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벌이는 배터리 다툼의 2라운드 양상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마음잡기로 벌어지고 있다.
2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의 최종 판결과 관련한 의견을 각각 전달했다.
▲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왼쪽),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앞서 2월10일 두 회사의 분쟁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와 관련 부품의 수입이 금지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국제무역위의 판결을 놓고 4월10일까지 검토한 뒤 집행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권한을 위임받은 부처가 무역대표부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주 무역대표부의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국제무역위의 판결이 뒤집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조만간 국제무역위의 검토에 필요한 서류도 공식적으로 제출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을 놓고 국제적 기관에서 지식재산권 분쟁과 관련한 선례를 만든 것이며 이 판결이 뒤집어진다면 앞으로 미국에서 기술 집약적 산업을 진행하기 위한 해외 투자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뜻을 펼 것으로 전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1995년 처음 배터리 연구를 시작한 뒤로 2020년 2분기까지 30년 가까이 적자를 감수하면서 수십조 원 단위의 투자를 해왔다.
전기차배터리만 따져도 상업생산을 시작한 최근 10년 동안 해마다 1천억 원 규모의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투자를 지속해왔다. 최근 5년 동안 투자한 자금만 11조 원이다.
이런 투자의 한 축이 미국에 세워져 있는 만큼 바이든 행정부가 LG에너지솔루션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주에 5GWh 규모의 전기차배터리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GM과 만든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통해 30GWh 규모의 공장을 추가로 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막대한 투자에는 시설투자뿐만이 아니라 연구개발투자도 포함돼 있다.
글로벌 특허정보검색서비스 윕스온(WIPSON)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한국·일본·중국·미국·유럽 등 5개 나라 특허청에 등록된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배터리 관련 특허는 모두 2만3610건이다. 글로벌 주요 배터리회사들 중 가장 많았다.
중국 CATL은 2221 건이며 SK이노베이션은 1781건에 그친다.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오랜 기간 축적해 온 기술들이 유출된 것과 관련해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이유가 충분한 셈이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국제무역위의 판결이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전기차배터리공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를 지난주 무역대표부에 전달했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3조 원을 투자해 합산 21.5GWh 규모의 전기차배터리 1공장과 2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이 완성되면 2025년까지 34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지사도 판결 직후인 2월13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국제무역위의 수입 제한조치에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모두 6번 있다. 그러나 지식재산권 침해와 관련해서는 거부권이 발동한 사례가 없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내 전기차배터리 부족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관용차 300만 대를 모두 전기차로 바꾸는 것을 포함해 2026년까지 미국 내 전기차 보급률을 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을 내걸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배터리시장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 CATL, 일본 파나소닉 등 아시아 제조사들이 과점하고 있다.
이 가운데 CATL은 중국 회사라는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의존도를 높이는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다. 무역분쟁 이슈에 미국의 배터리 조달망이 크게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은 원통형 전기차배터리만을 생산해 테슬라에만 공급하며 삼성SDI는 미국보다 유럽에서의 전기차배터리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미국 전기차산업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의존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거부권을 행사하느냐, 혹은 마느냐에 따라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결과가 된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이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전기차배터리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회사 관계자 모두 “다수 언론에서 말하듯 백악관에 의견을 낸 것이 아니라 무역대표부의 통상적 검토 절차에 따른 의견을 내는 것일 뿐이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