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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세월호 대국민담화 연설을 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 사회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민관유착 등 세월호 참사에서 들어난 공직사회의 병폐를 고치겠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고시를 폐지하고 수시로 전문가를 뽑는 방식으로 ‘철밥통’을 깨뜨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위해 총리실 산하에 행정혁신처를 두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에서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라는 비정상의 관행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 줬다”며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 관피아의 사슬 끊겠다
박 대통령은 우선 공무원 퇴직 후 취업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겠다고 했다. 그는 “이권이 개입할 소지가 많은 인허가 규제업무, 그리고 조달업무와 직결되는 공직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 공무원을 임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공무원의 다른 기관에 대한 취업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취업제한 기간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그동안 취업제한 대상이 아니었던 조합이나 협회 등을 포함해 취업제한 대상기관수를 3배 이상 늘리겠다는 것이다.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도 소속 부서가 아니라 소속 기관의 업무로 확대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해양수산부 퇴직 공직자는 해양수산부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라면 모두 취업이 제한하겠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관피아의 관행을 막기 위해 공무원 재임 때 하던 업무와 관련성의 판단기준도 고위 공무원의 경우 소속 부서가 아니라 소속 기관의 업무로 확대해서 규정의 실효성을 대폭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취업이력 공시제도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취업이력 공시제도는 고위 공무원이 퇴직 이후 10년 동안 취업기간과 직급을 공개하는 제도다. 박 대통령은 이를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 담아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 김영란법은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는 직무 관련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2년 가까이 제대로 된 심의없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형 공기업으로 내려온 ‘관피아’의 비중은 이명박 정부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한 조사를 보면 현재 공기업 기관장 두 명 중 한 명, 임원 세 명 중 한 명은 관료출신이다.
◆ 고시철폐 등으로 철밥통 깨겠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 임용방식에도 칼을 대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관피아의 폐해를 끊고 공직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공무원이 되는 임용부터 퇴직에 이르기까지 개방성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임용제도 개선과 관련해 “민간 전문가 진입이 더욱 용이하도록 5급 공채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5대5의 수준으로 맞추겠다”며 “궁극적으로는 고시와 같이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개방형 충원제도’도 고치겠다고 했다. 개방형 충원제도는 과장급 이상 직위에 민간 전문가가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이나 공무원들을 다시 뽑는 경우가 많아 무늬만 공모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부처별로 선발위원회를 두고 공모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발생한 병폐라고 지적한 뒤 “중앙선발시험위원회를 설치해 중앙정부에서 민간전문가를 선발해 부처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 문제는 의지와 실행력
박 대통령이 내놓은 공직사회 개혁은 좋지만 관건은 의지를 갖고 이를 얼마나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 대통령은 공직사회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총리실 산하에 행정혁신처를 두겠다고 했다. 행정혁신처는 기존 안전행정부의 공무원 인사 및 시험 관리, 행정기관의 조직 및 정원 관리 등의 인사·조직 업무를 비롯해 '관피아(관료+마피아)' 청산 등 관료사회 개혁을 총괄하게 된다.
그동안 새로운 정부가 들어올 때마다 관료사회 개혁을 내세웠다. 하지만 “청와대는 유한하지만 공직사회는 무한하다”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밀려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유야무야됐다.
관료 출신 취업제한에 대한 규정은 최근 3년간 심사대상의 7%만 제한을 받아왔으며, 개방형충원제도도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실효성이 없어졌다. 민간 개방형 임용을 통해 공무원 조직에 입성하더라도 조직 내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떠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런 전례들이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서 그 어떤 방안보다도 강력한 의지와 실행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고치지 않는 이상 공직사회 개혁방안은 허울만 남는 개혁이 될 공산이 크다.
다만 정부 일부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큰 만큼 공직사회를 개혁해 가는 과정에서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정부 관계자는 “제도 개선안에 대해 공직사회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발의 명분도 없고 반발할 힘을 모으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점이 공직사회를 개혁하는 데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행정혁신처의 수장이 누가 되는지, 총리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인물이 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곧 지금과 같이 허울 뿐인 2인자 총리가 되어서는 공직사회를 개혁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이 밝힌 공직사회 개혁안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개혁의 대상일 수 있는 관료들이 중심이 되어서 이런 개혁안을 만들었다는 데 한계가 있다”며 “관료에게 규제완화의 권리를 다 준 것이 대통령인데 관료공화국과 규제완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방향제시가 있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