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LG화학과 배터리 소송에서 합의를 통한 해결을 열어놓고 있지만 합의금은 엄청난 부담이다.
재무상황이 가뜩이나 나빠진 상황에서 LG화학 쪽에서 바라는 것으로 보이는 수조 원의 합의금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4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단기차입금, 2차전지 관련 투자금 등 대규모 자금 수요가 몰린 상황에서 상반기 영업적자를 내면서 재무상황이 나빠졌다.
SK이노베이션의 상반기 단기차입금은 3조5424억 원으로 지난해 말 단기차입금 1조1319억 원보다 2조 원가량 넘게 늘어났다.
SK이노베이션은 또한 상반기에만 영업손실 2조2149억 원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1분기와 2분기 모두 원유 재고의 평가손실 탓에 각각 영업손실 1조7752억 원과 4397억 원을 봤다.
SK이노베이션은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 규모가 2조 원가량에 이르자 2017년부터 매년 실시했던 중간배당을 올해는 건너뛰기로 결정하며 현금 유출을 최소화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처럼 재무 부담이 증가한 상황에서 LG화학과의 영업비밀 침해소송 합의금까지 더해지면 그 부담이 한층 더 커질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에게 소송 합의금액은 뜨거운 감자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합리적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수조 원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에서 이직해 온 직원들의 5년치 연봉인 수백억 원을 포함하고 미국 사업 제한에 따른 피해 등을 감안해 수천억 원대를 배상액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지금까지 배터리사업에 6조 원가량을 투자했는데 아직 배터리사업이 흑자전환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LG화학이 최대 합의금액을 8조 원까지 요구한다면 이는 합의를 위해 사업을 접으라는 것밖엔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합의금액을 두고 두 회사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일부 언론에서 두 회사 모두 법무팀과 로펌을 통해 합의협상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합의중단을 언급한 적이 없다”며 “계속해서 LG화학과의 합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이 합의를 계속 모색하면서 조 단위의 합의금을 확보할 여력이 되는지도 주목된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다국적 에너지개발회사 플러스페트롤에 페루 56광구와 88광구를 매각하는 사안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현재 페루 정부의 최종 승인만 남겨둔 상태로 연말까지 매각을 마치면 총 10억5200만 달러(1조2500억 원가량)를 쥐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완전 자회사 SK루브리컨츠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11일 매각대상 지분이나 예상가격 등 구체적 사항을 재공시하기로 했다. 정유업계는 SK루브리컨츠의 기업가치를 최소 3조~4조 원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분리막(LiBS) 소재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IET) 상장도 앞두고 있다.
현재 주관사 선정을 마치고 상장시기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상장을 내년 상반기 안에 확정짓는다고 발표하며 현금 확보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배터리업계에서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기업가치를 5조 원가량으로 평가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송 합의금액을 두고 LG화학이 승기를 잡은 상황이라서 결국 SK이노베이션의 합의 의지와 합의금액이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성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