격이 4911억 원이었다.
CMB는 매물로 나서면서 2020년을 넘기지 않고 거래를 성사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보였다. 당시 CMB는 인수 상대방이 2021년도 사업계획을 신속히 추진할 수 있도록 빠르게 거래를 마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유료방송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2020년 케이블TV기업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협상들이 급물살을 탈 때도 있었지만 모두 ‘지금 당장은’ 케이블TV기업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분위기”라며 “결국 케이블TV기업들을 인수하긴 하겠지만 살 사람이 우리밖에 없는데 급할 게 없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