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에 정의선 회장시대가 열렸다.
정 회장은 취임 이후 글로벌 미래차시장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품질 논란을 넘어서야 한다.
■ 방송 : CEO톡톡
■ 진행 : 곽보현 부국장
■ 출연 : 이한재 기자
곽보현 부국장(이하 곽): 인물중심, 기업분석! CEO톡톡! 안녕하십니까, 곽보현입니다.
정의선 회장시대 현대기아차의 품질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정의선 회장이 10월 회장에 오르면서 현대차그룹도 본격적으로 3세경영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기아차의 첫 번째 과제로 '품질경영'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정 회장은 회장 취임 직전 잇단 화재로 논란이 된 전기차 코나의 글로벌 리콜을 결정했고 취임 뒤에는 미래 발생할 품질비용을 미리 인식해 3조 원이 넘는 충당금을 쌓으면서 품질 개선에 의지를 보였습니다.
정의선시대 현대기아차의 품질을 놓고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한재(이하 이): 안녕하세요.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입니다.
곽: 정 회장이 취임하고 나서 현대기아차 품질이 이슈입니다.
품질부서뿐 아니라 그룹 전반적으로 품질을 향한 긴장감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얘기도 들리는데요.
현대기아차가 품질을 강조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의선 회장의 품질은 정몽구 회장의 품질과 무엇이 다를까요?
◆ 정의선 품질, 정몽구시대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이: 말씀 주신 대로 현대기아차는 정몽구 회장 시절부터 품질경영을 앞세웠습니다.
정몽구 회장의 과거 신년사나 주요 공장 착공식 기념사를 보면 어김없이 품질을 강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정몽구 회장이 1999년 미국 출장을 다녀온 뒤 미국 마케팅정보업체이자 자동차 품질조사업체로 유명한 JD파워에 품질 관련 컨설팅을 받도록 지시하고 양재동 사옥 품질상황실에 ‘JD파워의 충고’를 액자로 걸어두고 품질경영을 강조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곽: 그렇게 해서 현대기아차의 품질 수준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나요?
요즘 품질 이슈가 있긴 하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지기도 했고 미국 JD파워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기사도 본 것 같은데요.
이: 맞습니다. 정몽구 회장 시절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5대 자동차 브랜드기업으로 성장했는데 이는 품질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정의선시대 품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고 요구받고 있습니다.
정몽구시대의 현대기아차 품질기준이 대량생산시대에 불량률을 낮추고 빠르게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이를 이뤄냈다면 정의선시대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자동차 제조업체를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곽: 정몽구 회장이 현대기아차의 볼륨을 키우기 위해 품질이 필요했다면 정의선 회장은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위한 품질이 필요한 것이군요?
이: 그렇습니다. 품질은 단순히 차체나 도색 등의 문제가 아닌 결국 자동차 본연 경쟁력과 브랜드 이미지로 이어집니다.
이는 현대기아차의 품질 개선을 위해 남양연구소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인데요.
단순히 제조 과정 문제가 아니라 제품 설계단계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면에서 품질을 잡아야 하는 만큼 남양연구소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곽: 그렇다면 남양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어마어마한 규모의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의 핵심기지라는 점은 알고 있는데 자세한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이: 남양연구소는 현대차그룹 연구개발의 핵심으로 평가됩니다.
1980년대 서해 남양만을 매립한 땅 위에 만들어져 남양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현대차는 1980년대 지금의 땅을 매립해 주행시험장 등을 짓기 시작했고 2003년 현대차 울산연구소와 기아차 소하리연구소를 통합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종합주행시험장과 풍동시험장, 디자인 연구소 등 자동차 관련 연구시설을 모두 갖추고 신차와 신기술 개발, 디자인, 설계, 시험 및 평가 등 연구개발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곽: 저도 조금 조사를 해봤는데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더군요.
풍동시험장 규모만 축구장 크기고 전체 부지는 축구장 500개 정도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1980년대 현대차가 남양연구소 부지를 매입하려고 하자 정부에서 연구소 하나 짓는데 뭐 그렇게 많은 땅이 필요하냐, 부동산 투기 아니냐는 의심을 보냈다는 일화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몽구 회장을 이곳을 연구개발의 핵심기지로 만들고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5위, 한국을 자동차 강국으로 키워냈습니다.
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규모를 갖춘 지 10년이 지나고 인력도 늘면서 비효율도 자연스럽게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정의선 회장이 2018년 총괄 수석부회장에 오르기 전 양웅철 부회장과 권문식 부회장의 보이지 않는 힘 싸움을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양 부회장과 권 부회장은 나이도 동갑이고 서울대학교 공대 동기인데 남양연구소는 한동안 두 부회장의 동거체제로 운영되면서 하나의 연구결과를 놓고도 별도 보고가 이뤄지는 등 비효율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곽: 당시는 현대차가 세타2엔진 품질 논란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인데 내부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정의선 회장이 이를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나요?
◆ 정의선, 남양연구소 대수술 이미 시작했다
이: 정의선 회장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 회장은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에 오르고 나서 한 첫 인사에서 바로 남양연구소 최고책임자를 바꿉니다.
정 회장은 당시 양 부회장과 권 부회장을 고문으로 물러나게 하고 현대기아차 고성능차사업을 이끌던 알버트 비어만 사장에게 연구개발본부장을 맡깁니다.
곽: 기억납니다. 현대차그룹이 사상 처음으로 연구개발본부장에 외국인을 앉힌 거죠?
알버트 비어만 사장은 BMW 출신 유명 엔지니어로 현대차에 올 때도 화제가 됐는데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지 5년도 채 안 돼 연구개발본부장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됐죠.
당시 상당히 이례적 인사였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네. 현대기아차 품질을 이끌어 온 부회장 2명을 한 번에 물러나게 하고 외국인을 연구개발본부장에 앉히면서 품질 개선을 향한 정 회장의 의지가 상당하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 직원들에게 복장의 자유를 주고 IT회사보다 더 빠른 변화를 강조하는 등 수평적 조직문화도 강조하는 데 연구소 부회장들의 힘 싸움을 가만히 놓고 볼 수 없었겠죠.
곽: 비어만 사장이 연구개발본부장에 오르고 나서 남양연구소가 실제로 뭔가 달라진 게 있나요?
이: 우선 조직 내에 긍정적 긴장감이 더욱 높아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무래도 자동차선진국으로 평가되는 독일 출신의 유명 엔지니어가 연구개발본부장에 오르니까 임직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겠죠. 외국어에 부담이 있는 분들도 있을 테고요.
비어만 사장은 연구개발본부장에 오르고 6개월이 지나 조직개편도 실시합니다.
남양연구소가 대규모 조직개편을 한 것은 2012년 이후 7년 만인데 5개 담당의 병렬구조로 돼 있던 조직을 제품통합개발담당, 시스템부문, 프로젝트매니지먼트담당의 삼각형 구조로 단순화했습니다.
각 담당 조직의 유기적 협력체계를 높인 것인데 현대기아차는 이를 차량 개발 철학을 담은 '아키텍처 기반 시스템조직'이라고 부릅니다.
비어만 사장 취임 이후 매년 하는 조직 만족도 평가도 개선되는 등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곽: 역시 사람이 바뀌니 조직의 전반적 분위기도 바뀌는군요.
정의선 회장의 남양연구소 혁신을 위한 용인술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찾아보니 올해 들어서도 상용개발담당에 다임러 출신의 마틴 자일링어 부사장, 자동차 핵심으로 평가되는 파워트레인 담당에 PSA출신의 알렌 라포소 부사장을 영입하는 등 인력 교체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정의선 회장의 남양연구소 변화는 결국 사람에게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임원의 변화가 일반 직원들에게도 미칠 때야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남양연구소 직원들의 사기도 많이 올라갔습니까?
이: 음, 그 부분에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좀 멀어 보입니다.
남양연구소 연구원 처우 개선은 정 회장이 앞으로 신경 써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현대차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기본급을 동결하면서 성과급도 최소화했는데 이와 관련해 젊은 연구진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적잖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조는 정년퇴직한 노동자를 일정 기간 다시 일하게 하는 시니어 촉탁직을 얻어내면서 임금 부분에서 다소 양보를 했는데 이는 남양의 젊은 연구원들에게 유리할 게 없는 결과입니다.
곽: 현대차 노조 지부장도 정의선 회장을 만났을 때 건의사항으로 연구원의 처우 개선을 이야기하던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군요.
현대차는 최근 몇 년 사이 실적이 좋지 않아 성과급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젊은 연구직이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이직하는 경우도 많아졌겠습니다.
이: 맞습니다. 일각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정기공채를 없애고 수시채용을 도입한 것도 연구원들 이직률을 낮추려는 조치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정기공채는 아무래도 두루뭉술한 인재를 뽑을 수 있지만 수시채용을 하면 원하는 분야를 명확히 할 수 있어 자동차에 정말 관심 있는 인재가 온다는 것입니다.
곽: 하지만 그런다고 유망 인재를 잡을 수 있을까요? 인재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할 텐데요.
이: 정확히 보셨습니다. 결국 연구원 처우를 개선하려면 돈을 많이 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비를 늘려야 합니다.
현대차 사업보고서를 보면 1년에 전체 매출의 2~3%가량을 연구개발비로 쓰고 있는데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 비율은 기아차나 현대모비스도 비슷합니다.
매출이 많아서 그 정도만 투자해도 많이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실 수 있지만 반도체분야 글로벌리더인 삼성전자를 보면 지난해 전체 매출의 9%가량을 연구개발비로 썼습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연구개발비 비율이 12%에 이릅니다.
만도나 한온시스템 등 국내 주요 자동차부품업체들도 연구개발비 비율이 5%를 넘는 것을 볼 때 현대기아차 수준이 결코 높아 보이진 않습니다.
곽: 정의선 회장이 남양연구소를 혁신하고 성과를 높이기 위해 아직 가야 할 길이 꽤 남은 것으로 보이는군요.
정몽구 회장이 현대기아차의 품질을 크게 끌어올렸지만 정의선 회장이 현대기아차의 도약을 이끌기 위해서는 품질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는 정의선시대 품질 개선을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현대기아차가 과연 미래차시대에는 단단한 품질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CEO톡톡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