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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Who] 최태원 사회적 가치, SK가 '하얀 고양이' 돼야 한다는 믿음

윤휘종 기자 yhj@businesspost.co.kr 2020-10-20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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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쓴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라는 책에는 쥐가 들끓어 곤란을 겪고 있는 마을과 관련된 우화가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쥐를 없애기 위해 사자와 개를 활용했다. 강한 힘을 자랑하는 사자는 야생동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데는 제격이었지만 작고 날랜 쥐를 잡는 데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았다. 개는 쥐를 잡기보다는 시끄럽게 짖어서 쫓아내는 효과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쥐를 잡는 데는 고양이가 제격이라는 것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은 그때부터 쥐를 잡는 데 고양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최태원의 SK, 마을의 쥐를 박멸하는 ‘고양이’를 꿈꾸다

이 우화에서 마을은 사회를, 쥐는 사회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상징한다. 강력한 사자는 정부를, 개는 영리기업을 상징한다. 

그리고 고양이는 사회적 가치(SV)와 경제적 가치(EV)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을 상징한다. 최 회장은 이 우화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야말로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이유는 그것이 고양이의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생존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을에 쥐가 존재하는 한 고양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버려질 걱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최태원 회장이 SK를 사회적 가치 추구 기업으로 바꾸려고 하는 이유는 SK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은 2017년 열린 이천포럼에서 “운동을 할 때 근육을 키우는 데 너무 집중하면 관절이 망가진다”며 “기업이 돈만 벌려고 하는 것은 이와 같으며 사회적 가치 추구는 결국 관절을 보호하기 위한 관절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는 기업의 생존을 위한 일이라는 뜻이다.

◆ 고양이는 과연 쥐를 잡고 살아갈 수 있는가, 유니레버의 폴 폴먼

그렇다면 사회적 가치 추구는 기업의 생존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일까? 기업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영리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필요하다. 

다국적 소비재기업 유니레버의 사례를 살펴보면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가 실제로 기업의 영리활동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니레버는 네덜란드의 유니와 영국의 레버브라더스가 합병하면서 설립된 다국적 소비재기업이다. 립톤 아이스티, 바셀린, 도브 등의 브랜드로 유명하다.

유니레버는 극심한 매출 정체를 겪다가 2009년 경쟁사 네슬레의 미국 법인 부사장이던 폴 폴먼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유니레버의 창립 이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온 CEO가 경쟁사의 경영자였다는 점에서 매우 파격적 인사였다.

폴 폴먼은 취임 직후 유니레버의 사회공헌부서(CSR)를 없앴다. 사회공헌은 특정 부서가 아니라 회사의 모든 부문이 사업단계에서부터 살펴야 하는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폴 폴먼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2009년 400억 유로였던 유니레버의 매출은 7년만인 2016년 527억 유로로 30% 넘게 성장했다. 

폴 폴먼이 취임 직후 이룬 성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베트남시장에서 약진이다. 

유니레버는 베트남 사람들의 구강청결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것에 주목했다. 베트남은 극심한 물부족국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강청결에 신경을 쓰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었다.

유니레버는 적극적으로 베트남에 구강청결과 관련된 공익광고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웃어요, 베트남’이라는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 공익광고는 베트남 사람들의 구강청결 인식 수준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베트남 사람들의 치아 건강이 양호해지는 한편 유니레버의 구강청결제의 판매량도 함께 급증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니레버는 2018년 기준으로 베트남 구강청결제시장의 43%를 점유하고 있으며 유니레버의 구강청결제 브랜드인 ‘P/S’와 ‘클로즈업’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구강청결제로 알려져 있다.

윤보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호찌민 무역관은 베트남 소비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민텔, 유로미터, BMI 등 조사업체들이 베트남 구강청결 의식 제고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구강청결제품을 유통하는 기업들의 적극적 의식 제고 캠페인이라고 공통적으로 분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니레버는 경쟁사 P&G의 ‘다우니’에 뒤처지고 있던 베트남 섬유유연제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사회적 가치를 활용했다. 

유니레버는 베트남 섬유유연제시장을 성장시키는 데는 무엇보다 베트남의 물부족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역시 베트남에 물 사용습관 개선을 촉구하는 공익광고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와 함께 기존에 사용하던 물의 40%만 사용하면 빨래를 할 수 있는 섬유유연제, ‘코포트 원’을 통해 베트남 섬유유연제시장을 공략했다. 

유니레버의 이런 행보는 또다른 효과도 불러왔다. P&G 역시 물을 아낄 수 있는 방향으로 다우니를 개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결과 유니레버는 섬유유연제 시장 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려 P&G와 시장을 양분하는 데 성공했다. 2017년 기준 유니레버와 P&G는 베트남 섬유유연제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 고양이를 키우는 ‘마을사람들’도 변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투자자들

다시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최 회장이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추구가 유니레버의 사례처럼 기업의 영리적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사회가 기업을 보는 인식도 변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고양이가 아무리 열심히 쥐를 잡는다 하더라도 마을사람들이 고양이의 공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고양이는 마을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의 세계적 추세를 보면 사회, 특히 그 중에서도 기업에게 집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투자자들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투자회사 가운데 하나인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그가 투자하는 회사의 CEO들에게 매년 편지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래리 핑크는 2018년부터 이 서한에 기업들의 사회적 가치 추구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기 시작했다. 

래리핑크는 2020년에 보낸 서한에서 “지속가능성 요인들이 투자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앞으로는 지속가능투자 (sustainable investing)가 고객 포트폴리오의 핵심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투자자뿐만 아니라 규제 당국, 보험사, 그리고 일반 대중들도 기업들이 지속 가능성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역시 투자기업의 사업 내용이 사회적 가치와 관련이 있는지를 투자의 중점에 두는 투자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임팩트투자(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투자)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후, 루트임팩트, HG이니셔티브, 크레비스파트너스 등 여러 굵직한 임팩트투자펀드들이 생겨났으며 이런 투자자들은 현재 ‘한국임팩트투자네트워크’를 구성해서 활동하고 있다.

SK 역시 이 임팩트투자에 힘을 쏟고 있다. SK그룹을 고양이로 만드는 것을 넘어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마을사람들의 역할도 하겠다는 것이다. 

SK는 행복나눔재단이라는 곳을 통해 임팩트투자에 나서고 있다. 행복나눔재단은 보고서를 통해 그들이어떤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지, 그 기업들은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공개하고 있다.

◆ ‘어미 쥐’를 잡는 고양이로,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헤쳐야

임팩트투자의 ‘임팩트’는 영어로 ‘강력한 충격’이라는 뜻이다. 즉 임팩트투자라는 단어는 사회에 커다란 변혁을 몰고올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말이 된다.

SK 역시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 원인 자체를 파헤쳐서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고양이와 쥐의 비유를 다시 들자면 마을에 돌아다니는 새끼쥐를 잡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새끼 쥐들을 낳고 있는 어미 쥐를 잡겠다는 것이다.

SK수펙수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SK의 목표와 관련해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의 발명자가 아니지만 증기기관을 활용해 인류의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헌했고 결국 산업혁명의 아버지가 됐다”며 “SK가 나아가려는 길은 제임스 와트의 길과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필립스의 ‘태엽라디오’ 사례는 기업이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사회에 커다란 변혁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필립스는 전기 인프라가 열악한 아프리카에서 라디오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태엽으로 작동하는 태엽라디오를 생산해 판매했다. 필립스의 태엽라디오사업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불러왔는데, 아프리카 전역에서 에이즈 발병률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태엽라디오의 보급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의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에이즈 예방법이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SK가 단순히 기부를 통한 사회공헌활동이 아닌 ‘사업’의 형태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단순 기부활동 역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사회 자체를 바꿀 힘을 갖기 위해선 사업 자체에 사회적 가치를 녹여내야 한다는 것이다.

◆ SK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하얀 고양이’가 될 수 있을까. 사회는 SK를 어떻게 보는가

다시 고양이 얘기로 돌아가자.

최 회장은 고양이를 검은 고양이와 하얀 고양이로 나눠 설명한다. 검은 고양이는 쥐를 잡아오면 생선을 주는 등 사회적 가치 말고 또다른 경제적 유인이 있어야 쥐를 잡는 기업, 하얀 고양이는 추가적 보상이 없어도 스스로 사회적 문제 해결에 힘쓰는 기업을 뜻한다.

최 회장의 목표가 SK를 영속하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살피면 최 회장이 SK를 하얀 고양이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것은 비교적 자명하다. 문제는 기업이 하얀 고양이인지 검은 고양이인지 판단하는 데는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가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사회가 인정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직까지 SK가 가야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심지어 SK 내부에서까지 여전히 최 회장의 이야기를 ‘탁상공론’이나 ‘위선’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는 남아있다. 

박주원 지속가능경영재단 CSR경영센터장은 한 언론에 기고한 기고문에서 SK그룹이 주최한 소셜밸류커넥트 행사와 관련해 “그 동안 SK그룹에서 발생했던 반사회적인 경영에 대한 최소한의 유감과 반성에 대한 내용은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장밋빛 미래로 가득한 마케팅 잔치만 있을 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2019년 초 발간한 ‘사익편취 회사를 통한 지배주주일가의 부의증식 보고서’에서 SK를 통한 최태원 회장의 사익편취액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어 국내 2위라고 발표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그 보고서에서 “SK 한 회사를 통해서 5조원의 사익편취액이 계산되었지만 SK실트론 역시 회사기회유용으로 볼 여지가 있으며, 그렇게 본다면 부의 증식액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며 “다만 TRS계약의 특성상 최태원 회장이 직접 보유하는 것으로 공시되지 않아 계산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SK의 진정성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례들도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바로 핵심평가지표(KPI)다.

KPI는 그룹 내부에서 계열사 평가를 위해 쓰이는 지표로 그룹 임원인사 등에도 활용되는 중요한 지표다.

SK그룹은 KPI의 평가 항목 가운데 사회성과 평가지표를 포함해 계열사 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계열사가 사업을 진행하면서 어떤 사회적 가치를 달성했는지를 평가해 계열사의 평가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SK그룹은 그룹의 ‘경영헌장’이라고 불리는 SKMS에도 사회적 가치를 담았다. SK그룹은 최근 SKMS를 개정하면서 SK그룹의 경영 지향점을 사회 구성원의 ‘행복’으로 정의하고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사회적 가치로 개념화하는 내용 등도 포함했다.

최 회장은 2019년에 모두 100차례의 ‘행복 토크’를 완주하기도 했다. 여기에 소모된 시간이 모두 1만4400분, 240시간이 소모됐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대기업의 총수로서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셈이다.

위에서 언급된 소셜밸류커넥트(SOVAC) 행사 역시 최 회장과 SK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행사로 평가받는다. 

최 회장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가치 추구는 SK의 힘만으로는 끌고 나갈 수 없으며 수많은 경제 주체들이 함께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소셜밸류커넥트는 최 회장의 이런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최 회장이 직접 제안해 개최되는 행사다. 최근 열린 SOVAC2020 행사에는 117개의 기업, 단체가 참여했다. 

최 회장과 SK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의구심을 지니고 보는 사람도,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거고, 최 회장이 뭔가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최 회장이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영인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사람’들로서, 사회 역시 이 마을에 고양이들이 계속 불어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다. [채널Who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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