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은행의 임금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부분 은행들이 채택하고 있는 호봉제는 성과와 관계없이 매년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라 생산성을 올릴 동기가 부여되지 않고 은행의 인건비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에 부정적이어서 임금체계 개편이 추진되면 난항이 예상된다.
◆ “은행 임금체계 성과 중심으로 개편해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5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한국금융연구원 금융경영인 조찬강연회에서 “정부는 그동안 은행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리와 배당, 수수료 결정 등에 관여를 최소화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더 중요한 과제는 성과주의에 기반을 둔 문화를 어떻게 확산시키냐가 될 것이며 이는 은행뿐만 아니라 금융권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
|
|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소월로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금융경영인 조찬강연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임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은행 등 금융권에 성과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은 대개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어 매년 인건비 부담은 늘어나는 데 내년에 정년 연장까지 이뤄지면 인건비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등 시중은행 6곳의 최근 4년(2010~2014년) 동안 인건비(급여+퇴직금) 현황을 살펴보면 모두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한은행은 이 기간 인건비가 1조14억 원에서 1조 7349억 원으로 73.2% 급증했고 국민은행도 1조5920억 원에서 2조1500억 원으로 35.1%나 늘어났다.
은행의 효율성은 악화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대표적인 비효율성 지표인 이익경비율(CIR, 영업이익대비 판매관리비)은 지난해 55%로 2010년(41%)과 2012년(47.6%) 대비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일 금융연구원이 개최한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 방안’ 세미나에서 “은행의 경쟁력을 위해 노동생산성 및 효율성을 높일 여지가 많다”며 “성과평가 시 장기성과 비중을 높이는 등 평가의 공정성과 수용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도 “국내 노동시장의 고령화와 비정규직 근로 확산, 청년층 일자리 축소 등을 고려할 때 금융산업의 현행 연공형 임금체계는 개편이 불가피하다”며 “직무와 임금의 연계를 강화하고 숙련인력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조 반발 이겨낼 수 있을까
은행 임금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실제로 임금체계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노조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되면 영업압박이 가중될 것을 우려해 반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은행 직원들 다수는 현재의 연봉체계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금융연구원이 9월 25일부터 10월 28일까지 10개 은행의 인사 또는 경영관리부서 관리자급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0%는 현재의 연봉체계가 공정한 내부경쟁을 유도하고 이에 따른 보상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최근 KB국민은행은 영업지점의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직원들의 성과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자가진단 서비스’를 도입했다가 노조의 반발이 거세지자 5일 만에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회사 측은 이 제도의 도입이 직원들의 자기계발 동기 부여에 있으며 인사평가에는 활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는 이 서비스를 사실상 영업 압박으로 받아들이며 향후 인사평가에 활용될 여지가 크다는 점을 내세워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직원들이 성적표를 확인할 때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하다고 호소한다”며 “저성과자로 분류된 직원의 경우 특히 영업에 대한 압박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로 저성과자에 대한 회사의 해고가 쉬워지면 개인평가 공개가 사실상 영업압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금융권 노사가 올해 4월 첫 산별교섭에 돌입했을 때에도 회사 측이 호봉제 폐지를 협상테이블에 올렸다가 노조의 반감만 사기도 했다.
회사 측이 노사 교섭에서 호봉제 폐지를 요구안으로 내놓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노조 측은 “호봉제 폐지는 검토 가치도 없다”며 일축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백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