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지주사 격인 두산의 모트롤BG(유압기기 비즈니스그룹) 매각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모트롤BG에 방산부문이 있어 매각에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이 허가를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원 두산 대표이사 및 두산그룹 회장은 매각방식을 놓고 방산부문의 분리와 통매각 사이에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24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두산이 모트롤BG의 매각 과정에서 우선협상대상자를 쉽게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 두산은 14일 본입찰을 진행한 뒤 17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려 했다. 이를 20일 본입찰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향으로 한 차례 미뤘다.
20일 본입찰이 예정대로 진행됐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를 아직 선정하지 않은 것이다.
모트롤BG 매각의 본입찰은 국내 재무적투자자들뿐 아니라 중국 건설사들까지 참여하는 등 상당히 흥행했다. 예상 매각가격은 4천억~5천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특히 중국 국영건설그룹인 시공그룹(XCMG)은 모트롤BG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며 건설장비용 유압기기의 제조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본입찰에서 다른 원매자들보다 높은 가격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그룹은 원래 모트롤BG의 고객사로 두산으로서는 친숙한 상대다.
박정원 회장으로서도 두산그룹에 돈이 급한 상황이니만큼 시공그룹에 매각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모트롤BG의 방산부문이 매각 절차가 늦어지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방산업체로 지정된 회사의 인수합병 거래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허가가 필요하며 해외매각일 경우에는 방위사업청장의 허가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방위사업청장 허가다.
두산 모트롤BG는 전신인 동명산업과 동명모트롤 시절부터 방산업체로 지정돼 정부지정 선행개발과제를 여럿 완료하면서 관련 기술을 축적해 왔다. 군 입장에서는 이 기술들을 해외로 유출하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두산모트롤지회(모트롤BG 노조)도 이 점을 들어 창원시와 연계해 모트롤BG의 매각을 반대하고 있다. 앞서 23일 창원시의회가 청와대,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치권에 ‘두산모트롤 매각중단 촉구’ 건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박 회장이 모트롤BG를 방산부문과 민수부문으로 분리한 뒤 민수부문만을 매각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모트롤BG 매출에서 방산부문의 비중은 20%가량이다. 민수부문의 분리매각은 최소한 20%의 가격 할인요인이 된다.
게다가 두산 모트롤BG의 방산부문은 실질적으로 기술개발부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모트롤BG가 국내 1위 유압기기 제조사에 올라서고 중국으로 시장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것도 군용 유압기기를 개발하며 축적한 기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시공그룹은 모트롤BG의 방산부문이 보유한 연구개발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만큼 민수부문만을 분리매각하면 매각가격은 애초 제시가격에서 20%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두산이 모트롤BG 매각을 위해 물적분할을 진행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모트롤BG 매각 성사 뒤 실제 현금이 들어오는 기간을 고려하면 박 회장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두산그룹이 채권단과 합의한 경영 정상화방안에 따라 두산중공업은 올해 안에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마쳐야 하며 두산의 모트롤BG 매각은 이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다.
두산은 현재 두산중공업 지분을 44.86% 보유한 만큼 최소한 4500억 원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
이에 앞서 두산그룹이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와 두산솔루스 매각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는 했지만 지주사격 두산의 두산솔루스 보유지분은 13.94%에 그친다. 이에 비춰보면 예상 매각가격 7천억 원 가운데 두산의 몫은 2300억 원가량이다.
물론 박 회장이 모트롤BG의 빠른 매각 성사를 위해 분리매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산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면 분리매각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두산은 1분기 말 별도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2304억 원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안에 상환만기가 다가오는 별도 차입금이 9300억 원이라 보유현금을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에 투입하기는 부담스럽다. 오히려 박 회장은 모트롤BG를 최대한 높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나 사업부문, 자산의 매각과 관련해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