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효 기자 kjihyo@businesspost.co.kr2021-01-04 16: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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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보험공사와 강원랜드를 시작으로 올해 공공기관에서 직무급제가 확대적용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공공기관의 직무급제 도입 의지를 보여온 만큼 임기 막바지에 직무급제 확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 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
다만 정부 주도가 아닌 사회적 합의를 먼저 이뤄야한다는 노동계의 반발도 끊이지 않고 있다.
4일 공기업계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를 시작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확대하는 공기업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직무급제는 업무의 책임과 강도, 난이도에 따라 급여를 다르게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반대로 호봉제는 현재 국내 대다수의 공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급여체계로 오래 일할수록 급여가 늘어나는 구조다.
호봉제는 간부직원과 일반직원의 임금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 개인의 성과와 직무 숙련도, 난이도 등이 반영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또 고령화 기조와 맞물리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더 키워 청년 신규채용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예금보험공사 노사는 지난해 12월23일 직무급을 중심으로 보수체계를 개편하는 데 합의해 예금보험공사 임직원 800여 명은 2020년 12월부터 새 보수체계가 적용된 급여를 받았다.
예금보험공사는 2010년에 성과연봉제를 일부 도입하며 급여에 직무급제 비중을 7~8%가량으로 적용해 왔는데 이번 합의로 직무급제가 적용된 급여의 비중을 30%로 대폭 높였다.
직무급이 적용된 급여의 비중은 높아졌지만 아직 직무 사이의 차등폭은 크지 않아 예금보험공사는 앞으로 ‘직무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직무 사이에 어느정도 차등을 둘 것인지 논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번 예금보험공사의 직무급제 도입은 금융공기업으로서는 처음이다.
몇몇 금융공기업이 그동안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해 왔지만 그동안 금융노조의 강한 반발로 직무급제 도입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주택금융공사 노사는 2016년 직무급제와 유사한 성격을 띤 것으로 개인의 성과와 업무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합의했는데 이 바람에 주택금융공사 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하게 반대하던 금융노조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이후 주택금융공사 노조는 집행부를 새로 꾸려 4년 만인 2019년 금융노조에 다시 가입하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직무급제 도입을 막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기도 했다.
IBK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또한 직무급제 도입을 검토했지만 노조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았다.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은 노조의 출근 저지 농성으로 출근하지 못하다가 직무급제 도입과 관련해 노조가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는는 내용이 포함된 노사 공동 선언문에 서명한 뒤에야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직무급제 도입을 위해 내부 컨설팅을 기반으로 노조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이어왔다”며 “임금 협상 과정에서 ‘하후상박’을 적용해 직급이 낮은 직원들에게는 후하고 직급이 높은 직원들에게는 박한 구조를 짜는 등 노조의 요구에 맞추는 노력을 기울여 합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금융공기업뿐만 아니라 직원이 1천 명 이상인 대형공공기관들도 점차 직무급제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강원랜드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직무급제를 기존 실장과 팀장 등 간부급에만 적용했던 것을 파트장, 업장관리자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1월부터 37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84명 등 간부급에만 직무급제를 도입해 운영해 왔다.
예금보험공사와 강원랜드가 직무급제를 확대하면서 올해 공공기관에 직무급제가 확대적용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직무급제를 확대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어 직무 사이에 크게 차등을 두지 않는 선에서 우선 직무급의 적용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지난해보다 강한 직무급제 도입 평가기준을 내건 바 있다.
기획재정부가 2020년 10월 말 수정해 내놓은 ‘2020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을 보면 직무급제 도입 노력 및 성과를 평가하는 항목에 별도로 2점이 책정됐다.
지난해는 직무급제 도입과 예산편성지침을 따른 예산 편성, 임금피크제 운영 등 지표 세 가지를 모두 통틀어 3점을 부여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공공기관 보수체계를 직무급제로 개편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2021년 4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2기 공공기관위원회를 출범하고 직무급제 도입을 뼈대로 한 지속가능한 공공기관 임금제도와 관련한 후속논의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계 반발은 넘어야할 산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직무급제를 추진하고 있다며 직무급제 도입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반대의사를 보인 바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에는 크게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 기획재정부는 정부 임기 마지막에 성과를 위해 경영평가를 볼모로 삼아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전체 공공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임금체계 개편 청사진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공기관이 제대로 된 임금체계 개편을 할 수 있도록 경제사회노동위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가 아닌 실제 책임을 질 수 있는 기구를 설립하고 정부와 노동계가 실질적으로 임금격차를 완화할 수 있고 민간에 모범이 될 수 있는 임금체계 개편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