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승승장구하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브리지 게이트'로 휘청거리고 있다. 자칫하면 대권의 꿈이 영영 날아갈지도 모르는 위기이다.
브리지 게이트는 크리스티 주지사의 측근들이 크리스티 주지사의 재선 동의안에 서명하지 않은 민주당 소속의 포트 리 시장인 마크 사콜리치에게 정치적 보복을 하기 위해 고의로 포트 리에 교통난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는 스캔들이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자신은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치적 파장은 좀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브리지 게이트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만일 크리스티 주지사가 이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주지사직 사임은 물론이고 2016년 대선 출마도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
|
|
▲ 지난 9일 사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침통한 표정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
◆ 크리스티, 민심 잃나
원래부터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했던 크리스티 주지사는 브리지 게이트에 대해 했던 말들로 민심을 더욱 잃고 있다. 지난 12월 2일 크리스티는 "민주당이 이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며 "정치적이지 않은 문제를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맹비난했다. 뉴저지 라디오 방송국이 정말로 차선 폐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냐고 묻자 "사실 내가 그 장소에 가서 교통 표지 고깔을 옮기고 다녔다. 멜빵바지에 모자를 쓰고 있었더니 아무도 날 못 알아보더라"고 비꼬았다.
지난달 13일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참모진 전원과 심도깊은 면담을 해 본 결과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통행량 조사의 일환"이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왜 한 개의 도시가 (조지 워싱턴 대교로 진입하는) 차선을 세 개나 써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교통량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뉴저지 주 지역 언론인 노스저지닷컴은 지난 12일 "포트 리로 통하는 3개 차선은 포트 리 주민들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그 주변의 최소 4개 도시와 카운티들이 함께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크리스티가 임명한) 항만관리청의 임원들이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어차피 차선 폐쇄를 정당화하려는 핑계였지만, 그마저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결국 지난 9일, 크리스티 주지사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2시간 여에 걸친 사과 기자회견 동안 "몹시 부끄럽다", "눈이 멀었었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스캔들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사건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브리지 게이트 사건을 일으킨 참모들을 모두 해고했다고 밝혔다.
브리지 게이트 이후 크리스티 주지사의 지지율은 지난 10월 63%에서 55%로 8%가량 떨어졌다. 1월 1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라스무센 리포트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뉴저지 주민 중 54%가 크리스티 주지사가 어떤 식으로든 브리지 게이트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56%는 만일 크리스티가 도로 폐쇄 건에 대해 승인을 내렸거나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다면 사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 민주당 '크리스티 때리기' vs 공화당 '편을 들까 말까'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그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매튜 다우드는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티 주지사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 위기를 잘 넘기기만 한다면 오히려 이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다"라고 평했다.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도 "선거운동 중일 때에는 작은 일들을 많이 놓치게 된다. (오바마 행정부도) 그랬다"며 크리스티를 옹호했다.
반면, 줄리아니 시장의 전 참모인 릭 윌슨은 크리스티 주지사가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하고 다른 공화당원들에게 폐를 끼쳤다"고 비난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일이 더 있다면 공화당과 크리스티 간의 약화된 관계가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플로리다 주 상원의원장 던 개츠는 크리스티가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의 재선운동을 돕기 위해 플로리다를 방문하기로 하자 "그냥 그가 펜사콜라 대교에 교통문제를 일으키지만 말아주길 바란다"고 비꼬았다. 크리스티는 지난 2012년 허리케인 샌디의 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대응을 극찬했다가 당내에서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선거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쓸 뻔하고 연신 읍소 순례를 펼쳐야 했던 등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던 상태다.
그러나 공화당이 쉽사리 크리스티라는 카드를 버리기는 어렵다. 현재 크리스티 주지사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 역량과 대중적 인기를 겸비한 대선 후보감이 공화당 내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지도와 실적 면에서 크리스티 주지사와 아슬아슬한 경합을 벌이던 밥 맥도넬 버지니아 주지사는 가족의 뇌물 수수 스캔들로 일찌감치 후보군에서 탈락했다. 미국의 언론 매체 워싱턴포스트는 NSA 문제에서 오바마 행정부와 대립하는 첨병으로 활약하면서 인지도를 쌓은 랜드 폴 켄터키 주 상원의원과 보수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를 유력한 대권 후보로 꼽기는 했지만, 크리스티 주지사가 브리지 게이트에 더 깊숙이 연관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는 아직도 크리스티가 가장 유력하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민주당 측은 즉각 총공세에 나섰다. 브리지 게이트 조사단장이자 민주당 소속인 존 위즈누스키 시의원은 12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티 주지사가 이 일에 대해서 몰랐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크리스티가 선거운동 중이었기 때문에 작은 일을 챙기지 못했다는 주장을 일축하며 "재선을 원하는 주지사라면 누구든지 자기 주에서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길 원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