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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아버지의 법정 '최후진술'

강석운 기자 kang@businesspost.co.kr 2014-01-15 17: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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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의 최후진술은 대개 큰 울림을 던진다. 쿠바 혁명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최후진술은 더욱 그렇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이다.”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몬카다 병영을 습격한 뒤 붙잡혀 재판을 받으면서 “감옥은 힘든 곳이다. 그러나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에게 유죄를 내려달라”며 이 말로 최후진술을 마감한다 .

14일 아버지와 아들의 두 재판이 동시에 열렸다.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이,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이 회장의 아버지 이맹희씨가 동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한 유산소송의 결심이 각각 열렸다. 아들은 최후진술을 했고, 아버지는 재판부에 띄운 편지로 역시 최후진술을 했다.

  아들과 아버지의 법정 '최후진술'  
▲ 이재현 CJ그룹 회장
두 최후진술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삼성 가문의 장남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이건희 삼성’에 대한 두려움과 배신을 털어놓는다.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삼성이라는 한국 최대재벌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 꺼풀 벗겨지는 광경을 목격하는 듯 하다.

이재현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자랑스런 장손이 되고자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밤낮으로 일만 했던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분리 독립 이후 경영권을 위협받는 특이한 상황에서 제일제당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뛰었다”며 가족사적 환경에서 오는 경영권 위협에 대한 방어가 사업에 대한 기준이었다고 덧붙인다. 삼성을 잇지 못하고 제일제당만 갖고 분가해서도 끊임없이 삼성의 위협에 대항해 사업을 펼쳐왔다는 얘기인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이 이 회장이 스스로 밝힌 대로 제일제당에서 8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CJ그룹으로 성장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 대해 이맹희씨의 진술은 좀더 구체적이다. 이씨는 “아버지(이병철)는 철두철미한 분이지만 유언 한 장 남기지 않고 가족간 우애와 건전한 견제를 통해 화목하게 살라는 뜻으로 승지회를 만들고 떠났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 건희가 찾아와 나에게 잠깐 비켜있으면 조카와 형수를 돌보겠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했지만, ‘장손(이재현 회장)에 대한 예우’를 다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음을 내비친다. 그런데 이 믿음이 배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분노로 바뀌게 된다. 이씨는 “재현이가 회사 잘 키우고 건희가 약속을 잘 지킨다고 생각했지만 건희가 가족들에게 한 일을 나중에 알게 됐다"며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데 방해하고, 삼성이 거래하던 대한통운 물량을 빼는가 하면 재현이를 미행하는 것도 모자라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고 설명했다.

  아들과 아버지의 법정 '최후진술'  
▲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 이맹희씨
아버지와 아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장남으로서 그리고 장손으로서 삼성을 승계하지 못한 분노가 잉태한 불신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했을 수도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런 얘기에 대해 당장 삼성은 아니라고 펄쩍 뛴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받아들였던 ‘경영권에 대한 불안’이 전적으로 근거없다고 물리치기에는 여전히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다. 일부는 사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재현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기회를 달라”고 간곡히 말한다. 미완의 사업들을 궤도에 올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다. 특히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몸 상태를 염두에 둔 듯 “많은 시간이 남지 않은 제 건강상태를 고려해 법이 허용하는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거듭 호소한다.

이맹희씨의 최후진술에서는 아들의 건강상태에 대한 아버지의 염려를 느낄 수 있다. “재판이 끝나면 재현이는 감옥을 가고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또 80살이 넘은 ‘노인의 회한’도 묻어난다. “(화목하게 살라는) 유서조차 지키지 못한 장자가 마지막 노역으로 바라는 것은 이건희 회장과 만나 손잡고 응어리를 푸는 것"이라며 “건희와 나는 피를 나눈 형제다. 우애 깊은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마지막 바람”이라고 했다.

같은날 아버지와 아들의 최후진술을 보면서 ‘진정성’이라는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동안 재벌의 오너들이 그랬듯이 당장을 모면하고자 하는 ‘빈말’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어찌 알겠는가? 지금 하는 말의 진정성은 과거의 삶으로는 확인할 수 없고, 오직 아버지와 아들이 보여줄 앞으로의 삶만이 그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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