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이전설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데다 당장 이뤄질 것도 아니지만 구체적 지역까지 나오면서 국책은행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정치권과 금융권 일각에서 KDB산업은행은 원주혁신도시, IBK기업은행은 대전, 한국수출입은행은 부산 BIFC(부산국제금융센터)로 각각 이전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강원도는 특히 산업은행 이전지로 기존에 거명되던 부산이나 전주가 아닌 원주가 오르내리자 금융감독원에 문의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국책은행별로 이전지역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강원도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6월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인은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 공공기관들의 이전대상 여부를 매년 심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 발의를 통해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힘을 실은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서 빠진 공공기관들이 대상이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으는 건 국책은행을 비롯한 금융공공기관이다.
여권에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그 어느 때보다 밀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예전보다는 높다고 금융권은 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구 의원들과 손을 잡고 공공기관 유치에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2금융중심지인 부산과 제3금융중심지를 꿈꾸는 전주는 국책은행 유치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과 전주는 그동안 꾸준히 국책은행 이전지로 거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금융권은 금융산업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 ‘탁상공론’이라고 보고 있다. 금융기관 이전은 금융산업의 경쟁력 차원에서 판단해야 하는 문제인데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이라는 틀에 가두면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국책은행에 몸담고 있는 한 직원은 “정치권이 국책은행 이전을 지방에 주는 선물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며 “최근 몇 년 동안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지방 이전설에 내부 직원들의 피로감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지방으로 이전되면 우수인력 유출이 불가피해지는 등 은행의 전문성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실제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한 뒤 운용인력 유출로 인력난에 시달렸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특히 수요가 서울에 몰려 있는 데다 금융산업의 핵심이 결국 인적 및 물적 네트워크라는 점에서 더더욱 서울에 있어야 할 필요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지방 이전으로 결국 업무 효율성만 매우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시중은행 본사, 주요 금융회사 본사 등이 모두 서울에 몰려있다.
국책은행 수장들도 여러 차례 반대의견을 밝혀왔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책은행 지방 이전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책금융을 퇴보시키는 것”이라고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산업은행이 부산이나 전주로 간다는 것은 금융발전을 접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며 “국제 금융중심지라는 꿈을 발전시키고 외국도 끌어들여야 할 시점에 지방 이전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수출입은행장을 지낼 당시 “수출입은행은 수익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며 “해외 바이어를 비롯해 외국의 정부 관계자 등과 접촉하려면 서울이 영업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책은행 노사도 지방 이전설 앞에서 한데 뭉쳤다.
금융노조는 5월 국책은행 지방 이전 저지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며 “과거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금융중심지를 늘리는 것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