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화상으로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정조사라는 카드를 꺼냈다가 체면만 구길 수도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가 제안한 윤 총장 국정조사가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한 발 물러서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 대표로서는 국정조사를 추진하자니 득보다 실이 많은 패착의 책임을 떠안게 되고 없던 일로 하자니 말을 뒤집는 꼴이 되는 처지에 놓였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윤 총장의 국정조사와 관련해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국정조사 추진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정조사를 하자 말자 이런 건 아니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법무부 징계위원회 징계절차 이후 어떤 절차를 밟을지 논의를 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윤호중 민주당 의원도 이날 기자들을 만나 “윤 총장의 징계위원회와 가처분신청 심판을 앞두고 있는데 그 전에 국회에서 국정조사부터 할 사안인가는 경과를 봐야 한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이 대표가 먼저 국정조사를 제안했는데 하루 만에 민주당의 태도가 바뀐 이유는 윤 총장의 국정조사가 민주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윤 총장을 국정조사에 세우면 그의 직무배제 사유를 낱낱이 들춰내면서 집중적으로 공격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오히려 추 장관의 권한남용 문제가 거론되면서 여권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 사안과 관련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검찰은 평검사는 물론 고검장까지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국정조사를 하더라도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을 맺기보다는 진영 사이 난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의 정치적 위상만 더 커질 수도 있는 셈이다.
이미 대검찰청 국정감사 때 여권의 공격이 윤 총장에게 집중됐지만 그 결과 윤 총장의 대선주자 지지율이 급등한 전례가 있다.
여론도 이번 윤 총장 직무배제와 관련해 여권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26일 공개된 여론 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 조치에 관한 국민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6.3%가 ‘잘못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잘한 일’이란 응답은 38.8%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리얼미터가 25일 하루 동안 전국 18세 이상 성인 8339명을 접촉해 최종 500명의 응답을 받아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에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여당에서 먼저 제안한 윤 총장의 국정조사를 야당이 받아들이면 여당도 야당의 다른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야당은 추미애 장관의 권한남용에 관한 국정조사 뿐 아니라 라임과 옵티머스펀드사건과 관련한 특별검사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 총장의 국정조사를 하자는 이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국정조사도 함께 추진할 것을 역제안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검찰총장 직무정지 사유와 함께 법무부 장관의 권한남용에도 문제가 없는지 포괄적 국정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국정조사 제안을 기꺼이 수용한다”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국정조사도 함께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안에서는 추 장관의 국정조사를 병행할 필요 없이 윤 총장의 국정조사를 조건없이 받아들여 추 장관이 내린 직무배제 명령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계기로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민주당이 추 장관 국정조사를 수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윤 총장 국정조사만이라도 수용하는 게 좋다”며 “국정조사는 오히려 윤 총장의 정당성과 추 장관의 문제점을 밝히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 의원은 “지난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의 지지율이 대폭 높아졌듯이 이번 국정조사에서 그 지지율이 더 뛸 수 있다”고 봤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