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정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인수만 한다면 최대한 지원하겠다며 원하는 조건을 먼저 제시하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의 만남도 이 회장이 여러 차례 직접 대화하자고 공개적으로 촉구하면서 이뤄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진 지 3주가 다 돼가도록 정 회장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미 계약에 명시된 계약 종료일도 지났다. 계약서에 따르면 계약 종료일은 마지막 기업결합심사에서 승인이 떨어진 뒤 열흘 뒤다. 마지막 국가였던 러시아에서 2일 기업결합심사 승인이 이뤄졌고 그 뒤로 열흘도 훌쩍 지났다.
업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 인수합병(M&A) 거래였다면 몇 번이고 거래가 깨졌을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동걸 회장이 한 발 양보한 데 이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정 회장에게 빠른 결단을 촉구했음에도 여전히 인수 여부조차 밝히지 않으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회장은 결국 정 회장의 입만 바라보며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정 회장이 유리한 입지를 이용해 한층 더 좋은 조건을 끌어내거나 손쉽게 인수전에서 발을 빼기 위해 버티기를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수할 생각이 없다면 진작에 철회의사를 밝혔어야지 인수 여부를 놓고 아직까지도 입장을 밝히지 않는 건 무책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원매자가 많았고 경쟁이 치열했던 인수전이었다면 진작 다른 원매자에게 순위가 넘어갔을 텐데 다른 원매자가 없고 결국 더 급하고 아쉬운 건 채권단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이렇게 버티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금호그룹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 구주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신사업을 펼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는데 자칫 계획이 모두 틀어지게 됐다.
아시아나항공 임직원들의 불안감은 말할 것도 없다. 새 주인 품에서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은 지 반 년여 만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급 휴직과 월급 삭감, 임금 반납 등 허리띠를 졸라매며 힘들게 버티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 지 오래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돼 있었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안정적으로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1년 넘게 별다른 조치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기간산업 안정기금도 신청할 수 없다. 인수 여부나 인수 조건 등이 확정돼야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정 회장의 침묵이 길어진 사실을 놓고 인수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인수전에서 발을 빼는 과정에서 타격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며 ‘출구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정 회장으로서도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한 3천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이 사실상 전량 매각되지 않은 점은 시장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인수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끈 상황에서 거래 무산이라는 카드를 꺼내들면 정부와 관계 악화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아시아나항공 거래 종료일과 관련해 “산업은행의 의견이 중요한데 산업은행은 매각시한이 끝났다고 보지 않고 있다”며 “이대로 (협상이) 끝나는 상황은 아니고 당사자들이 의사소통을 긴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